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예루살렘/역사 (문단 편집) === 11세기의 혼란 === 셀주크 제국의 튀르크족 전사들이 11세기 무렵부터 파티마 왕조 치하의 팔레스타인 영토를 습격했다. 예루살렘은 1071년 아트시즈라는 셀주크 튀르크 군벌의 수중에 들어갔다. 아트시즈는 정통성 확보를 위해 셀주크 제국과 압바스 칼리파에게 충성을 맹세하였다. 그는 쉬아파에 대항한 성전을 주장하며 파티마 조의 수도인 카이로를 공격하는 모험을 감행했다가 대실패하였고, 여기에 고무된 예루살렘 시민들은 반란을 일으켰지만 돌아온 아트시즈에 의해 도시가 함락된 후 반란에 가담한 3천여 명의 시민들이 학살되었다. 이때 알 아크사 모스크에 피신한 이들도 죽음을 피할 수 없었다고 한다. 이러한 혼란의 와중에 아트시즈를 따르는 튀르크인 전사들이 예루살렘을 순례하는 아르메니아인 기독교도들이나 가톨릭 신자들을 습격하는 일이 증가했다. 그러던 1078년, 파티마 군대가 다마스쿠스를 포위하자 아트시즈는 셀주크 제국에게 도움을 청하였는데 그를 돕기 위해 파견된 [[말리크샤 1세]]의 동생 투투쉬 1세는 파티마 군대를 격파한 후 아트시즈를 살해하였다. (1079년) 투투쉬는 부관 아르투크를 예루살렘 총독으로 임명하였는데 1091년 그가 사망한 후 두 아들인 일가지와 소크만이 내분을 벌이며 예루살렘은 재차 혼란에 빠졌다. 그러던 1098년, 파티마 왕조가 예루살렘을 수복하기에 이른다. 같은해 안티오크가 [[1차 십자군]]에게 함락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