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이동문서 삭제토론 예수회 (문단 편집) === 근황 === 이렇게 동방 선교가 쇠할 때쯤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국력도 약해지면서 예수회는 본격적으로 다른 수도회들의 견제를 받기 시작했고, 스페인도 왕권 지상주의를 앞세운 개혁에 나서면서 18세기 후반에는 예수회가 아예 해산되기까지 이르렀다. 그러나 예수회에 대한 압력은 [[아메리카]]에서 큰 권위를 누리던 예수회 세력의 반감을 불러,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 초반에 이르는 [[라틴아메리카]]의 [[독립운동]]에 큰 영향을 주게 된다. 대표적인 것이 1810년 [[멕시코]] [[독립운동]]에 나선 미셸 이달고 등의 신부였다. 18세기에서 19세기로 넘어오면서 예수회의 재건 운동이 시작된 한편, 라틴아메리카 지역에서 [[해방신학]]이 예수회 등에 의해 흥성하기도 하였다. 예수회는 현대에 들어서 중세나 근대만큼의 명성이 남아있지는 않다는 평이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전후로 예수회원들의 대거 [[환속]]이 있었고, 교황청에 의해서 이단 신학자로 경고를 받은 회원이 많다는 게 아이러니하다. 과거 예수회의 본래 영성이 쇠퇴하고 지나친 사회 참여로 이냐시오 영성이 훼손되고 있다는 비판이 있다. 2013년 3월, 호르헤 마리오 베르고글리오 [[추기경]]이 [[프란치스코 교황]]으로 선출됨에 따라 마침내 예수회 출신 교황이 탄생했다. 문제는 예수회 장상들이 [[프란치스코 교황]]이 수도사제였을 때 쫓아내려고 안달이 나 있었다는 점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아르헨티나]] 관구장 당시에 [[해방신학]]에 대하여 부정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었는데, 예수회 장상들은 이를 탐탁지 않게 여겼고, 탈퇴할 것을 종용했다. 그래서 지금도 교황은 탈퇴한다는 문서를 가지고 있는데, 안 그래도 탈퇴하려던 참에 갑자기 [[부에노스 아이레스]] 대교구의 보좌주교가 되면서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는 것이다. 수사가 주교가 되면, 수도회원이라는 신분을 유지하되 수도원장이나 수도회 총장에게 순명해야 할 의무에서 공식적으로 벗어나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수도자|수사]] 시절의 종신서원 때문에 수사 신분은 그대로 유지되지만 수도회원으로서의 신분에서는 자유로워진다. [[수도회]]마다 케바케인데, 예수회의 경우에는 예수회원이 [[주교]]로 임명되어 주교품을 받으면 예수회에서는 탈퇴하게 된다. 그러나 교구장 주교가 되어도 수사로서의 종신서원 때문에, 주교가 되어 예수회를 떠나도 평생 수도사제로 살게 된다. (ex: [[이한택]] 요셉 주교)][* 즉, [[교황]]으로서 [[바티칸 시국]] 국가 원수이면서 사제로서는 로마 교구 교구장인 [[프란치스코 교황]]도 [[수도자]]이다. 예수회에 입회하여 수사로서 수련 과정을 마친 후 종신수도서원을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회 장상들의 속사정은 그리 좋지만은 않다는 후문이다. 탐탁지 않게 보던 사제가 주교가 되고, 추기경이 되고, 교황이 될 줄 누가 알았을까. 다만 그렇다고 프란치스코 교황이 예수회와 아주 원수를 진 건 절대 아니고, 문장 안에 예수회 문장을 넣는다던가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2014년 방한]] 때는 예수회가 설립한 [[서강대학교]]를 깜짝 방문한다던가 하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애초에 십수억이나 되는 초거대 집단의 수장이 이 정도로 진보적인 형태를 보이는 것도 그가 나고 자란 라틴 아메리카라는 공간적 배경과 예수회의 영향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일부에서 의혹을 제기하는 것마냥 [[프란치스코 교황]]이 [[공산주의자]]는 아니다. 애초에 [[가톨릭]]은 성격상 결코 공산주의와 친해질 수 없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