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영주시 (문단 편집) == 기타 == * [[경상북도]]에서는 [[경주시]] 다음으로 [[안동시]]와 더불어 [[양반]]이 많았던 곳으로, 전국에서는 경주, 목천[* 현재의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목천읍]] 및 그 주변. [[독립기념관]]이 있는 곳이다.] 다음의 3번째 순위였다. * 시내 버스 정류장이 많이 개선이 되었으며 관광 안내판은 개선 중이지만 큰 진전이 없다는 평이 많다. * 작은 지방 도시임에도 불구하고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프라모델]] 매니아가 많았다. 영주시 거주 프라모델 동호인들 자체적으로 전시회를 열기도 했고 잡지 [[취미가]]의 정기적인 취재가 있기도 했다. 하지만 2010년대로 접어든 지금은 [[플래툰(잡지)|플래툰]]을 갖다 놓는 서점도 없다. * [[선비]] 명칭 사용 때문에 [[안동시]]와 사이가 좋지 못해서 안동시와 영주시 간의 [[지역감정]]이 꽤 있는 편이다. 이런저런 내용의 시사만평([[http://www.yji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3474|#1]], [[http://www.yji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9759|#2]], [[http://www.yji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9761|#3]], [[http://www.yji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7721|#4]])이 지역언론에 실리는 것을 보면[* 이 시사만평의 작가는 영주 모 고등학교 미술교사로 재직하다, 2015년 기준 같은 재단의 모 여고 교장으로 재직 중이라고 한다.] 이제는 선비 명칭 뿐 아니라 전반적으로 안동에 대해 좋지 못한 감정을 가진 듯. 사실 통계상으로 보자면 영주에 속했던 풍기는 전국에서 손꼽히는 양반 인구 밀집 지역이었고, 또 다른 영주의 전신인 순흥이나 영천과 함께 인구 대비로 양반 비중이 전국에서 충청도와 더불어 상위권이었다. 그런 반면 안동에서 양반의 고장이라고 손꼽을 만한 지역은 퇴계 이황의 고향인 예안이다. 전근대까지 안동이랑 별개의 지역이라 예안을 제외하면 영주와 비교해 안동 자체가 양반이 훨씬 적은 편인데도 영주가 존재감이 없으니 상실감이 광장히 큰 듯 하다. * 타 지역 대비 임금이 저렴하고 물가가 비싼 편이다. * 교통편에서는 회사원 기준으로 택시, 버스를 타는 것보다 자동차를 타는 게 더 이득이라고 한다. * 택지 쪽이 좀 더 바람도 세고 춥다. 아마 산을 깎아 만들어서 해발고도가 더 높기 때문인 듯. 아직 건물이 많이 없어 탁 트여있는데, 덕분에 겨울에 가보면 바람이 좀 많이 강력하다고 한다. * 영주시 동 지역에는 유명한 관광 명소가 별로 없다. [[소백산]], [[부석사]], [[소수서원]], [[영주 선비촌|선비촌]] 같은 영주에서 알려진 관광지는 모두 영주시에서도 읍·면 지역, 그 중에서도 옛 [[순흥군]], [[풍기군]], [[영풍군]] 지역에 있던 것들이다. * 영주시내의 지도를 살펴보면 남부육거리를 중심으로 도로가 격자형으로 정리가 잘 되어있는데, 여기에는 사연이 있다. [[1961년]] [[7월 11일]] 이 지역에 5시간 동안 200mm의 [[집중호우]]로 인한 큰 홍수가 발생해 영주시내 4분의 3이 침수되었는데, [[국가재건최고회의]] [[박정희]] 의장이 군용기를 이용해 긴급 방문, 군사 작전식 피해 복구 및 도시 재건 사업을 실시했다. 