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영천시 (문단 편집) == 역사 == ||<-10> '''영천시 행정구역 변천사''' || || 영천군[br](永川郡, 1895)[br]신녕군[br](新寧郡, 1895) ||<|2> → || 영천군[br](1914) || → || 경상북도 영천시[br](1981)[br]경상북도 영천군[br](1981) ||<|2> → || '''경상북도 영천시[br](1995)''' || 고대에는 [[골벌국]]이라는 [[소국]]이 있었다. 여담으로 고구려 사람인 백석이 김춘추와 김유신을 속여 고구려로 데려가고 있을 때 세 산신이 여인으로 나타나 백석의 의도를 알려줘 김춘추와 김유신이 위기를 모면한 이야기가 삼국유사에 나오는데 이 이야기의 배경이 바로 영천(당시 이름 골화천)이다. [[신라]] [[경덕왕]] 이전에 절야화군(切也火郡)이라고 불렀는데, 경덕왕의 전국 지명 한화정책 때 임고군(臨臯郡)으로 고쳤다. 신라 [[9주 5소경]] 중에서 [[삽량주|양주]]에 속했다. 거느리는 영현이 다섯이었는데 임천현(臨川縣, 완산동), 도동현(道同縣, 남부동), 신녕현(新寧縣, 화산면), 맹백현(黽白縣, 화북면), 장진현(長鎭縣, [[포항시]] 죽장면)이었다. 고려시대에는 영주(永州)로 불렸고, 이후 영천으로 바뀌었다. 영천군 시절의 역사는 [[영천군]] 항목 참조. 이후 1981년 7월 1일 영천군 내에 있던 '영천읍'이 '영천시'로 승격되어 분리되었고, 1995년 1월 1일 영천시와 영천군이 통합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