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영웅본색 (문단 편집) == 기타 == * 영웅본색이 개봉할 당시까지만 해도 [[홍콩 영화]]는 소림사, 취권류의 쿵푸 영화나 [[오복성]], [[쾌찬차]] 등 [[성룡]] 주연 코믹 액션영화가 판을 치던 시대였고, 일반적인 인식에서 홍콩 영화는 그렇고 그런 부류로 취급되던 시절이었다. 헌데 당시의 시대적 조류와는 동떨어진 이 영화는 할리우드 영화팬들은 물론 기존의 홍콩 영화팬들에게서도 별 눈길을 끌지 못하고(당시 개봉했던 화양극장 역시 당시에는 유명했던 극장도 아니었다.) 종영했다. 본문에도 나와있듯이 이 영화가 재평가된 것은 [[재개봉관]](소위 3류극장)과 복제비디오시장에 나와서부터다. 1980년대 중후반 경제호황과 88올림픽 덕분에 VTR (VCR) 보급이 활발했으나, 막상 소프트웨어 격인 비디오 테이프 유통사와 대여점은 성장이 더뎠다. 때문에 캘리포니아 비디오 등 대형 체인점이 아닌 소규모 동네 대여점에서는 정품이 아닌 불법 복제. 해적판을 당당히 돈받고 대여해주던 시기였다.[* VCR 하드웨어는 1980년대 초중반부터 점차로 보급되었지만 정식으로 영화사와 계약해서 정품을 발매하려는 움직임이 매우 느렸기 때문에 1987년 정도까지는 정품이라는 것들이 별로 없었고, 당연 대여점에서는 복제품들을 더 많이 대여하였다. 물론 이 때도 이게 정당한 일은 아니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대여점에서 테이프를 가지고 나올 때는 검은색 비닐봉지(즉 내용물이 안 보이게)에 넣어 줬다. 이게 나름 전통이 되어 상당수의 대여점들은 복제품 문화가 완전히 사라진 1990년대 중후반에도 대여하는 테이프들을 검은색 비닐봉지에 넣어서 줬다. 여담으로 복제품들을 대여하던 시대이니 당연 좀 수위가 높은(포르노 정도는 아니고 노출이 심한, 당연 정발된다면 19금은 당연에 상당수 장면이 삭제되어 발매될 법한, 예를 들자면 엠마누엘 시리즈나 [[파라다이스(1982년 영화)|파라다이스]] 무삭제판 정도) 비디오 또한 대학생 이상에 한해 대여가 가능했다.] * 당시 최고의 영화 평론가로 꼽히던 [[정영일(영화 평론가)|정영일]](1928~1988)[* 조선일보에 정기적으로 영화 칼럼을 연재했으며, KBS의 토크쇼인 사랑방중계의 진행자로 나오기도 했다.]이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한 것도 영화 흥행에 영향을 줬다. 이 사람은 당시의 TV 인기방송이던 연예가중계나 여러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명화극장 예고에서 그 영화에 대한 소개까지 간략하게 했다. 현재도 추억하는 사람들이 많을 정도로 유명했고 영화 평론가로서 독보적이었지만, 요즘 보면 어설픈 것도 많았다. 이를테면 대우비디오 표지에선 그의 이름으로 영화를 소개하곤 했는데, 졸작급 영화도 엉뚱하게 쓴 평을 쓴 것도 많았다. 물론 그 시절에는 이름만 빌려주는 것도 많았다. 영화계의 흐름도 잘 잡아냈었는데, 영웅본색에 대해 전례없이 칭찬을 하면서 "무조건 봐야한다. 앞으로 홍콩 영화계의 흐름을 바꿀 만한 작품"이라고 극찬을 했고, 결국 예언은 들어맞았다. 물론 맨 밑에 나온 정운영과 정영일은 다른 사람이다. 그런데 정영일 선생도 이 영화를 본 후, 비약적으로 발전한 홍콩 영화계를 극찬하며, 한국 영화계의 현실을 한탄한 바 있다. 한국 영화가 약진하고 홍콩 영화가 완전히 몰락한 2010년대의 시점으로 보면 격세지감. * 고가휘(1931-2023)[* 顧嘉煇, 영어 이름은 Joseph Koo으로 홍콩의 엔리오 모리코네로 불리는 대영화음악가이다. 어렸을 때부터 작곡의 재능을 보였으나, 쇼 브라더스를 만든 소일부(邵逸夫, 영어 이름은 런런쇼 Sir Run Run Shaw. 