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옌후이칭 (문단 편집) === 항일외교의 선봉장 === 1931년 9월 25일, 우차오수의 뒤를 이어 미국 공사로 임명되었으나 만주사변에 대응하느라 한동안 취임하지 못하였다. 미국 공사직을 1933년 1월 7일까지 재직하다가 [[스자오지]]에게 자리를 내주었다. [[만주사변]] 발생 이후 특별외교위원회가 성립되자 전 외교부장 [[왕정팅]]의 추천으로 위원으로 선출되어 일본군의 철수를 이끌어내기 위해 적극적인 대응을 연구하였다. 또한 일본이 국제연맹의 중재안을 수용하지 않을 가능성에 대비하여 [[와카쓰키 레이지로]] 내각과 협상하여 일본과의 직접 교섭하는 방안을 마련하고자 노력했으나 장제스가 3국의 조정을 받아야 일본이 굴욕적인 강화조약을 강요할 수 없으리라 여겨 무산되었다. 이후 [[다이지타오]], [[위유런]], [[구웨이쥔]]과 함께 일본의 <기본 대강 원칙>에 대응하기 위한 6개 항을 작성하였다. * 1. 일본 군대는 국제연맹의 감시 하에 점령 구역 내에서 철수한다. * 2. 중국과 일본의 장래 교섭은 반드시 국제연맹의 감독 하에서 진행한다. * 3. 교섭의 지점은 제네바 혹은 국제연맹에서 지정하는 장소로 한다. * 4. 이후의 교섭은 국제공약이 정하는 원칙 하에서 진행되어야 하고, 다음과 같은 3가지 사항을 위반하지 말아야 한다. 이 3가지 사항은 중국 주권의 독립, 영토와 행정의 완전성 존중, 문호개방, 기회 균등의 기회를 실행해야 하고, 극동의 평화를 촉진하며 국책의 실행수단으로 무력을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 5. 일본은 이번 출병의 책임을 진다. * 6. 중국은 일본의 어떠한 제안에 대하여도 수정하고, 다른 방안을 제안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 1932년 [[제1차 상하이 사변]]이 발생하자 중국 대표로 국제연맹에 일본군의 침략를 제소하여 만주를 만주사변 이전 상태로 돌리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발표한 리튼보고서의 수정을 요구하는 한편 정력적으로 중국의 주권 회복을 위해 활동하였다. 1932년 국제연맹 특별대회, 1932년 국제연맹 13차 대회, 1932년 국제연맹 특별대회, 1933년 국제연맹 14차 대회에서 구웨이진, 궈타이치와 함께 중국 대표로 파견되었으나 일본의 국제연맹을 탈퇴를 비롯한 막나가는 행보와 서구 열강의 소극적인 태도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이를 두고 옌후이칭은 이솝 우화를 인용하여 "누가 고양이의 목에 방울을 걸겠는가?"라면서 평했다. 이후 미국 헨리 스팀슨 국무장관에게 일본을 제재해달라고 요청했으나 미국은 이를 거절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