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예수교장로회한국총공회 (문단 편집) == 공회 분열사 == '''1989년 8월 27일 주일 새벽 4시 50분 무렵, 백영희 [[목사]]가 [[설교]] 도중에 한 신자에게 [[피살]]된 이후'''[* 새벽[[예배]]가 끝나갈 무렵 한 신도가 갑자기 강대상 위로 올라가서 칼로 찔렀다고 한다. 너무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막을 도리가 없었다고... 이후 장례식에서 교인들 1만 5천 명 이상이 조문객으로 모였다고 한다. 해당 신도는 교회에 가끔 나오는 자인데 [[정신분열증]]을 앓느라 산상기도 중 백 목사를 죽여야 천국에 간다는 환상을 보고 실행한 것이라고 한다. 자세한 내용은 90도1328 대법원 판결로 확인할 수 있다.] '''부산공회파와 대구공회파로 갈라졌다.''' 이후 백영희 목사 사후 교단 운영을 두고 내부가 분열되었다. 부산공회는 백영희 생전 노선을 유지하는 보수 측이고, 대구공회는 백영희 생전의 설교를 예배 때 재독하는 것을 반대하는 등 생전의 모습을 변경하였다. 그리고 부산공회는 [[서부교회]] 시무투표를 계기로 파가 부공1[* 백순희 사모측. 부산의 백영희목회연구소.] 부공2[* 서부교회 후임 서영호 목사 지지측.], 부공3[* 백영희 노선 연구에 주력하는 측]. 2010년대까지 서부교회는 2층의 서영호 목사와 4층의 백명희 사모가 별도로 예배를 드렸다. 한편 대구공회도 성문헌법 제정 등을 계기로 서울공회와 대구공회로 갈라졌다. 현재 부산공회는 백영희 목사의 정통 보수 노선을 대체로 유지하며 대구공회도 초기 급격한 변경 입장을 포기하고 온건한 중도보수 노선으로 전향한 상태이다. 서울공회는 총공회의 특색과 외향을 거의 잃어버렸고 지도자도 없어 교단으로서 활동하지는 않는다. 대구공회 또한 겉으로는 총공회의 색이 많이 빠졌다.[* 총공회 자체 찬송가보다 일반 찬송가를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 일부 교회와 목회자들은 총공회 소속은 유지하되, 특정 공회에 소속을 원치 않기도 한다. 교세는 전국 200여 교회이며 현재 대구공회 소속 교회가 절반 정도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