영국의 작위를 받아 이름 앞에 Sir가 붙는다.)의 눈에 띠어 장학금을 받아 미국의 [[버클리 음대]]에 유학을 갔다. 1000곡이 넘는 영화 음악을 작곡했으며, 영화 음악 뿐만 아니라 홍콩 가요의 대부이기도 하다.]와 황점(1941-2004)이 참여한 영화의 사운드트랙은 매우 비장하고 웅장한 선율로 가득하다. 유명세에 비해 원음으로 된 OST 앨범이 발매 되지 않아 아쉬움을 줬다. 1997년 쯤에 일본에서 미디로 연주한 듯한 음반이 발매됐긴 했지만 묘하게 게임 음악 같은 느낌을 준다. 이는 어쩔 수 없는 것으로 녹음이나 음반제작의 문제가 아니라 이 영화 음악 대부분이 게임 음악에 쓰이는 음원과 비슷한 [[신디사이저]]로 연주되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싸구려틱한 음악이 쓰인 이유는 1980년대의 유행이기도 했다. 신디사이저가 만들진 게 70년대이며 본격적으로 유행한 게 80년대였다. 이미 모든 어쿠스틱 음색을 디지털로 작곡하는 지금 시대에 들으면 당시의 전자음색은 믹싱이 전혀 안된 촌스러운 음 같지만, 그 당시 기준으로 살펴본다면 기존에 없던 새로운 소리들이면서도 차가운 느낌이 강한 최신 음악 도구였기에, SF 영화나 비정한 느와르물에 자주 사용됐다. [[스카페이스]]가 그 예. [* 애초에 전자음악 장비 자체가 비쌌기에 당시 신디사이저로 작곡을 하고 영화음악에 쓰는게 어쿠스틱 녹음보다 절대 싸다고 할 수 없다. 1980년대에는 디스코에서 보듯이 최신, 최첨단 음악으로 대접받고 있었으며 지금 들으면 기계음 떡칠같이 느껴지는 노래들이 빌보드 핫 100 상위권에 올랐던 시기였다. 1981년 빌보트 싱글차트 9주간 1위를 하여 년간 차트 1위에 등장한 킴 칸스의 리메이크곡 Betty Davis Eyes 또한 독특하고 몽환적인 신디사이저 반주에 힘입어 9주간 1위를 했다는게 정설인데, 그런 반주 없는 원곡이 1974년에 나와 완전 폭망한 것과 대비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당시로는 최고의 음악이였다. 1980~1982년 빌보드 싱글차트 찾아서 들어보면 알 듯. 이러다가 1990년대에 들어 전자기술의 발전으로 뮤지션용 신디사이저의 발달로 전자음악이 실제 음색에 가까워지고 디스코와 테크노 유행이 지나가버린 상황에, 또한 기술의 발전으로 그전에는 비프음이나 내던 PC의 사운드 칩이 딱 80년대의 뮤지션용 신디사이저에 들어가는 수준의 칩으로 업그레이드되는 탓에 비슷한 음색을 뿜어내는 것은 게임음악 외에는 없기 때문에 싸구려 게임음처럼 들리기 쉬운 것이다.] * 영웅본색의 중반부에 BGM으로 당시 한국 인기 가수였던 구창모의 곡 [[희나리(노래)|희나리]]가 번안곡으로 나온다. 홍콩가수 [[나문]](羅文,1944-2002)이 부른 번안곡 제목은 '幾許風雨 (기허풍우)'. 기허풍우는 1986년도 십대중문금곡과 [[경가금곡|십대경가금곡]]에 뽑힐 만큼 홍콩에서 히트를 쳤다. 기허풍우는 무단으로 번안한 곡이 아니라, 정식으로 리메이크 계약을 한 곡이다.[* 기허풍우가 수록된 나문의 여러 음반들과 기허풍우와 관련된 일부 동영상을 보면 작곡가에 '추세호'라고 정확히 나온다. 기허풍우는 1990년대에 나문의 개인 콘서트에서 여러 번 불렸고, 2002년에 나문, 진혁신의 듀엣곡으로 리메이크되었다. 정식으로 사온 곡이기에 수많은 공연과 리메이크가 가능했던 것이다.] 당시 홍콩은 한국보다 훨씬 더 저작권에 엄격했다. 당시 홍콩과 대만의 여러 가요들은 한국이나 일본곡을 번안한 곡들이 많았는데, 번안곡의 경우 번안곡임을 명시했기 때문에 기허풍우가 희나리를 무단 번안을 했다는 설은 억측이다. 기허풍우는 본 영화는 물론 1989년에 국내에 수입된 VHS 비디오에도 그대로 들어있다. 