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염입본 (문단 편집) == 생애 == 염입본은 옹주(雍州) 만년현(萬年縣) 출신으로, 염비(閻毗)의 아들이다. [[태종(당)|당태종]]의 치세 당시 염입본은 주작랑중(主爵郞中)을 지냈다. [[고종(당)|고종]]의 재위기에 염입본은 장작대장으로 여러 차례 승진하였가, 뒤에는 염입덕을 대신하여 [[상서성#s-3.2.6|공부상서]]가 되었다.[* 다만 이때는 벼슬이름을 자주 바꾸던 때라서 사평태상백(司平太常伯)이라고 하였다.] 668년에는 [[중서령|우상]](右相)[* 마찬가지로 벼슬이름을 바꾼 것이다.]으로 승진하고 박릉현 개국남으로 봉해졌으며, [[문하시중|좌상]] 강각(姜恪)과 함께 추밀을 맡았다. 당시 세간에서는 염입본과 강각을 놓고 “좌상은 사막에서 위엄을 떨쳤고, 우상은 단청으로 명예를 떨쳤다”고 평가하였다.[* 당시 사서의 기록에 의하면 강각은 이미 전공을 세운 명장이었는데 반해, 염입본에 대해서는 그림의 재능은 있었지만 재상의 그릇은 아니었다고 평가하였다.] 이후 염입본은 670년에 중서령이 되었고,[* 벼슬이름이 우상에서 중서령으로 되돌아갔다.] 673년 11월 14일에 죽었다. 시호는 문정(文貞).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