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영지(역사) (문단 편집) === 급여 보유지 === 이 봉토 즉 fief 혹은 beneficium으로 표현되는 [[토지]]는 상기했듯 근원적으로 [[봉급]]으로써 [[화폐]]가 아닌 토지를 수여하는 방식이었으므로, 귀족의 커다란 영지 말고 가신에 급여로 수여한 작은 밭뙤기라도 같은 표현으로 지칭되었다. 이러한 봉토는 전문직, 예를 들면 [[서전트|대장장이, 화가, 목수, 석공, 집사]], [[기사(역사)|병사]] 등이 수여받았다. 물론 이런 봉토는 1망스(manse),[* 영국에서는 '[[하이드|hide]]'가 정확하게 대응하는 개념이며, 우리말에서도 '결'([[結]])에 같은 뜻과 용례가 있다. 'manse'의 [[동원어]]로는 '[[맨션|mansion]]', '[[장원(농업)|manor]]'가 있고, 한편으로는 'manse' 그 자체가 성직자의 관사인 '사제관' 혹은 '목사관'이라는 뜻으로도 파생되었다.] 즉 가족 하나를 부양할 정도로 크기가 작은 토지로서 농노도 딸려있다기에는 좀 애매한 수준으로, 커다란 권한이 있거나 수익성이 높은 토지는 아니었다. 따라서 저렇게 최소한의 기사봉만 받은 최하급 기사들은 토지를 동네 농노에게 알아서 경작하라고 맡겨둔 채 가끔 들러서 식량 좀 보충하러 오는 정도였고, 자신은 용병업 뛰러 돌아다니는 게 더 전형적인 현상이었다. 기사가 아니라 서전트라면 의무상 군역보다는 기타 봉사가 우선이라 본인 봉토나 주군 곁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으니 그냥 자기가 농사를 짓기도 했다. 다만, 이들 전문직은 영주와 가까운 마을 유지 정도의 신분이니 관습적인 권력으로서 이런저런 편의를 볼 수 있기는 했다. 당대 사람들은 이런 소토지가 영주가 지배하는 대토지와 동일한 단어로 표현되는 것을 매우 난감해해서, 이런저런 말을 붙여서 어떻게든 구분하려고 했다.[* 가령 독일어권에서는 'gut'을 사용하였다. 이를테면 기사봉은 'rittergut'이라 하였다. 이 말은 영어 '[[good]]'과 동원어이다.] 하지만 fief라는 단어가 어원에서부터 가지고 온 '봉급'이라는 개념은 봉건사회가 끝날 때까지 떨어지지 않았고, 현대에도 영어에 fee라는 단어로 그 흔적이 남아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