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오스트리아 (문단 편집) == 개요 == || {{{#fff '''오스트리아의 풍경'''}}}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5px -13px" ||{{{#!wiki style="margin: -6px -11px" [[파일:austria1.jpg|width=100%]]}}}|| ||{{{#!wiki style="margin: -6px -11px" [[파일:austria2.jpg|width=100%]]}}}|| ||{{{#!wiki style="margin: -6px -11px" [[파일:austria3.jpg|width=100%]]}}}|| }}}}}}}}} || '''오스트리아'''는 [[독일]]의 동남쪽에 위치한 나라다.[* 서유럽이나 중부유럽에 속해 있지만,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시절까지는 동유럽의 영향도 많이 받았다.] 8개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으며 서북쪽에서부터 시계방향으로 [[독일]], [[체코]], [[슬로바키아]], [[헝가리]], [[슬로베니아]], [[이탈리아]], [[스위스]], [[리히텐슈타인]]과 이웃하고 있다. 국토면적은 83,879㎢로, 국토가 [[알프스 산맥]]의 6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숲의 국가이며[* [[사운드 오브 뮤직(영화)|사운드 오브 뮤직]]이 오스트리아의 [[잘츠부르크]]를 배경으로 한 영화다.] 덕분에 낙농업과 겨울스포츠[* [[https://www.austria.info/kr/things-to-do/winter/10-reasons-to-ski-in-austria| 오스트리아에서 스키를 타야 하는 10가지 이유 (오스트리아 관광청)]]]가 성하고 있다. 수도는 [[빈(오스트리아)|빈]]이다. 인구는 2023년 기준 약 9,104,772명이다.[* [[/인구#s-2| 오스트리아/인구 (나무위키 문서)]]] [[요제프 하이든]],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루트비히 판 베토벤]], [[프란츠 슈베르트]]를 비롯한 우리가 아는 대부분의 고전음악가들의 주 활동 무대였던 음악의 나라이자, 현대 언어철학의 이정표를 세운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현대물리학의 격전장이었던 비엔나 써클과 논술에도 출제되는 [[슈뢰딩거의 고양이]]로 유명한 물리학자 [[에르빈 슈뢰딩거]], [[아르누보]]의 주요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 근대건축의 선구자 오토 바그너, 미술사에 관심이 있다면 반드시 만나게 되는 [[에른스트 곰브리치]], 정신의학과 심리학의 한 갈래인 [[정신분석학]]의 거장 [[지그문트 프로이트]]와 [[알프레드 아들러]], 20세기 최고의 지휘자 가운데 한 명인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경제학의 [[프리드리히 하이에크]], [[보디빌딩]]계 전설이라고 불리는 [[아놀드 슈워제네거]]의 고향이다. 또, 흔히 [[독일인]]으로 생각하는 [[국가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나치]]의 [[퓌러]]였던 [[아돌프 히틀러]]의 고국이다.[* [[독일]] [[바이에른]]과의 국경지대에 있는 오스트리아의 작은마을 [[브라우나우암인]]에서 태어나, [[린츠]]에서 청소년기를 보내다가 나중에는 빈에서 살았고, 이후 외국으로 이주(프랑스-독일)를 했다. 단, 독일과의 국경도시(남북한으로 치면 경기도 연천군급 위치)에서 살았기에 어릴때 바이에른을 방문한 것으로 추정되는 정황이 있으며, 제1차 세계 대전 직전부터는 독일에서 살았다. [[독일인]], 특히 순수 바이에른인과 순수 [[오스트리아인]]은 실질적으로 같은 민족에 가까워 생물학적으로 뚜렷하게 구별되지 않으며 문화유사성도 높다. 오스트리아 독일어와 바이에른 독일어는 한국의 경남사투리와 경북사투리 같은 관계라서 대화가 쉽게 통한다.][* 독일 민족의 순수성 운운했던 [[나치 독일]] 시절에도 [[오스트리아인]]은 동등한 [[독일인]]으로 대우받았다. 생물학적으로도 남북한처럼 구별이 안 되는 같은 종족이기 때문.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역사는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 이후에야 갈라졌다.] [[대한민국]]의 초대 [[대한민국 대통령 배우자|대통령 배우자]] [[프란체스카 도너|프란치스카 도너 리]]도 오스트리아인이다.[* 정작 당사자는 ‘[[오스트레일리아|호주]]댁’이라 불리고, 호주 공군기가 뜨면 ‘사위 나라 구해주러 왔나보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당시 오스트리아는 패전국의 수모를 겪고 미영프소 4개국의 분할통치를 받고 있어서 군인을 보낼 여건이 아니었다.] 2019년 기준 노벨상 수상자는 22명으로 세계 10위를 기록했으며[* [[http://www.nobelscience.net/news/articleView.html?idxno=1578| 노벨사이언스 (2020.10.05) : 노벨상 특집 / 노벨상 수상자 국가별 교육통계와 여건]]] [[독일어권]]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인 [[빈 대학교]][* [[https://youtu.be/-gPhI5nejGE| ([[파일:유튜브 아이콘.svg|width=20]] University Of Vienna - Image Video 2014 (Corporate Video, English)) ]]]는 20여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871303&cid=43142&categoryId=43142| 빈 대학교 (네이버 지식백과)]]] 민족과 언어에서 독일과 동질적이었고, 중세와 근세때는 명목상으로는 [[신성 로마 제국]]이라는 하나의 대제국으로 묶여있었다.