이 과정에서 원래 [[서천]] 제방 안쪽으로 형성되었던 시가지가 대규모로 확장되어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시가지의 확장과 함께 [[1967년]] [[경북선]]이 개통되면서 도심 남쪽에 신영주역이 들어서게 되었는데 특이하게도 [[1973년]]까지 구영주역과 신영주역으로 나뉘어 같이 운영되다가 같은 해 이전 선로와 구영주역을 철거하고 모든 업무를 신영주역으로 이전하면서 신영주역이 현재의 [[영주역]]으로 변경되었다. 철거된 구 영주역 부지에는 영주중앙시장이 형성되었다. 한편 복구 사업 도중 서천 물길을 돌리는 직강공사를 했는데, 원래 서천은 제민루와 구성공원이 존재하는 언덕 사이를 꼬불꼬불하게 지나갔으나, 서천 물길을 돌리는 직강공사를 하면서 현재의 제민루가 있는 언덕과 시립도서관이 있는 산 사이를 절개 및 발파하였고, 그 때의 흔적으로 강바닥에 다른 곳에는 없는 바위가 드러나게 되었다. 이처럼 8개월 만에 도시 하나를 아예 새로 갈아엎는 방식의 재건사업을 완료한 끝에 [[1962년]] [[3월 30일]] 내외귀빈이 참석한 준공식에서 삼판서고택과 구 도립도서관 사이 강둑에 기념식수를 시행했다. 당시는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의 직함이었던 터라 "박정희 장군" 기념식수다. 현재의 나무는 처음 심었던 나무가 말라죽자 1979년에 다시 심은 것이다. 자세한 내용은 다음의 글을 참고하자. [[http://www.kbmaeil.com/news/articleView.html?idxno=221931|#1]][[http://www.yeongnam.com/mnews/newsview.do?mode=newsView&newskey=20130226.010140730260001|#2]][[http://blog.daum.net/shgh1225/8762740|#3]] 그리고 이로 인해 서천 주변의 영주시 법정동의 경계와 행정동 경계가 많이 달라졌는데, 법정동 가흥동의 일부가 행정동 영주2동과 휴천2동에 걸쳐 있는 것이 대표적이다. * 2016년 11월 15일,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여파로 전국 유림 중 최초로 영주 지역 유림들이 박근혜 퇴진을 촉구하는 격문을 발표했다. [[http://news.jtbc.joins.com/article/article.aspx?news_id=NB11356736|#]] * 시내 서쪽을 흐르는 서천에는 교량 4개(서천교, 영주교, 가흥교, 제2가흥교)가 있는데 일부 다리는 무지갯빛으로 빛나는 LED 조명등이 설치되어 있다. 강변에는 [[제방]]과 둔치가 있으며 시민들은 이곳을 뚝방이라고 부른다.[* 영주 출신의 밴드 [[볼빨간사춘기]]의 곡 ‘가끔씩(우지윤의 보컬 스틸)’에서 언급된다.] 둑 위에는 작은 길이 있어 운동하거나 산책하러 나온 사람들이 많으며 시민회관/주공아파트 주변에는 운동 시설과 쉼터, 식당 등이 있다. 제민루부터 경북전문대까지는 벚나무가 심어져 있어 봄철에 [[벚꽃]]구경하러 오는 사람들이 많다. * [[흑역사]]로 남은 [[폐건물]]이 있는데 2008년에 부분적으로 개장한 판타시온 리조트이다. 나머지 시설을 다 건설하기도 전에 건설회사가 부도났으며, 2011년 다시 개방됐을 찰나에 얼마 못 가 또 다시 문 닫히게 되었다. 그 후 계속된 경매를 통하여 소유권만 바뀌고 정작 발전은 없이 12년간 방치되다 2023년 8월 한 회사가 부지를 매입하여 새로운 개발 계획을 밝히고 기공식까지 가져 재개방 급물살을 타고 있다. * [[제1연평해전]] 당시 함포로 북한 경비정을 격파한 [[포항급 초계함]]이 영주함이다. * [[봉화군]]이 영주에 굉장히 많이 의존하고 있어, 거의 대부분의 사례에서 서로 묶이는 편이다. * [[빨간내복야코]]가 이 도시의 [[https://youtu.be/o6slrZBI-tc|광고영상]]을 제작했다. 무려 장르가 [[헤비메탈]]이며 분명 광고 영상인데도 엄청난 중독성으로 호평을 받고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