한때 홍콩에서 만들어진 DVD판(한국어 자막도 있어서 국내에도 수입된)은 물론, 최근에 만들어진 리마스터링 DVD판에 이 노래가 삭제되고 [[영웅본색 2]]의 주제곡인 분향미래일자로 바뀌어 수록된 적이 있었다. 2014년 4월 1일 [[장국영]] 추모 11주기를 맞아 채널 CGV에서 방영한 버전에는 기허풍우가 그대로 삽입되었다. * 극중에서 송자호(적룡)가 동생 송자걸(장국영)에게 의절당한 후 택시회사로 가서 취직하는 장면은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의 [[택시 드라이버]]에서 따온 것이다. 그리고 송자걸이 세면대 수납장 유리를 주먹으로 치는 장면은 [[지옥의 묵시록]]에서 따왔다. * 주인공들의 총은 리로딩 없는 [[무한탄창]]으로, 악당들의 총은 딱총으로도 유명하다. 장전을 하기는 하는데 장탄수가 보통 총의 2배는 되는 듯 하다. 근데 총 맞을 때가 되면 총알이 갑자기 바닥난다. 그리고 총알 한 두 발정도는 맞아도 잘 뛰어다닌다. 개봉 당시에도 말이 많았고 홍콩 느와르를 까는 사람들에게 최대의 논거로 자주 인용되었다. 그런데 사실 1편은 후반부 부둣가 신에서는 저놈의 쌍권총과 [[SMG]]는 200발 정도는 되는 것 같지만 대체로는 무한탄창의 요소가 약하다. 오히려 배신한 상대편 보스를 응징하러 갈 때 총을 가득 준비하여 탄창을 갈 시간을 버느니 기냥 총을 내던지고 미리 숨겨둔 총을 꺼내 난사하며 싸웠다. 무한탄창의 극치는 2편으로 계단에서 미끄러지며 쏠 때 장난 아닌 무한탄창을 보인다. 이 영향으로 다른 홍콩 느와르물에도 더한 무한탄창이 나왔다. 무한탄창의 극치를 보여준 영화라면 왕조현이 출연한 살수특급(殺手蝴蝶夢, 원제는 살수호접몽(1989)) 이다. 마지막 총격전에서 딱 2정의 쌍권총으로 수 십여명을 쓸어버린다! 뭐 못 말리는 람보에선 수만발은 계속 쏘는 무한탄창 기관총 ([[M-60]]) 이 나오지만. 그런데 [[매트릭스]] 1편의 경찰본부 습격 장면에서 워쇼스키 형제는 그것까지 완벽하게 오마쥬하여 전혀 재장전 장면이 없는 총격전 씬을 연출한다. 다만 매트릭스의 해당 장면은 무한탄창이 아니라 후술하는 영웅본색의 풍림각 총격전 장면처럼 장전된 총을 바꿔가며 쓰는 것이다. * 재미있는 것은, 정작 영웅본색 1의 유명한 풍림각 총격전 장면에서의 총탄 수를 총 숫자와 맞춰서 계산해보면 정확히 들어맞는다는 얘기가 있다.[* 정확히는 처음 사용한 쌍권총 중 오른손에 든 총과(왼손의 총은 약 18발 정도 쏜다), 두번째로 사용한 총.각각 15~16발 정도를 쏘는데, 15발 장전이 기본이지만 실린더 내에 한발을 더 넣는 방식으로 최대 16발 까지 가능하기에 틀린게 아니다.] 즉, 장전된 총을 여러 자루 들고 화분에도 숨겨두어 '''총알이 떨어지면 탄창을 가는 장면 없이 다른 총을 집어드는''' 연출이 가능했던 것. 15발씩 들어가는 복열 탄창 권총이 상대적으로 익숙하지 않았던 당시 관객들[* 리볼버나 콜트 .45 같은 것은 6~8발 정도가 고작이다.]이 권총 두개로 수십발을 쏘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던 측면도 있다. * 그리고 총격전 장면을 잘 보면 한가지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데, 무한탄창으로 막 쏴대는 장면을 잘 보면 대부분 탄피는 커녕 슬라이드도 움직이지 않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상대적으로 가격이 비싼 공포탄식 [[프롭 건]]을 많이 준비하지 못했기 때문인 것으로 추측되는데, 어차피 탄창 빌 정도로 쏴대는 사람들은 주인공들 뿐이기 때문에 이들을 클로즈업 해서 보여줄 때만 공포탄식 프롭건을 쓴 듯. 