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오비탈 (문단 편집) === 오비탈 개념의 등장 이전 === 1808년 [[돌턴]]은 "A New System of Chemical Philosophy"라는 책을 통해[* 책을 읽고 싶다면[[http://digbib.ubka.uni-karlsruhe.de/volltexte/digital/1/277.pdf|#]] 참조 ] 원자를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입자의 최소 단위로 하는 [[원자]]론을 발표한다. 하지만 1898~1903년에 영국의 물리학자 [[조지프 존 톰슨|톰슨]]이 음극선관 실험을 통해 [[전자]]의 존재를 알아냈다. 그는 원자가 양전하 구름에 음전하를 띤 전자들이 무질서하게 박혀있는 건포도 푸딩모형(또는 수박씨 모형)일 것이라 제안하였다. 1911년, 영국의 과학자 [[어니스트 러더퍼드|러더퍼드]]는 톰슨의 원자모형을 입증하기 위한 실험(알파입자산란실험)을 했으나 예상과 다른 결과를 얻게 된다. 매우 얇은 금박에 알파입자(헬륨 원자핵)을 쏘는 실험이었는데, 톰슨의 가설이 옳다면 모든 알파입자가 금박을 통과해야 했지만 원자핵과 전자의 전기적 반발력과 원자핵과 알파입자의 충돌 탓에 몇 개의 알파 입자의 진행방향이 뒤틀려 버린 것. 그는 이 실험을 통해 원자핵의 존재를 알아내게 된다.1903년에 나가오카 한타로도 비슷한 주장을 한다. 과학계는 톰슨과 러더퍼드 이후 본격적으로 전자와 원자핵에 대한 개념을 만든다. 1913년, 덴마크의 물리학자 [[닐스 보어]]는 수소의 선스펙트럼 실험을 통해 수소 원자 내의 전자는 특정한 파장의 에너지만을 방출, 흡수한다는 사실을 알아내었고 양자화한 모형을 주장하였다. 보어는 전자가 허용된 궤도만을 돈다고 가정하였고 전자를 고전적인 입자로 취급하여 전자의 궤도를 계산했다. 1910년대까지는 가장 타당한 원자모형이었던 보어의 원자모형은 수소의 방출 스펙트럼으로부터 얻은 에너지 수치들을 잘 설명해주었다. 그러나 보어의 모형은 '''전자가 왜 그러한 거동을 하는지'''를 전혀 설명하지 못했고, 수소꼴 이외의 원자들은 다른 전자의 [[가리움 효과]]로 인한 3체 이상의 문제가 되어 해결하기가 힘들어진다. 다만 '전자가 왜 그러한 거동을 하는지', 즉 전자가 왜 허용된 궤도로만 도는지에 대한 대답은 약 10년 후 드 브로이가 물질파 개념을 제시하면서 어느 정도 해결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