[* 물론 중앙집권화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직할령을 제외한 나머지 영토에서는 제후들이 자치권을 가지는 형태였고, 그나마 최소한 가지고 잇던 통제권도 30년 전쟁 이후로 상실해서 명목상으로만 한 나라였고, 실질적으로 다른 나라로 살았다. ] 실제로 19세기 초중반에 [[대독일주의|통일이 담론으로 떠오르면서 프로이센과 경쟁하기도 했고]], 프로이센에게 패배하면서 독일과 갈라지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완전한 통일은 아니라는 인식이 있어서 나치독일 치하에서 [[안슐루스|실제로 합치기도 했는데]], [[제2차 세계 대전]]의 패전으로 다시 갈라졌고, 분리된 상태로 오늘에 이르고 있다. 1866년 이전까지는 독일과 역사를 공유하며 [[슬로베니아]], [[체코]], [[슬로바키아]], [[헝가리]], [[크로아티아]], [[세르비아]], [[루마니아]], [[우크라이나]], [[폴란드]], [[이탈리아]], 등 웬만한 유럽국가들의 역사에도 걸치고 있어 매우 복잡한 역사를 가지고 있는 국가이다.[* 이를테면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참전포스터가 자그마치 15개의 언어로 만들어졌다고 하니 말 다했다.] [[서양사]]에서 근대에서 현대로 넘어가던 19세기말 ~ 20세기 시작기에는 문명사적으로 가장 활기찬 곳이었다.[* 빈 모더니즘 (Wiener Moderne)이 꽃을 피워 수많은 천재가 등장하던 시기이다.] 하지만 [[제1차 세계 대전]] 패배로 인해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제국]]에서 [[오스트리아 제1공화국|소국]]으로 몰락하면서부터[* 제1차 세계 대전 직전인 1914년에는 면적 681,727㎢로 유럽에서 [[러시아 제국|러시아]]에 이어 두 번째로 영토가 크고, 인구 52,800,000명으로 유럽에서 [[러시아 제국|러시아]], [[독일 제국|독일]]에 이어 세 번째로 인구가 많았지만 전쟁에서 패배한 후인 1919년에는 현재와 같은 면적 83,879㎢에 인구 6,800,000명이 되어 거의 1/8 수준으로 축소되었다.] 점차 암울해지기 시작하고,[* 제국 해체 당시 축소된 인구의 자그마치 1/3인 200만명 가량이 수도 빈에 거주하고 있었으며, 위에서 언급한 문명사적 활기로 인해 다수의 시민이 비생산인구였다. 제국 시절에는 넓은 국토에서 생산되는 식량으로 별 문제가 없었으나, 제국이 해체되면서 생겨난 오스트리아 공화국은 산지가 많은데다 주변국들이 자국 내의 혼란이나 반 오스트리아 감정 등을 이유로 식량 수출을 거부하면서 한 때 대제국의 수도였던 곳에서 식량난이 발생, 많은 시민들이 굶어죽었다고 한다. 또한 산업화가 잘 되어있고, 중세 이래 상공업이 발달해 있던 [[보헤미아 왕국]](현 [[체코]])의 상실 역시 오스트리아 경제에 큰 타격을 주었다.] 1934년부터는 히틀러 동조 세력에 휘둘리다가 1938년 병합되어 [[나치 독일]]의 일원이 되기에 이른다. 결국 제2차 세계 대전에서도 패배하여 4개 승전국에 의해 분할점령되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 이후 해방되어 [[베를린]]과 함께 [[냉전]]의 최전방이었다가, [[유럽연합]]이 동구권으로 확대되면서 [[동유럽]]과 만나는 중유럽의 관문으로 경제특수를 누리게 되었다. 타 유럽 국가들을 떨게 만들고 그들의 선망의 대상이었던 제국으로서의 옛 영광을 생각한다면 현대의 오스트리아는 상대적으로 세계의 중심권에서 벗어나 있기에 다소 초라해 보일 수 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에도 철강과 기계공업 위주의 탄탄한 산업기반[* [[https://news.kotra.or.kr/user/globalBbs/kotranews/784/globalBbsDataView.do?setIdx=403&dataIdx=190348| 2021년 오스트리아 산업 개관 (빈 무역관, 2021-09-01)]]]을 바탕으로 한 높은 국민소득과 충분한 복지예산을 갖춘 살기 좋은 최상위 선진국임에는 틀림없다. 현재 EU에 가입한 것 외에는 영세 중립국을 표방하고 있으며[* 1955년 4월 15일 [[모스크바]]에서 오스트리아는 향후 영세 중립 정책을 지향한다는 전제를 포함한 '모스크바 각서'를 발표하였고, 이후 미국, 영국, 프랑스는 오스트리아의 영세 중립 정책을 소련과 합의하였다. 이에 따라 2022년 초 현재 유럽연합 회원국임에도 불구하고 [[북대서양 조약 기구]] (NATO)에 가입하지 않은 상태이다.[[https://n.news.naver.com/article/052/0001740621?sid=104| '영세 중립국' 오스트리아 "나토 가입 계획 없다"]]] 수도 [[빈(오스트리아)|빈]]의 유엔기구 도시(UNO City)[* [[https://en.wikipedia.org/wiki/Vienna_International_Centre| Vienna International Centre (위키백과 영어문서)]]]에 국제 원자력 기구 ([[IAEA]]), 유엔 마약 범죄 사무소 (UNODC) 등이 본부를 두고 있어 국제회의와 분쟁조정의 무대로서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덕분에 주 오스트리아 대사는 요직으로 꼽힌다고 알려져 있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 총장도 오스트리아 대사로 근무했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