단, 2편의 계단 장면처럼 묘사상 탄창을 가는 장면을 넣기 힘든 긴박한 장면일 때는 공포탄식으로도 무한탄창을 보여주긴 한다. * 알려진 바에 따르면 [[세계 최초]]로 베레타 92F가 나온 상업영화다.[* 92F가 M9으로 미군에 채용되고 민간 시장에 출시된 것이 바로 전 해인 1985년이다. 단 베레타 92 시리즈 전체로 치면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1983년작 [[더티 해리#s-2.4|더티 해리 4 - 써든 임팩트]]보다 늦지만.] 1편에서 주윤발은 [[베레타 92|베레타 92F]] 쌍권총으로 유명하지만 사실 한손에는 베레타, 다른 한손에는 [[브라우닝 하이파워]]를 들었다. 이것도 옥에 티 중 하나인데 한손에 하이파워를 들었다가 다음 컷에 쌍베레타로 바뀐다. 쌍베레타를 제대로 사용한 작품은 이 작품이 아닌 왕정 감독의 [[도신]]이다. 여기서도 주인공이 주윤발이고 총격씬에서 쌍권총을 사용한다. * 영웅본색의 주윤발 하면 [[만델라 효과|대부분은 쌍베레타에 레이벤 선글라스를 떠올리는데]] 이건 2편의 포스터 이미지일 뿐이지 본편에선 이러한 모습으로 나온 적이 없다. 위조지폐를 태우는 장면과 위조지폐를 제조하는 과정에서 선글라스를 착용하지만 총격전 장면은 아니고 풍림각 씬과 나머지 총격전 모두 선글라스를 쓰지 않았다. 물론.마지막 총격씬은 밤인지라 간지 내뿜겠다고 선글라스를 쓰면 앞이 안보여서 자폭하는 꼴이 되겠지만. * 영어 타이틀인 'A Better Tomorrow' 는 송자호(적룡) 와 재키(주보의) 가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에서 합창단 아이들이 부르는 노래의 제목이다. 송강아동합창단의 [[명천회갱호]](明天會更好)이며 '내일은 더 나아질 거야'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영웅본색의 삽입곡하면 당년정이 가장 유명한 편이지만 영판 제목을 고려해보면 명천회갱호는 이 영화를 잘 나타내는 곡들 중 하나로 볼 수 있다. [youtube(fRszjuYsLTI)] MR [youtube(lSO6nOKU4-A)] 1985년 대만 가수들이 부른 버전 [youtube(PzLWJdySER8)] 1985년 홍콩 가수들이 부른 광동어 버전 * 마크는 1편에서 죽었지만 2편에서는 쌍둥이 동생 켄이 등장한다. 그런데 [[성규안]]은 1편에서도 죽었는데, 2편에서도 나와 또 죽는다. 1편과 2편에서의 대우가 상당히 다르다. 1편에서는 대사가 차 안에서 담성에게 계략을 내놓는 부분 하나였고, 활약도 별로 없었다. 그러나 2편에서는 대사는 별로 없지만 포악함이나 액션을 많이 보여줬다. 성규안이 다시 나오는 것은 오우삼 감독의 데뷔작 철한유정의 인연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철한유정은 상당히 폭력적이어서 2년동안 창고에서 묵혀져 있었다. 이 인연은 오우삼의 또 다른 대작인 [[첩혈쌍웅]]에서 또 이어지게 되며, 이 때는 성규안이 '''최종보스''' 역할을 맡았다. * 2편에서 흰 장갑을 낀 선글라스 킬러(용명은)와 주윤발이 총격전을 벌인다. 그런데 주윤발의 총에 총알이 떨어졌는데,[* 그런데 잘 보면 주윤발 허리춤에 안 쓴 권총이 하나 꽂혀 있다.] 그냥 쏴 버리면 될 것을 자기 권총을 건네준다. 그리고 서로의 총을 교환해서 결투, 결국 죽는다. 이것은 일본 사무라이 영화의 결투 장면에서 가져온 것이라고. 사실 이 킬러 캐릭터 자체가 두목이 준 돈을 무시하고 싸우러 가는 등 뭔가 달관한 분위기다. 그리고 이 킬러는 한국영화 [[아저씨(영화)|아저씨]]에 등장하는 킬러 [[람로완]]에게 영향을 주기도 한다.