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이동문서 삭제토론 영락제 (문단 편집) === 연왕 시절 === 1370년 11세 때 연왕(燕王)에 봉해져 지금의 북경 일대의 제후가 되었으나 바로 이때 북쪽으로 간 것은 아니었고, 어린 시절엔 남경에서 평화로운 나날을 보내다가 19살 무렵부터 몽골 원정에 나가 있었던 [[서달]]을 따라 종군하면서 남경과 북경을 왕래했고, 완전히 북경 지역으로 간 것은 1380년, 21세 때였다. 이후로 그 지역의 정치와 군사를 총괄했다. 당시로서는 명나라의 최북방 지역으로[* 명나라가 처음 건국했을 때의 수도는 남경이었다.] 주원장의 북진으로 인해 막북으로 물러간 [[몽골인|몽골족]]의 침공이 있었는데 그때마다 이를 막아냈다.[* 명나라의 개국공신으로 무공이 제일이라던 [[서달]]과 [[상우춘]]도 가끔 패배하기까지 한 몽골군을 상대로 공격이면 공격, 방어면 방어, 중원 특유의 화려한 인해전술로 몽골의 일파들을 전부 격파하는 등 전승(全勝)을 거두었다. 그래서 주원장은 '''"북방에 연왕이 있으니 짐이 편안하다"'''고 칭찬할 정도였다.] 그런 만큼 무골로 성장했고, 성품도 대단히 호방했으며 목표 의식이 뚜렷했다. 이런 능력 때문에 주원장은 주체를 내심 후계자로 염두에 두기도 했으나 장자 우선 원칙에 따라 장남인 주표를 황태자로 삼았고, 주표가 일찍 죽자 그의 아들인 [[건문제|주윤문]]을 황태손으로 삼았다.[* 주윤문을 황태손으로 삼는 대신 주체를 황태자로 삼을 경우, 주체의 두 형이 반발하여 내분이 일어날 위험이 있다는 현실적인 문제도 있었다.][* [[연나라|연(燕)]]은 춘추시대부터 오늘날의 [[허베이]]성 및 [[랴오닝]]성 일대를 포함하는 지역을 부르는 이름이었으며, [[춘추전국시대]]의 연나라에서 비롯되어 [[남북조시대]] 당시 [[미천왕]] 시절부터 [[광개토대왕]]까지 [[고구려]]와 다투었던 선비 모용부의 [[전연]]과 [[후연]]의 국호이기도 했다. 《[[삼국지]]》에서 [[장비]]가 "연인(燕人) 장비가 왔다!" 하고 언급하는 부분이 이 지역을 의미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