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오세트인 (문단 편집) === 현대 === 2차대전 당시 [[독일 국방군]]이 캅카스 지역에 쳐들어오자 캅카스 제민족은 소련의 영도 하에 독일군에 맞섰고 그 중에서도 오세트인은 특히 격렬하게 저항했다. 실제로 독일군과 루마니아군이 주요 도시였던 블라디캅카스를 포위했으나 결국 철수했을 정도였다. 오세트인의 결사항전을 높이 평가한 소련 당국에서는 독일군의 간첩이라는 혐의로 체첸인·인구시인을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시키고 [[체첸-인구시 자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체첸인구시 ASSR]]의 영토를 떼어서 북오세티야 ASSR에 편입시켰다. 인구시인은 이를 억울해하며 소련 해체 이후에는 오세트인에게 소련이 떼어준 영토를 돌려달라고 요구했다. 그 결과 1992–1994년까지 오세트계 북오세티야와 인구시계 인구셰티야 사이에 무력 사태가 발생해 수백여명이 목숨을 잃었다. 인구시인의 근연민족인 체첸인 가운데 반러 극단주의자들은 영토를 잃어버린 동족의 복수를 하겠다며, 북오세티야에서 [[베슬란 학교 인질사건]]을 벌여 어린 학생들을 상대로 테러와 인질극을 벌였다. 그 결과 무려 341명이 사망하고 700여명이 부상당하는 초유의 대사건이 터지기도 했다. 이 사건 이후 [[이치케리야 체첸]]에 대한 인식은 크게 악화되었다. 오세트인이 주 민족인 정치체 중 북오세티야는 러시아 중앙정부과 사이가 괜찮지만, 남오세티야는 조지아 중앙정부와 사이가 좋지 않다. [[러시아 내전]] 당시부터 오세트인과 조지아인은 서로 전쟁을 벌였고, 소련 붕괴 직후인 1991년에도 독립국가를 수립하려는 오세트인과 조지아 중앙정부 사이의 전쟁이 재발했다. 이후 러시아가 평화유지군을 파견하여 한동안 갈등이 멎었지만 2008년 조지아의 선제공격으로 [[남오세티야 전쟁]]이 발발했다. 이 전쟁으로 러시아는 그동안 명목으로나마 인정하던 조지아의 남오세티야 영유권마저 부정하고 남오세티야의 독립을 인정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