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오상사 (문단 편집) == 작중 행적 == [[6.25 전쟁]]기에 주인없는 명동을 지킴으로서 [[이화룡(야인시대)|이화룡]]의 신임을 얻어 명동파에 들어왔다. 가죽장갑을 바탕으로 하는 그 강렬한 비주얼에다 이화룡으로부터 '천하의 독종' 이라는 평가를 듣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듯이 [[우미관]]패의 [[신영균(야인시대)|신영균]]과 비슷한 포지션이다. 이들은 제각기 그들 조직의 3인자 포지션이고, 상당히 입이 거칠다는 공통점이 있다. 서대문의 [[돼지(야인시대)|돼지]]와 싸우기 전 '''"[[들어올 때는 마음대로였겠지만 나갈 때는 아니란다|올 때는 마음대로 왔지만 갈 때는 마음대로 안 될 거다.]]"''' '''"네 머리는 오늘 [[박살]]이 날거야."'''라며 심리적으로 압박하는 모습이나 [[유지광(야인시대)|유지광]]과 싸우기 전 '''"유지광! 넌 오늘 [[븅신]]이 되기 전엔 절대로 돌아가지 못할 거야."'''라고 디스했다. 게다가 두 싸움 모두 이겨버렸기에 단순 [[허세]]가 아닌 [[간지]]가 되어버린다.[* 다만 유지광은 일부러 전력을 내지 않고 져준 것이다. 이유는 후술] [[맨발의 대장(야인시대)|맨발의 대장]]과 함께 행동대장으로 활동했으며 말보다는 주먹이 앞서는 혈기왕성한 젊은 주먹이다. 신사적인 파이터가 많은 명동파 소속이라 이런 특징이 더욱 두드러져 보인다.[* 물론 이는 어디까지나 다른 명동파들과 비교해서 젊다 보니 그런 것이고 실제로는 오상사의 모티브인 신상사 역시도 주먹계에는 신사로 통했으며 그 모티브 캐릭터인 오상사도 작 중에서 동대문과의 전쟁을 제외하면 주먹계의 인물이 맞는가? 할 정도로 신사적인 인물로 나온다.] 또한 자신이 속한 명동패에 대한 자부심이 상당히 강한데,[* 그도 그럴게 야인시대 2부 당시 명동파는 동대문파보다 세력은 좀작을지라도 유일하게 남은 의리집단이었다. 동대문파가 세력은 커도 결국 각자에 목적때문에 모인 이익집단이라는 것과 작 중에 이화룡이 언급한 "김두한의 우미관패를 제외하면 조선 팔도 최강의 조직"이라고 한 것처럼 동대문과 그 산하에 있는 서울 전체가 소속되어 있는 화랑동지회까지도 명동을 평생 힘으로 평정하기는 커녕 우위에 있지도 못했다는 걸 고려하면 오상사가 자부심을 보이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그 정도가 [[김동진(야인시대)|김동진]]과 [[이영숙(야인시대)|이영숙]]이 동대문패에서 반란을 일으킨 후 [[이영숙(야인시대)|이영숙]]이 부하들과 함께 명동에 찾아와 동대문을 멸망시킬 기회라며 동맹을 제안하러 왔을 당시 이화룡은 배신자와 손을 잡을 순 없다고 한게 전부였던 반면 오상사는 [[이영숙(야인시대)|이영숙]]한테 '우리 명동은 이사장님이 생각하는것만큼 만만한 조직이 아니에요' 라고 말했을 정도다. 명동파 영입 이후 [[황금마차 습격사건]]에서 [[돼지(야인시대)|돼지]]와 [[김삼수|삼수]]를 관광 태우는 등 큰 활약을 보였다. 삼우회가 [[황금마차 습격사건#s-2.2|황금마차로 쳐들어오자]] 수비측의 선봉에 서서 '[[들어올 때는 마음대로였겠지만 나갈 때는 아니란다|들어올 때는 마음대로지만 나갈 때는 아니다]]' 라는 대사를 치며 돼지를 관광보낼 때의 활약은 말그대로 [[간지폭풍]]. 야인시대 인물 중 유일하게 고유 음악이 있다. [[https://youtu.be/yqwnwIPMMbA?t=120|돼지를 상대할 때 재생된다]].[* 이 테마곡은 대거 소각 되어버린 OST중 하나로 추측이 된다. 