[* 람로완 또한 돈이나 [[차태식]]을 죽이는 것에는 관심없고 어느 순간 차태식과 결투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총 대신 칼을 들고 마지막 일기토를 벌인다] * 1편에서 오우삼 감독과 제작자인 서극이 카메오로 출연한다. 서극이 주보의의 오디션 심사위원으로 등장한다. 오우삼은 [[경정서|대만 경찰]] 간부 역할을 맡았다. 오우삼은 풍림각 현장을 찾았을 때, 송자호가 출소했을때 교도소 앞에서, 견숙의 택시회사에서 송자호가 마크를 데리고 도망가는 걸 봤을 때, 마지막 항구 총격전 후 다른 경찰들과 상황을 보러 왔을 때 등에 등장한다.그리고 [[첩혈가두]]에서도 경찰로 출연한다.또한 오우삼 감독은 오프닝에서 주윤발에게 음식을 팔다가 경찰에게 쫒겨 도망가는 노점상 주인 역도 맡았다.--위장 근무중이었으나 홍콩 현지 경찰과 공조가 안되었던 모양이다-- 노점상 주인 역이 오우삼 이라고? [[파일:attachment/영웅본색/johnwoo.jpg|width=250]] [[파일:attachment/영웅본색/shuke.jpg|width=300]] * 2편의 선글라스 킬러[* 주윤발과 마지막 대결에서 선글라스를 벗는데 상영 내내 쌓아온 묵직한 이미지가 단번에 날아갈 만큼 구수하게 생겼다.]에게는 대사가 없다. 참고로 이건 [[장피에르 멜빌]]의 느와르 영화 [[한밤의 암살자|사무라이]]의 오마쥬다.([[알랭 들롱]]이 말이 없는 고독한 킬러로 나온다.) 아열대에 가까운 기후인 홍콩에서 롱코트가 난무하는 것도 이 영화의 영향. 그런데 사실 배경은 홍콩의 겨울이며[* 경찰들이 동복인 흑색 제복을 입는다.], 아무리 열대라고 해도 홍콩의 겨울날씨는 15~18도 근처이기 때문에, 롱코트를 입어도 딱히 더운 것은 아니다.[* 홍콩인들은 고온에 적응되어 있어서 이 정도 날씨에도 쌀쌀함을 느낀다.] * 액션 씬에서의 슬로우모션은 오우삼 자신의 스승 [[장철(1923)|장철]]과 [[샘 페킨파]]의 영향. * 오우삼이 주윤발을 섭외한 이유는 그가 익명으로 남을 돕는 따뜻한 마음씨를 가진 사람이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런 배우가 적격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이 때문인지 주윤발은 [[첩혈쌍웅]], [[리플레이스먼트 킬러]] 등에서 마음씨 넓은 킬러로 나온다. 참고로 주윤발은 영화에서 조직의 해결사 역할로 나온다. * 영웅본색 이전까지 주윤발은 TV 드라마에서는 승승장구했으나 출연한 영화는 드라마 만큼 흥행하지 않았기에, 그를 캐스팅하는 것에 대한 반대가 심했다고 한다. 한국이나 헐리우드도 마찬가지지만, TV극과 영화는 약간 연기폭이 다른지라, TV용 배우가 영화에서 성공하는 예가 그다지 흔치 않았는데 주윤발도 초기에는 마찬가지였다. 주윤발은 데뷔 이래 TV 연기와 함께 영화에도 계속 출연하며 등대여명(等待黎明)으로 1985년도 대만 금마장 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받는 등 영화 배우로도 성공했으나, 드라마 만큼의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주윤발이 주연작으로 출연한 한국 개봉명 "에스케이프 걸"이라고 알려진 의개운천(1986)은 영웅본색과 같은 해에 제작되었으나, 한국에서는 의개운천이 영웅본색보다 먼저 개봉되었다. 이 영화의 여자 주인공인 [[왕조현]]은 한국에서 인지도가 있었으나, 주윤발은 영웅본색이 뜨기 이전까지는 한국에서 잘 알려지지 않았다. 1987년 한국의 개봉관에서 영웅본색보다 조금 늦게 개봉한 강호정의 경우 오히려 공동 주연인 알란 탐을 더 띄웠을 정도.] [[유덕화]]도 TV에서 영화로 넘어올 때 한동안 공백기를 겪었다. [[적룡]]의 경우도 1970년대 [[왕우]]와 함께 무협의 대스타였으나, 홈그라운드였던 [[쇼브라더스]]가 영화 부문에서 부진하자 적룡도 슬럼프를 크게 겪었다.