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오륙도 (문단 편집) == 한센병 환자촌, 용호농장 == 현재 해맞이공원이 있는, 오륙도와 가장 가까운 육지 부분은 옛날에 [[나병]] [[환자]]촌이 있던 지역이었다. 태평양 전쟁 때에 부산 해안에 수많은 해안포 진지를 세워놓았는데[* 해안포 진지가 많이 사라졌지만, 그래도 아직 남아있는 곳이 있다.], 전쟁 후에 무기가 빠진 해안포 진지 동굴에 한센병 환자들이 모여살기 시작하면서 나병환자촌이 들어서게 된다. 이후에 나병환자들은 농업과 축업[* 양계장으로 닭고기와 계란 등]으로 인근 시장에 식료품을 공급하면서 살아가다가, 농장과 주거지가 낙후되기 시작하면서, 한센병 환자들은 소록도 같은 다른 한센병 환자촌으로 이전을 한다. 그리고 그 빈자리에 [[2005년]]부터 [[SK건설]]에서 [[재개발]]을 추진하여 2008년에 27~47층짜리 초고층 고급 [[아파트]]인 [[오륙도 SK뷰]]가 세워지고 과거의 낙후한 모습은 흔적을 찾을 수 없게 되었으며 그 옆에는 오륙도 해맞이공원이 조성되었다. --물레방아가 물 없이 돌고 있다-- 당시 농업과 축업으로 생계를 이어나갔기에 용호농장이라고 이름이 붙였졌는데, 시작은 감만동에 1910년에 세워진 상애원(相愛園)이라는 한센병환자촌을 기원으로 한다. 호주 기독교선교부에서 운영한 시설은 1935년에는 650여명이 모여살다가[* 당시 경산남도에만 한센병 환자 수를 6천으로 추산하니, 거의 경남 한센병 환자의 10%가 모여살은 셈], 1940년 12월부터 시작된 소록도로 한센병환자 390명의 강제이주로[* 나머지는 뿔뿔이 흩어진다.] 상애원은 사라졌다가, 해방 후에 1946년 3월부터 일본군 포진지를 중심으로 다시 상애원 사람들이 모여들면서 한센병 환자촌이 설립된다. 이후 1948년 경상남도 도립 나요양소가 되고, 1961년에는 국립용호병원으로, 1968년에는 국립 소록도 나병원 용호분원이 되었다. 그리고 지속적으로 외지의 한센인이 이주하면서 규모가 커지고, 생계를 위해 교회[* 상애원이 기원이다보니 상애교회로 이름이 지어졌다가, 이후 창대교회로 교회명을 변경 후에 용호농장이 사라지면서 지금은 정관신도시로 이전을 했다.]와 주택, 채소·양계·양돈을 위한 농장이 형성되었다. 이렇게 마을이 확대되자 1975년 용호 농장으로 명칭이 변경한다. 최고로 번성했을 때에는 7,000여명의 주민이 돼지 20만~30만 마리, 닭 200만 마리 이상을 사육하면서 생계를 유지했다. 이후 점차 인구가 줄면서 재개발 직전에는 1,200명이 살았다. 한센인들은 용호농장이 해체되면서 흩어졌으며, 그 중에 100여명은 위에서 말한 교회를 정관으로 이전하면서, 교회를 중심으로 타운을 만들어 이전을 했다. 이 과정에서 한센인들이 들어온다는 거부감에서 오는 반대를 피하려, 노인시설로 실버타운을 건설했고, 여기에 들어온 노(老)한센인이 여기서 여생을 지냈다. 교회의 창립배경이 배경이다보니, 아직도 한센인 지원 사역에 집중하는 교회가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