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영평군(1828) (문단 편집) === 어린 시절 === 1828년([[순조]] 28년), [[강화도]]에서 유배 중이던 [[전계대원군|전계대원군 이광]]과 그의 [[측실]]인 이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1830년(순조 30년) 이광이 유배에서 풀려나자 가족들과 함께 [[한성부]] 경행방으로 이주했다. 아버지 [[전계대원군]]이 [[은언군]]의 [[서자]]인데다가, 할아버지 은언군도 여러 안좋은 사건에 엮였기 때문에[* 부인 송씨와 며느리 신씨의 [[신유박해|천주교 순교사건]], 아들 [[상계군]] 추대 사건 등.] 처음에는 [[왕족]]의 작위를 받지 못했다.[* [[전계대원군]]도 살아 생전엔 봉군되지 못했다. [[철종(조선)|철종]] 즉위 후 전계군으로 추봉받고 곧바로 [[대원군]] 작위까지 받은 것.] 더군다나 큰형이자 전계대원군의 적자 [[회평군|회평군 이명]][* 1827 ~ 1844. 첫 이름은 이원경.]이 민진용 역모 사건[* 1844년(헌종 10년) 몰락한 [[노론|노론]] 인물 민진용이 이원덕, 박순수 등을 포섭하여 [[은언군]]의 [[손자]] [[회평군|이원경]]을 왕으로 추대하려다가 사전에 적발당한 사건이다. 민진용은 노론 재상 민응수의 4대손이었지만 그의 집안은 오래 전에 몰락하여 [[중인]]이 되었고, 민진용은 [[무인]]으로 생활했다. 민진용은 이원덕(李遠德), 박순수(朴醇壽) 등과 가깝게 지냈는데, 이원덕은 의원으로 [[전계대원군]]의 지인이었고, 박순수는 양아버지 박종훈(朴宗薰)의 음덕으로 [[음서]]로 관직에 올라 부사를 역임했다. 바로 이들과 함께 이원경을 추대하려다가 사전에 발각당해 전부 [[끔살]]당했다. 사족으로 [[여흥 민씨]] 집안에서는 이후 민진용 [[항렬]]의 '용(鏞)'을 '호(鎬)'로 바꾼다. 바로 [[고종(대한제국)|고종]] 시절 외척 세력이던 [[명성황후]]와 [[민태호(조선)|민태호]], [[민승호]], [[민겸호]] 등이 민진용과 같은 항렬이다.]에 엮여서 1844년([[헌종(조선)|헌종]] 10년)에 [[사사#s-2|사사]]당하자 [[이복형제|이복 동생]] [[철종(조선)|이원범]]과 함께 [[강화도]]로 [[유배]]를 갔고, 거기서 일반 [[농민]]들처럼 살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