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오빠생각(영화) (문단 편집) == 고증오류 == * 작중 국군 전투복 명찰이 현재의 형태와 유사하다. * --전쟁터에서 1~2년이나 지낸 소위가 군대식 말투(~다/~까?)를 쓰는 일이 드물다. 또한 병영에서 상관을 대할 때 구령을 붙이지 않는다. -- * [[https://youtu.be/TxD8CEpNghw|마지막 장면]]에서 공연장의 관객들이 앉은 잔디밭에도 조명들이 설치되어 빛이 들어온다. 50년대 당시 전력 상황을 생각하면 가능성이 낮아보이지만 공원 같은 곳에서 공연한 것 일 수도 있으니 명확한 오류라고 하기는 애매하다. 이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작중 내용에 지역 재력가의 아들도 갈고리를 시켜 부대 내의 기름을 훔치려고 했던 에피소드가 있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합창단이 연료나 전력 공급에서 우선순위였던 군대에 소속되었으며 미 군사령관을 초청해 공연할 만큼 친분을 유지했으니, 더 큰 규모로 연 휴전 기념 음악회에서도 당연히 전력을 배당받을 가능성도 크다. * '도움이 되는 잡지' 조이래빗의 표지를 장식한 핀업 걸의 고화질 인쇄와 세련된 제본상태. 핀업 걸은 2차 세계대전 전후에 더 유행했다. 이후에는 핀업 걸을 닮은 실제 여배우, 모델들의 사진이 실린 잡지들이 유행했다. 1950년-1953년을 배경으로 한 영화이므로, 무명시절 사진모델이었던 마릴린 먼로st.의 미녀 사진이 실린 해상도 낮은 컬러, 혹은 흑백 사진이 대부분이었을 것이다. * 박주미가 늦은 밤 부모님께 편지를 쓰는 장면. 책상 위에 놓인 코티분 종이케이스와 화장품병들은 1980년대 이후의 디자인이다. 화장품이 발매된 시대적 고증은 정확하나, 아쉽게도 패키지의 고증이 다른 경우. 박주미는 유엔과의 연계, 미군부대와의 친분, 부모님을 향한 편지 내용, 평소 사용하는 물건 등으로 미루어 볼때 한국으로 돌아온 부유한 재미교포 2세 의학도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 한상렬 일가와 피난민들이 우물에 숨었다가 인민군들에게 발견되어 학살당하는 씬에서 사람들이 물 안에서 집중 사격을 당하고 숨졌음에도, 한상렬 한상미 남매의 흰 상의는 핏물의 흔적 하나 없이 깨끗하다. 단, 이들의 몸에 상처가 없는 것은 오류가 아니며, 0.5초 정도 짧게 지나가서 발견하기는 어렵지만, 남매의 아버지 한상식이 자식들을 등으로 가드하여 밀어붙인 뒤 총알들을 대신 맞고 숨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상미의 죽음은 심장마비 등 충격에 의한 것 혹은 인민군에게 발견당하기 직전에 자신을 달래며 안은 오빠, 그 오빠를 감싼 아버지 밑에 깔렸기에 벌어진 일이다. 국군이 발견해서 건져내기까지는 시간이 소요되었을 것이므로, 의식을 잃었거나 죽은 척하던 오빠의 품 안에서 도리어 익사할 것일수도 있어 더욱 안타까운 부분이다. * 첫 공연을 끝낸 후 초콜릿과 쿠키, 갓 익힌 옥수수와 쌀떡으로 파티하는 장면, 상에 차려진 코카콜라 병의 디자인이 그 당시의 것과 조금 다르다. 자세히 보면 로고, 손잡이 부분의 우묵한 부분 등등. 대신 음주씬에 나오는 깡통 맥주의 빈티지한 고증상태는 좋다. * 첫 장면에서 한국전쟁 이전 [[8.15 광복]]부터 미국과 소련의 38도선 분할 통치, 그리고 한국전쟁의 시작을 다루는데 [[미국]]과 [[소련]]이 아니라 미국과 '''[[러시아]]'''라고 나온다. [[1991년]] [[러시아|러시아 연방]] 수립 이전인 1945년에는 당연히 러시아가 아닌 소련이었다.[* 굳이 변호를 해주자면 서방에서는 소련을 러시아라고 부르기도 했고, 또 소련 자신도 '러시아'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기 때문에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라고도 볼 수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