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염경엽 (문단 편집) == 선수 경력 == 서울과 함께 스타 선수들을 가장 많이 배출한 광주 출신[* [[광주제일고등학교 야구부|광주일고]] 선배로 [[선동열]], [[이강철]] 동기가 [[김기태(1969)|김기태]], 그 밑으로 [[이종범]], [[이호준]], [[김병현]], [[최희섭]], [[강정호]], [[서건창]] 등의 선수가 있다. 게다가 [[서재응]], 이호준, 서건창은 그와 중학교 선후배 사이.], [[광주제일고등학교 야구부|광주제일고등학교]], [[고려대학교 야구부|고려대학교]] [[법학과]](1987학번)를 졸업한 뒤[* 대학 졸업을 앞둔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0092100209211007&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90-09-21&officeId=00020&pageNo=11&printNo=21247&publishType=00020|1990년 추계대학야구 최우수선수]]였다. 참고로 법학과라는 게 의아할텐데, 당시 체육특기생들은 학과를 골라서 갈 수가 있었다. [[홍명보]], [[최희섭]], [[심재학]]도 고려대 법학과였고 [[김경문]], [[김선우(1977)|김선우]], [[현주엽]]은 고려대 경영학과였다. 타 대학들까지 범위를 넓히면 [[연세대학교]]에서는 [[김훈(농구)|김훈]]과 [[우지원]]이, [[성균관대학교]]에서는 [[김병현]]이 법학과였다. 현재 체육특기생들은 무조건 체육교육과 등 체육 관련 학과로만 진학하고 있다.] 1991년 2차 1순위 지명을 받아 [[태평양 돌핀스]]의 [[유격수]]로 입단했다. 선수 시절 타격은 말 그대로 [[멘도사 라인]]이었지만[* 같은 태평양 소속이었고 주전 2루수로 활동하던 [[김성갑]]도 멘도사 라인으로 유명했다.] 수비력 하나만 놓고 보면 1990년대 최강급으로 평가될 정도로 일가견이 있었던 선수였다. 당시에는 나름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4090700329118004&editNo=15&printCount=1&publishDate=1994-09-07&officeId=00032&pageNo=18&printNo=15193&publishType=00010|유망주]]였다. 깡마른 체구에도 불구하고 어깨도 좋은 선수로 1994년에는 거의 전 경기에 출장하면서 단 8개의 실책으로 유격수 중 최소 실책을 기록하였다. 수비 하나는 정말 탁월한 선수였다. 그럼에도 타격은 매우 부진했는데, 이 해 타율이 0.212이었다.[* 그나마 이 시기가 염경엽의 선수 시절에서 그나마 최전성기라고 할 수 있다. 타율만 따지고 보면 1998년도의 0.265가 최고였지만, 주전이 아닌 [[박진만]], [[이명수]] 등의 백업 선수로 출장하여 기록한 것이라서 큰 의미가 없다. 103경기에 나왔지만 들어선 타석은 83회에 불과하다.] 1993년에는 롯데와 경기를 하던 도중 [[박정태]]와 충돌하기도 했다. 강팀에서 대수비 요원으로 뛸 수 있었다면 여러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는 대수비 요원으로 큰 가치를 지닐 수 있었겠지만, 팀 사정 상 주전이 되다 보니 빈약한 타격능력으로 인해 본래의 장점까지 약화된 경우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1995년에는 [[이근엽]]에게 주전 자리를 빼앗겼고[* 이근엽도 본인의 고교 후배인 [[박진만]]이 입단하면서 설 자리를 잃은 채 1997년 시즌 후 쌍방울로 트레이드되었으나 [[김호(야구)|김호]]의 후보로 전락하여 1999 시즌 후 은퇴했다.][* 사실 이근엽이나 염경엽이나 둘 다 타격이 영 좋지 못했다. 둘의 타율은 염경엽 0.162, 이근엽 0.170이었고 둘의 출장비율도 크게 차이 나는 수준이 아니다.] 급기야 1996년 초대형 유격수 재목이라는 [[박진만]]이 고졸우선 지명을 받아 [[현대 유니콘스]]에 입단하면서 입지가 밀리기 시작했다. 당시 [[박진만]]은 수비는 탁월하지만 타격은 별로라는 평을 받았는데, 염경엽은 그보다도 못한 진짜 수비밖에 없는 선수였기 때문이다.