야인시대 OST 앨범 모음집에도 수록 되어있지 않았다.][* 다른 전투 테마곡들인 [[야인(노래)|야인]], [[영웅주의(야인시대)|영웅주의]], [[나 사나이다]] 가 위압감이 넘치는 것에 비해, 이 테마곡은 여러모로 [[테크노]]틱한 느낌이여서 이 테마곡이 앨범에 수록되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 하는 팬들이 상당히 많다. 이 테마곡은 소실된 시라소니의 전용 브금을 하이브리드 테크노로 개조한 버전이라고 한다.] 승승장구하며 [[유지광(야인시대)|유지광]] 정도만 상대할 수 있을 정도로 좋은 전적을 보이지만[* 사실 그 당시에 남아있던 중간보스급 주먹들 중에서는 오상사가 이길 수 없는 인물은 [[신영균(야인시대)|신영균]], [[김영태(야인시대)|김영태]], [[이석재(야인시대)|이석재]] 정도가 끝이지만 이마저도 신영균과 김영태는 은퇴를 했기 때문에 의미가 없다. 따라서 이석재만이 오상사를 확실히 이길 수 있다.] [[충정로 도끼 사건]][* 이때 야인시대에서는 오상사가 유지광을 쓰러뜨린다. 하지만 유지광이 100% 전력을 다 하지 않은 모습으로 나왔고, 유지광과 오상사도 서로의 실력을 인정했으며 둘보다 월등한 고수인 이화룡이 둘 다 막상막하라고 평했기에 둘의 실력은 사실상 백중지세라 보는 게 옳다.]에 얽혀 명동파의 다른 식구들과 줄줄이 감옥으로 들어가게 된다. 감옥에서 동대문의 계략에 치를 떨면서 감옥을 나가는 즉시 복수를 하겠다며 젊은 혈기를 불태우지만, 이화룡의 예언대로 세상이 뒤집힘에 따라 동대문이 알아서 [[자폭]]했다. 드라마 상에서 직접적으로 언급은 되지 않지만, 실제로 [[신상사]]는 [[1965년]]에 출소한 이후 [[무주공산]]이 된 서울을 점령하며 새로운 암흑가의 황제로 군림하게 된다.[* 이후 조창조-오종철-[[조양은]]의 사보이 호텔 습격이 일어나지만 후에 조양은이 신상사에게 항복을 했다는 것으로 밝혀진 것을 보면 신상사는 그 이후에도 여전히 건재했다. 사보이 때 신상사는 [[김태촌]]을 시켜 오종철과 조양은을 치게했다. 당시에는 유신 시절이어서 아무리 신상사라고는 해도 자유당때처럼 직접 움직여 유신정권의 눈밖에 나면 곤란한 점이 많았다. 또 조양은은 사보이 사건 당시에는 그저 서울에 있던 선배들의 비호를 받던 젊은 행동대장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뿐만아니라 신상사의 자서전을 보면 명동파 간부들이 직접 호남건달들과 사투를 벌였다는 내용도 있다. 따라서 아무리 사보이 사건이 터졌다고는 해도 전국의 건달 및 주먹들의 최고 두목이던 신상사가 직접 조양은을 처벌하기에는 본인과 조직의 위치 및 체면 등 때문에 직접 안한 것 뿐이지 조양은에게 밀려서 그런 것은 아니다. 실제로 신상사파와 연계된 권력층이 공권력을 동원해 조양은 세력을 대거 검거했다. 배후였던 조창조는 버티다 못해 신상사에게 사과하러 갔으며, 나중에 조양은도 데리고 가서 사과시켰다고 증언했다. 이를 보면 신상사의 위치 및 위상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려준다. 알기 쉽게 설명하면 '''남한의 김두한!'''이라고 보시면 돌 것으로 보인다.][* 물론 김두한의 경우 남한을 넘어서 한반도를 비로힌 당시의 동아시아 전체의 암흑가의 황제였던 만큼 제아무리 신상사라고 해도 비교 대상이 아닐 수도 있지만 해방 이후 한 나라의 암흑가를 통일햐고 최소 십 년 이상을 지배한 인물이 신상사를 제외하면 아직 단 한 명도 없기에 신상사를 김두한과 비교를 해도 딱히 이상할 것도없고 오히려 정상인 상황이다. 물론 해방 이후에 대한민국의 암흑가를 지배한 인물들로는 명동의 이화룡과 동대문의 이정재가 있지만 이 둘은 사로가 대등하게 대립을 했지 누가 우위에 있던 것이 아니기에 김두한과 비교를 하기가 좀 그런면도 있어서 잘 비교를 한지는 않는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