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영왕(주) (문단 편집) == 치세 == 당연히 주나라 천자는 실권이 없으므로 그의 치세보다는 아무래도 그 당시 일어난 [[진(희성)|진(晉)나라]]와 [[초(춘추전국시대)|초나라]] 사건을 기록해보겠다. 영왕 17년(기원전 556년), [[송(춘추전국시대)|송나라]]의 대부 상수(向戍)[* 向은 성씨나 지역 혹은 나라 이름으로 쓸 때는 향이 아닌 상이라고 발음한다.]는 진(晉)나라, [[초(춘추전국시대)|초나라]]를 송나라의 수도 상구에 초청해서 회맹을 했다. 거기에는 송나라, 진(晉)나라, 초나라, [[노나라]], [[위나라|위(衛)나라]], 진(陳)나라, [[정나라]], [[조나라]], [[허나라]], [[채나라]] 등 10여개 국가가 참여했다. 초나라와 진나라가 공동 패자가 되는 것이 이 회맹의 내용이었다. 이것을 미병 회맹이라고 한다. 영왕 18년(기원전 555년), 미병 회맹으로 진나라와 초나라 사이에 평화가 왔다.[* 물론 그 사이에 잡다한 소국들은 사라지거나 속국이 되었다.] [[정나라]]는 그 틈을 타서 명재상 자산(子産)의 도움으로 진(晉)나라와 초나라와의 불평등 조약을 개선한다. 그리고 자산의 능력에 힘입어 정나라는 중흥하게 된다. 그런데, 거나라에서는 거나라 군주가 학정을 펼쳐 백성들이 원망하였다. 영왕 20년(기원전 551년), 노나라의 관리 숙량흘의 [[공자|아들]]이 태어났다. 영왕 21년(기원전 550년), [[진(춘추전국시대)|진(陳)나라]]의 귀족인 경(慶)씨 가문은 백성들을 [[징용]]하여, 성을 쌓았다. 그러나 축성 중에 널빤지가 떨어지자 경씨는 백성들을 잔인하게 죽여 벌했다. 그리하여 부역에 시달린 백성들은 반란을 일으켜 경씨 가문의 가주인 경호(慶虎)를 죽였다. 영왕은 장자인 희진(姬晉)이 총명하여 그를 아꼈으나 17세의 나이로 죽었다. 그리하여 영왕은 그 아우인 희귀를 태자로 삼았다. 영왕 26년(기원전 545년), 영왕이 붕어하여 그 아들인 희귀가 즉위하니 그가 바로 경왕이다. [각주] [[분류:주 국왕]] [[분류:기원전 545년 사망]][[분류:역대제왕묘 배향자]]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