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열하사변 (문단 편집) ==== 열하성의 실함 ==== 2월 23일 일본 외무성은 중국에게 열하성에서 군대를 철수시킬 것을 요구하는 비망록을 제출했다. 중국 외교부는 즉각 이를 거부했다. 주중 일본 공사는 외교부장 [[뤄원간]]에게 '열하침략의 논리' 3개항을 제출했다. ||1. 열하성 내에 있어 장쉐량의 군대 및 기타 반만군대의 존재는 만주국 주권에 저촉될 뿐 아니라, 열하성의 치안회복과도 양립될 수 없다. 이제 만주국은 열하성내의 비적과 병비 잔당의 숙청을 실시하는데, 일본군은 일만의정서에 따라 이에 협력한다. 일본군이 장쉐량의 군대 등과 충돌하더라도 그것은 그들이 만주국의 요구대로 관내에서 철수하지 않았기 때문이니, 책임은 중국측에 있다. 2. 일본군의 행동은 열하성의 치안회복만을 목적으로 하고 있는데, 장쉐량군 및 기타 반만군이 적극행동으로 나오면 전국이 화북으로 미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3. 만주국은 반만군의 귀순에 일관하여 관대한 처분을 한다. 탕위린 등이 귀순하면 종래의 방침에 따라 관대하게 처치한다.|| 뤄원간은 즉석에서 반박하는 공문서를 제출했다. ||1. 중국 정부가 열하에 파병하여 외국의 무력침략에 방위하는 것은 국가로서의 주권행사이다. 동북의 가짜 조직이 일본에 의해 조작된 괴뢰임은 온 세상이 주지하는 사실이며 그 비법행위 일체는 일본이 책임져야 할 일이다. 중국 정부는 가짜 조직 및 일만의정서에 대해서도 이미 엄중한 항의를 하였으며 그를 일절 승인하지 않는다. 2. 일본군의 행동이 화북에까지 미치게 되는 일이 있다고 하는데 이는 아직도 자각하지 못하고 침략의 의사를 드러내는 증거이다. 일본군대가 화북을 침략하면 중국 군대는 국토자위의 권리를 행사한다. 3. 열하성 주석 탕위린은 중국의 지방장관이다. 일본 정부가 탕 주석에게 언급한 점은 실로 의식적인 모욕행위임으로 이를 특히 항의한다.|| 일본군은 이에 화답하듯이 2월 23일 열하작전을 개시하였다. 일본군의 세갈래에 걸친 공격에 탕위린 휘하 2만명의 군대는 거의 제대로 저항하지 못했다. 일본군은 소이탄으로 숲과 마을을 태워버리며 전진했고 탕위린의 부대 대부분은 싸우지도 않고 퇴각하거나 심지어 일본군에 투항하기도 했다. 그나마 장쉐량의 부대는 능원, 평천, 적봉 3개 거점을 중심으로 열심히 맞서 싸웠으나 일본군의 압도적인 화력에 처참히 깨져 3월 2일 능원이 함락되고 반격하려던 우조린 휘하 130사단은 일본군의 포격에 전멸, 사단장 우조린까지 전사했다. 일본군이 청더로 몰려들자 장제스는 결국 초공작전 중지를 결정하고 군정부장 [[허잉친]]에게 북상하라고 지시했다. >"이제 성패의 관건은 [[장쉐량|한경]]이 열하에 나서느냐 안 나서느냐에 달려 있다. [[허잉친|형]]은 오늘밤 기차로 북상하기 바란다." 이때 열하성 주석 탕위린은 징발한 대량의 트럭에 재물과 아편을 가득 채워 전선을 독려한다는 구실로 달아났다. 그의 재물들은 중앙군이 압수했으나 탕위린은 200명의 호위병을 거느리고 빠져나갔다. 탕위린이 달아나버렸단 소식에 일본군은 즉각 3월 4일 청더를 함락시켰는데 청더에 진입한 일본군은 고작 120명에 지나지 않는 소부대였다. 결국 탕위린의 도주에 탕위린 군대는 완전히 와해되어 적봉과 평천도 함락되었고 난평이 함락됨에 따라 열하는 일본군 손에 완전히 떨어졌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