[* 여기에 당시 탈모가 상당히 진행된 것도 문제였다. 무협극에서야 올백으로 넘겨 묶거나 아예 [[변발]]을 하기 때문에 이마가 드러나도 상관없지만.. 그래서 현대극의 역할은 제한되어 있었는데, 중후한 중년 연기로 그런 한계를 극복했다.] [[정소추]]같은 중화권에서 큰 사랑을 받았던 TV스타도 영화에서 주연을 맡은 일은 극히 드물 정도. 그런 면에서 영웅본색은 주윤발에게 여러모로 의미 있는 작품이었다. 여기에 진지한 배우라기보다는 아이돌인 장국영까지 고려하면 이 영화의 주연들은 어딘가 2%씩 모자란 면이 있었는데, 서로의 시너지로 그 부족했던 면들을 채워주면서 명연기를 보여주었다. * 서극 감독은 처음에는 영웅본색 3편을 연출할 생각은 없었다. 원래 기획했던 작품에서는 [[양자경]]을 주인공으로 하여 세 여자의 우정과 고난을 다룰 생각이었다고, 그렇다면 [[양자경]],[[매염방]],[[장만옥]] 주연의 1992년작 동방삼협(東方三俠, The Heroic Trio)과 1993년작 동방삼협2(現代豪俠傳, Executioners)가 그 작품이 아닐까 싶다. * 풍림각 총격전에서 문에 기대어 있다가 마크에게 총살 당한 악당이 무명 시절의 [[주성치]]라는 주장이 한동안 인터넷에 떠돌기도 했지만, 이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 영웅본색의 IMDb 리스트에 캐스팅 목록에도 주성치의 영문명인 Stephen Chow가 나와있긴 하지만, 헐리우드 영화가 아닌 영화의 IMDB 영화 정보에는 오류가 매우 많으므로 IMDB 내용을 근거로 삼기는 어렵다. 되려 과거의 루머를 토대로 누군가가 IMDB에 정보를 추가했을 가능성이 높다. 참고로 중국어 위키백과나 바이두의 주성치 출연작 정보에는 영웅본색이 없다. 특히 유튜버 [[https://youtu.be/0zbWAc2WWh4?t=707 |B급리뷰]] 에서도 이에 대해 해당 단역배우의 다른 장면의 모습들을 근거로 순간적으로 옆모습만 비슷할 뿐 주성치가 아니라고 확인하고 있다. 실제 해당 유튜브 영상에서는 해당 장면을 확대하고, 다른 장면과도 비교해 보고 있는데, 해당 배우가 전혀 주성치가 아님을 손쉽게 확인할 수 있다. * 풍림각 총격전 장면은 여러 총격전 영화 가운데서도 가장 인상적인 명시퀀스로 꼽힌다. 이전에 극히 드물었던 자동권총 [[쌍권총]]이 등장하거나 총격전 와중에서도 옷매무새를 가다듬는 여유, 탄창이 빈 총은 갈아끼우는 수고 없이 그냥 내던지고 숨겨둔 총을 잡는 주윤발의 동선은 이후 다른 홍콩 느와르나 [[쿠엔틴 타란티노]]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이 장면은 사실 오우삼의 스승격인 [[샘 페킨파]] 영화의 영향도 있고, 그 비장미는 일본의 여러 사무라이 영화로부터도 영향을 받은 것이다. * 풍림각 총격전 직전에 나오는 음악은, 대만의 가수 진소운(陳小雲)이 부른 '[[https://www.youtube.com/watch?v=pYtOMRTHde8&list=RDpYtOMRTHde8&start_radio=1|면실지(免失志, 낙심 말자)]]'이다. 이 노래는 보통화나 광동어 노래가 아니라 [[대만어]]로 부른 노래이다. 그리고 1편의 주제가는 [[當年情|당년정]](그때의 정)이나 2편은 [[奔向未來日子|분향미래일자]](내일을 향해 달려요)이다. 두 노래 모두 장국영이 불렀으며, 광동어로 되어 있다. * 오우삼 감독은 [[장국영]]의 연기력이 떨어질까봐 촬영 내내 걱정했다. 실제로 장국영은 본 작품에 출연하기 전에는 영화배우라기보다는 [[아이돌]]로 간주되었고, 이전의 영화 출연작 대부분이 로맨틱 코미디물에 가까운 아이돌물(바람둥이, 뺀질이, 얼빠진 [[졸부]]아들 등)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장국영의 숨겨진 연기력을 발견하는 계기가 되었다. 