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옌후이칭 (문단 편집) === 소련대사 시절 === ||[youtube(xAqBctWnh5c,start=120)]|| || 옌후이칭의 연설.[* 앞 부분은 [[장제스]]의 연설이다.] 영상 설명란에 따르면 소련 대사 시절 중국의 평화에 대한 노력에 대한 연설이라고 한다. || 이후 구웨이쥔과 함께 일본을 견제하기 위해서는 소련과의 관계 회복이 필요하다고 주장했으며 중소 상호불가침조약의 필요성을 건의했다. 1932년 6월 6일 국민당 중앙정치회의가 소련과 관계회복을 결의함에 따라 옌후이칭은 소련과 국교 회복에 대해 담판했고 1932년 12월 12일, 소련 외교부장 막심 리트비노프와 국교 회복 선언을 발표하였으며 12월 15일 중소 불가침 조약 체결에 성공했다. 이에 따라 옌후이칭은 1933년 1월 6일 최초의 소련 공사로 임명되어 3월 5일 부임했으며 1935년 대사로 승격되었다. 1933년, 소련에 억류 중이던 [[마잔산]] 부대의 석방을 주선하였으며 이때 마잔산의 참모였던 [[이범석]] 역시 같이 석방되었다. 1935년, [[하매 협정]]과 [[진토 협정]]이 체결되자 크게 반발하여 "난징정부는 외교에 대해 어떠한 결단도 보이지 않고, 시기에 따라서 적당한 행동을 채택하면서 국제사회의 변화를 기다리고 있다. 어느 시대에도 외교문제에 대해 국가의 여론을 일치시킬 순 없었다. 외교부 부장이 되면 무엇이 정확하고 현명한 여론인지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만약 대다수가 어떠한 정책을 채택하기를 원한다면 외교부장은 그것을 결정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결국 선안내 후양외 정책에 대한 항의 표시로 1936년 3월 23일에 소련대사에서 사직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