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영종(남송) (문단 편집) == 송사의 논찬 == ||||{{{#!wiki style="margin:10px" 송나라는 살아있는 동안 황위를 물려준 황제가 4명이었는데, 영종의 선위는 오직 당시의 정세가 어려웠지만 능히 예절을 잃지 않았기 때문에, 이것은 과연 선처라고 할 수 있었다. 초년에는 옛 학문으로 올바르게 인도한 공적이 있었고 학식과 명망이 높은 선비를 등용하며 선한 무리를 인용하고 발탁하여, 한때는 선왕의 법을 따라 황위를 이어받아 정사를 다스렸으니, 찬연하여 볼만하였다. 재위 중반에는 [[한탁주]]가 권세를 이용하며 안으로는 간사한 무리를 품어, 마음씨가 올바른 자를 간사한 자로 손가락질하고 올바른 학문을 [[경원위학의 금|거짓된 학문]]으로 손가락질하기에 이르렀으며, 밖으로는 세력이 강한 이웃을 [[개희북벌|도발]]하여 회하에 해로운 독이 퍼졌다. 여러 해 동안 군대가 패배하자 이에 한탁주의 머리를 함에 담아 [[금나라]]의 화의하니, 국체가 기울었다. 이윽고 [[사미원]]이 권력을 제멋대로 하였는데, 운 좋게 황제가 연로하고 정신이 없어서, 위압과 복덕을 도둑질하며 업신여겼다. 황태자와 국통(國統)에 이르러, 기회를 타서 틈을 엿보고 또한 결국 폐립을 사사로이 할 수 있었음을 사미원은 알 수 있었다. 비록 그렇지만 송나라가 동도에서 [[인종(송)|인종]]에 이르러 4대를 전하여 내려오고 100년을 재위하여 소옹(邵雍)은 이를 전대미문이라고 일컬었는데, 남쪽으로 파천하고 영종에 이르러 또한 4대를 전하여 내려오고 98년을 재위하였으니, 이 또한 어찌 우연이 아닐 수 없겠는가. 매우 안타깝게도 황위를 물려줄 때 영종·[[이종(송)|이종]]의 상황과 인종·영종의 상황을 비교하면, 그 발자취가 비록 같았다고는 하나 그 사정은 서로 멀리 떨어져 있었다.}}} ---- {{{#!wiki style="margin:4px; text-align: right" {{{-2 - 『[[송사]]』}}}}}} ||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