[* 당시 고졸 신인 박진만, 대졸 신인 박재홍과 같은 해에 외야수로 입단했다가 동기 [[박재홍(야구)|박재홍]]이 대활약을 펼치면서 후보로 전락한 선수가 바로 염경엽의 후임 넥센 감독인 [[장정석]]이다. 그나마 이 쪽은 삼성 킬러로 역전 만루홈런도 때려봤지만, 염경엽은 만루 상황에서 타율이 0에 근접했었다.] 1996 시즌 개막 전날 자기 대신 [[박진만]]이 선발 출전 멤버로 표시된 전광판을 보고 [[화장실]]에 가서 펑펑 울었다고 한다. 이 때 외국으로 [[http://news.donga.com/3/all/20121027/50425812/1|이민을 가려는 시도도 했다고 한다]]. 1997년에는 [[박진만]]마저 '''주전 1할대 타율'''이란 실망스러운 타율을 기록했지만[* 박진만은 데뷔 시즌인 전해 2할 8푼은 쳤고, [[김재박]]의 강도 높은 펑고와 특타를 받고 99년부터 타격에도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이미 염경엽의 주전 경쟁력은 사라져 버렸다. 염경엽의 타격이 더 형편없었기 때문. 실제로 염경엽은 96년 이후로 대주자, 대수비 요원으로 주로 출장했는데 이 때 출장하면서[* 96년은 72경기, 97년은 56경기에 출장했지만 96년은 21타석, 97년은 12타석 밖에 나오지 못 했다.]2년간 '''0안타'''에 그쳤다. 특히 1995년 9월 5일 쌍방울 레이더스 전부터 1997년 8월 23일 해태 타이거즈 더블헤더 2차전까지 역대 최다 타석 연속 무안타 기록인 '''51타석''' [[https://m.sports.naver.com/kbaseball/news/read.nhn?oid=005&aid=0001153551|연속 무안타를 기록]]했다. 이 기간 동안 3도루 성공, 10도루 실패(도루성공률 2할 3푼)로 대주자로도 전혀 경쟁력이 없었다. 이렇듯, 여느 선수 같았으면 진작에 방출당하고도 남을 성적이었는데, 경쟁자였던 [[이근엽]]이 [[쌍방울 레이더스]]로 트레이드되는 와중에도 현대에 남았고 수비 원툴 덕분에 어찌어찌 살아남았다. 1999 시즌에는 64kg의 체중으로 프로야구 선수 중 가장 체중이 적은 선수로 기록되었다. 2000 시즌을 마지막으로 선수에서 은퇴하고, 이듬해 2001년 수원야구장에서 팀의 레전드인 [[정명원]]과 함께 은퇴식을 치렀다. [[https://news.joins.com/article/882052|관련기사]] 선수생활을 은퇴한 뒤 필요없어진 야구 용품을 팔아 만든 돈 500만 원을 [[고려대학교 야구부|고려대학교]] 후배이자 당시 투병 중이던 [[임수혁]]에게 성금으로 내놓았다. 현재 KBO에서 1500타석 이상을 기록한 타자 중에서 '''역대 최하위의 통산 타율(.195),[* 통산 타율 최하위 바로 위에 있는 선수랑 2푼 가량이나 차이난다. 그야말로 압도적이다. 염경엽 못지 않게 타격이 부진했던 [[김경문]]이 .220이고, [[김주형]]이 .224이고, [[김태형(1967)|김태형]]이 .235이다.] 통산 출루율(.262), 통산 장타율(.252)'''을 기록하고 있다.[[http://www.statiz.co.kr/stat_at.php?mid=stat_at&re=0&ys=1982&ye=2020&se=0&te=&tm=&ty=2014&qu=auto&po=0&as=&ae=&hi=&un=&pl=&da=1&o1=AVG&o2=TPA&de=0&lr=0&tr=&cv=&ml=1&sn=30&si=&cn=|스탯티즈]] 이처럼 타자로서의 성적이 부진함에도 통산 WAR은 '''-2.0'''으로 1,500타석 이상을 기록한 타자 중에서는 최하위가 아닌데[* 1,500타석 이상을 기록한 타자 중에서 타자 통산 WAR 최하위는 KBO 규정타석 충족 역대 최저 타율,출루율,장타율 기록을 보유하고 있는 [[권두조]]이고, 타석 제한을 무시할 때 타자 통산 WAR 최하위는 포수 시절 [[나균안|나종덕]]이고(그나마 투수로 전향하고 까먹은 WAR를 많이 복구해냈다.), 염경엽은 통산 밑에서 일곱 번째이다.], 그 이유는 유격수, 2루수로 주로 출장하여 수비에서 가중치를 많이 부여받았고, 수비 및 주루 부문의 성적은 비교적 좋은 편이어서 타격 부진으로 잃은 점수를 어느 정도 만회했기 때문이다. 타자 통산 WAR 최하위인 권두조의 경우 타율, 출루율, 장타율 등에서 모두 염경엽을 압도하지만, 수비와 주루에서 점수를 많이 잃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