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예루살렘/역사 (문단 편집) === 예루살렘 왕국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예루살렘 왕국)] [[파일:55fbee2c7ed79776e93ebc6b341054265c63e153-1.jpg]] >[[데우스 불트|신께서 원하신다!]][* 원래는 라틴어로 DEVS LO VVLT, 즉 신께서 '그것을' 원하신다이다. 영어로는 Deus lo(s) Vult. 라틴어는 U와 V가 모두 V라서...] 1090년대에 서아시아가 혼란에 빠진 상황에서 [[그레고리우스 7세]]에 이어 교황으로 즉위한 우르바누스 2세는 1095년에 소집한 클레르몽 공의회에서 십자군 원정을 제창하였다(다만 20세기 이후에 들어 가톨릭 교회가 십자군에 대해 사과하며 클레르몽 공의회는 정식 공의회가 아니게 되었다).[* 2000년 3월 5일 교황청은 <회상과 화해: 교회의 과거범죄>라는 문건에서 십자군을 "교회가 저지른 범죄"라고 공식 인증했다. 또한 같은 해 3월 12일 성 요한 바오로 2세는,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집전된 미사에서 십자군의 만행을 교황이 주도하였다는 점을 사과하였다.] 원정의 표면상의 원인은 동로마 제국 측이 만지케르트 전투에서 셀주크 제국에게 대패한 후 지원을 요청한 것이지만 교황은 교황권의 확대와 동서 교회의 통합을 염두에 두었고 상속 받지 못한 왕자들은 영지 획득, 농노들은 순교에 대한 희망(...)을 품고 원정에 참가하였다. 원정대는 서로 물어뜯기 바쁜 튀르크 세력을 하나하나 각개 격파하며 나아갔고, 1099년 6월에 성도 앞에 도착하였다. [[파일:1099_Siege_of_Jerusalem.jpg]] 예루살렘 함락 1099년 7월 15일, [[1차 십자군]]은 파티마 왕조의 수비대의 항복과 함께 도시에 들이닥쳤고, 주민들을 보이는 대로 죽이기 시작하며 '성지 정화' 작업을 실시하였다. 그로써 수천 명의 무슬림/유대교도가 살해되었고 예루살렘의 길에는 장마비라도 내린듯 피가 홍건히 젖어 있었다고 한다. 물론 모든 십자군이 이 광란의 살육에 빠진 것은 아니다. 이후 트리폴리 백국을 세우게 되는 [[툴루즈]] 백작 레몽은 일부 주민들을 보호하거나 성 밖으로 피신시켜 주었다. 어쨋거나 예루살렘은 무려 462년 만에 기독교 국가의 수중에 들어오게 되었다. 그리고 다른 십자군 국가들은 공국이나 백국을 자처한 것에 비해 예루살렘과 팔레스타인에는 예루살렘 '왕국'이 건립되었다. 한편 바위의 돔도 성당으로 개조되었고 과거 성전의 터였음에서 이름을 따와 [[성전기사단]]이 창설되기도 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