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이동문서 삭제토론 열하사변 (문단 편집) === 국방건설의 강화 === >"그러므로 숨이 붙어 있는 한, 나는 적과의 싸움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나라가 치욕을 당할 때 우리는 마땅히 와신상담해야 하며, 결코 의기소침하거나 경계심을 늦추어서는 안된다. 우리는 반드시 국가 재건 계획을 세워 되도록 최대한의 효과를 10년 안에 이루어 내야 한다!" >---- >장제스의 일기. 열하사변에서의 참패는 장제스가 군 현대화와 공업화에 투자하게 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장제스는 일본을 미친 개라고 욕하며 이들에게 지모를 요구하는 것은 호랑이에게 가죽을 벗으라고 요구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빈정댔다. 중국군이 얼마나 약체인지 인식하게 된 장제스는 즉각 군 현대화에 박차를 가해 6월 25일 국민혁명군 개조를 선언, 난창 행영을 설치하고 군대 개혁에 들어갔으며 1932년 11월 참모본부 직속기관으로 국방설계위원회를 설치, 총력전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1933년 6월 미국과 5,000만달러의 차관협정을 체결, 항공기술 원조를 받기 시작했고 [[주중 독일 군사고문단|독일의 군사고문단]]을 초빙하였으며 기술제휴, 자금원조를 받았고 소련과도 경제협정을 체결했다. 이에 대해 일본이 적극적인 방해공작을 실시하였으나 이때의 소득이 훗날 8년 [[중일전쟁]]을 수행할 밑거름을 제공하게 된다. 1936년 7월부터 중공업 건설 5개년계획이 시작되어 중국 역사상 최대의 중공업 건설이 시작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