장국영의 연기력은 중국 현대사에 휘말린 한 경극 배우의 일생을 다룬 대작 [[패왕별희]]의 주연을 무리 없이 소화할 정도이다. 중후한 [[미중년]] 연기를 보여줄 시점에서 세상을 떠났던 참으로 안타까운 배우. * [[적룡]]은 현대극 경험이 많지 않아 걱정을 했는데, 장국영이 처음 만났는데도 친동생처럼 살갑게 대해줘서 자연스럽게 연기할 수 있었다고 고마워했다. * 국내에서 입소문에 의해 광풍에 가까운 인기를 얻었으며 인기 절정에서 2편이 개봉 할 당시에 주윤발, 적룡과 감독이 직접 영화를 개봉한 화양, 대지극장까지 방문하였다. 극장 무대에서 인사를 할 때 잘 웃고, 광고로 친근한 이미지였던 주윤발에게는 팬들이 떼로 몰려들어 옷이 뜯겨질 정도였던 반면 자호 역할로 나왔던 적룡에게는 그리 하지 못했다. 키는 큰데 호리호리한 주윤발과 달리 실제로 보니 예상 외로 적룡의 키가 큰(183cm) 데다, 젊은 시절 권법으로 다져진 일반인 1.5배의 딱 벌어진 어깨와 중후한 인상이 엄청난 포스를 뿜어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 그 인기에도 불구하고 2편 개봉 당시까지 정식 캐릭터 상품이 나오진 않았다. 2편 개봉관 앞에서 팔았던 티셔츠는 수입사 허락 없이 팬이 직접 만들어서 판 것. (그 팬은 수입사에 연락은 하였으나, 계획이 없다고 하자 그냥 찍어서 팔았다. 100여 벌 만들었고 거의 제조 원가만 건졌다고.) [[파일:적룡 홍콩 1.jpg]] 기존에 주연으로 설정되었던 적룡과 사실상 주연이 된 주윤발 * 주연이었음에도 [[주윤발]]에 밀리는 모양새가 된 [[적룡]]이었지만 결과적으론 적룡이 주윤발을 띄워주는데 결정적인 공헌을 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적룡 역시 전성기 때는 식스팩 근육에 잘생긴 얼굴까지 갖춘 미남이었지만 영웅본색 1편 촬영 시 머리가 조금씩 벗겨진 모습이었던데 반해서 8살 아래인 주윤발은 적룡 못지 않은 장신인 185cm의 키의 훤칠한 모습이었던데다 극중 이쑤시개를 물고 폼 잡는 모습에다 돈을 태워서 담배불 붙이는 장면이 강하게 어필한 덕에 적룡은 흘러간 스타, 주윤발은 떠오르는 스타 이런 식의 공식이 성립된 모양새가 되어서 더더욱 주윤발을 빛나게 한 측면도 있다. * 오우삼이 적룡을 섭외한 이유는 70년대 초반 장철 감독의 조감독이었던 시절부터의 인연 때문이다. 70년대 내내 스타였던 적룡이 80년대에 들어서면서 주류에서 밀려나면서, 대만에서 저예산 무협영화들에 출연하게 된게 안타까웠다고 한다. 결국 이 영화 덕분에 적룡도 제2의 전성기를 맡게 된다. * 과거 적룡이 무협물 전문이었던 점을 감안했는지 총기 액션위주인 이 영화에서 거의 유일하게 육탄전 액션을 맡아한다. 1편에서 택시회사에 쳐들어온 조직원들 상태로 스패너 하나 잡고 무쌍을 찍었고 2편에서 총알이 떨어지자 권격을 날려대다 일본도를 뽑아 악당을 베어넘긴다. * 오우삼식 [[사망 플래그]] 중 하나인 하얀 정장이 처음으로 등장한다. 영화 초반엔 적룡이, 후반엔 이자웅이 입고 있다. --하지만 적룡은 안죽었다-- * [[대한민국]] 팬들 한정으로 [[주윤발]]의 이쑤시개 물고 폼 잡는 것과 돈에 불붙여서 담배 피우는 걸 본 사람들이 너도나도 그걸 흉내내는 현상도 있었다. * 정말 잘 알려지지 않은 영화로 신 영웅본색이란 영화가 있다. 영어 제목조차도 Return to a Better Tomorrow(돌아온 영웅본색) 이었다. 감독은 왕정. 주연은 정이건, 구숙정으로 1994년 한국에 개봉하여 서울 관객 7750명이라는 참혹한 흥행을 거두고 철저하게 묻혔다. * 오우삼이 헐리우드로 날아가서 만든 영화인 [[페이스 오프(영화)|페이스 오프]]의 마지막 대결인 장례식장~해변가 추격전은 영웅본색 2편에서 주연들이 상복을 입고 싸우는 장면을 변형한 것으로 보인다. * 2009년 한국 재개봉 시 상영했던 영화관은 서울 "드림시네마"로, 옛날의 화양극장이다. 최초 개봉관이었던 그 자리에서 재개봉한 것이다. * 2009년 한국 재개봉시 이벤트로, 매표소에서 [[주윤발]] 코스프레와 돈담배 인증 시 무료 입장이었다. * 한겨레와 중앙일보 논설위원이자 [[100분 토론]]의 첫 진행자로 유명한 언론인 정운영이, 2005년 9월 별세하기 전에 중앙일보에 마지막으로 쓴 칼럼 제목이 '영웅본색'이다.[[http://article.joins.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1676277|#]] 때문에 고인에 대한 책이 나오거나 기사가 나오면 꼭 저 제목이 언급되기도 한다. * 영화가 방영되었을 당시에 어린이들이나 중학생들이 아카데미 과학제 에어 소프트건을 가지고 주윤발을 따라하며 놀았다. 당시 부모님의 선글라스나 코트를 입고 다니며 놀다가 혼났던 기억이 한 번쯤 있을 것이다. * '''아시아'''에서 홍콩 느와르 붐을 일으키는데 가장 큰 역할을 했으며, 아직까지도 1960, 70년대생들에게는 잊을 수 없는 명작이지만, 정작 제작국 홍콩의 1990년생 이후의 신세대들은 잘 모르는 사람이 많다. [[https://www.youtube.com/watch?v=0nQQPpZzeaQ|한국에 사는 한 홍콩인 미라의 한국인의 홍콩에 대한 오해]] * 주보의가 맡았던 재키 역은 유덕화의 전 여자친구인 유가흔에게 먼저 제의가 들어왔으나, 유덕화의 반대로 출연하지 못하였다. 2009년 유가흔은 중국신문과의 인터뷰에서 '1983년 경 영웅본색 섭외가 들어왔으나 유덕화가 하지 말라고 해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다만, 유가흔은 유덕화가 장국영에 대한 라이벌 의식 때문이 아니라 출연하는 것 자체를 원치 않았다고 입장을 분명히 하기도 했다. * 연출 오류인지 감독의 의도인줄은 모르겠으나 송자걸의 상관이 자걸에게 형 송자호 이야기를 하면서 3년 전에 실종됐는 줄 알았는데 최근에 감옥에서 출소해서 옛 조직원들을 만난다고 말한다. 3년 전에 대만을 발칵 뒤집은 홍콩 위조지폐 조직 송자호 검거 사건을 모른다? * 송자호(宋子豪)와 송자걸(宋子傑)은, [[호걸|호(豪)와 걸(傑)]]을 나눠 가진 셈이다. * 주윤발의 Mark 캐릭터는 홍콩 현지에서도 워낙 유명했는지 주윤발 주연의 영화 <정장추녀자>, <대호출격> 등에서 셀프 패러디[* 정장추녀자에서는 풍림각 씬이, 대호출격에서는 주윤발이 여자를 꼬시는 장면에서 자신을 Mark라고 소개했다.] 되었다. * 한국의 로맨틱 판타지 드라마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에서 패러디되었다. 무술감독인 반두홍 감독 역을 맡은 [[성동일]]은 작품 내내 바바리 코트를 입은 채 선글라스를 끼고 성냥개비를 물고 다니는 주윤발의 캐릭터를 유지했으며, 1화에서는 [[當年情|당년정]]까지 OST로 깔린다. * 가수 [[임영웅]]의 이름도 바로 영웅본색에서 유래되었다. 아버지가 영웅본색을 좋아하셔서 그렇게 지었다고 한다. 실제로 임영웅의 아버지는 둘째가 태어나면 이름을 '본색'으로 지으려고 했다고 한다. * 중국산 모바일 게임 [[스테이트 오브 서바이벌]]의 2021년 이벤트 광고(3월 12일 아시아 한정판)로 영웅본색이 쓰였다: 그 시절 우리의 따거가 돌아왔다. * 2022년 10월 23일부터 국내에서 [[넷플릭스]]를 통해서도 시청이 가능하다. [각주] [[분류:영웅본색 시리즈]][[분류:1986년 영화]]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