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오스트리아/외교 (문단 편집) === [include(틀:국기, 국명=프랑스, 출력=, 크기=40)] [[프랑스]]와의 관계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프랑스-오스트리아 관계)] [[프랑스]]와는 이전부터 숙적이었다. 이 라이벌 관계는 중세 후반부터 오스트리아를 거점으로 삼으며 유럽의 패권을 장악한 [[합스부르크]] 가문과 이에 도전하던 전통적인 유럽의 강자인 프랑스 [[발루아 왕조]]의 대립에서 시작됐는데 [[이탈리아 전쟁|이탈리아의 패권을 놓고 벌어진]] [[파비아 전투]]에서 대패해 프랑스가 대패해 국왕 [[프랑수아 1세]]가 [[카를 5세]]에게 포로로 잡히는 굴욕을 당하기도 했다. 이 둘의 사이가 얼마나 안좋았으면 [[30년 전쟁]] 당시 골수 [[가톨릭]] 국가였던 프랑스가 [[합스부르크]] 가문을 --엿먹이려고-- 약화시키려고 [[개신교]] 진영에 서서 참전하기도 했다. 이후 18세기 후반에 신흥 강국인 [[프로이센]]이 [[영국]]과 손잡자 영국의 동맹이었던 [[오스트리아]]는 반강제적으로 프랑스와 동맹을 맞게되며[* 이를 [[동맹의 역전]]이라 부른다.] 양국간의 대립 관계가 잠시나마 해소되기도 했다.[* 이때 양국의 동맹을 강화하기 위한 정략결혼 차원으로 오스트리아의 여군주였던 [[마리아 테레지아]]가 자신의 막내 딸 '''[[마리 앙투아네트|마리아 안토니아]]'''를 [[루이 16세]]에게 시집을 보냈다. 그리고 양국에 이런 역사깊은 악연은 프랑스인들이 그녀를 오스트리아의 개라고 인식하게 만들어 [[프랑스 혁명]] 당시 그녀의 목이 단두대에서 잘리는 원인 중 하나였다.] 그후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자 이에 위협을 느낀 [[오스트리아]]는 다른 유럽 국가들과 함께 [[프랑스 혁명 전쟁|대프랑스 동맹을 결성해 싸우다가]]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나폴레옹]]에게 된통 (...) 당하기도 했다.[* 이 시기에 나온 프랑스의 군가 중 하나인 [[양파의 노래]]가 오스트리아인들을 까대는 내용이다.] 나폴레옹이 실각하자 오스트리아는 프랑스 혁명으로 무너진 구 질서를 복고시키기 위해 [[빈 체제]]를 결성하기도 했다. 그후 프랑스는 [[이탈리아 통일]] 전쟁이 벌어지자 북이탈리아를 지배하던 오스트리아에 맞서던 [[사르데냐 왕국]]를 지원하기 위해 [[이탈리아 통일#s-4.2|참전하며]] 또 다시 오스트리아를 물먹였다 (...) 결국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가입한 [[동맹국]]과 [[프랑스 제3공화국|프랑스]]가 가입한 [[협상국]] 사이에서 [[제1차 세계 대전]]이 터지며 양국이 실질적으로 대립한 최후의 전장이 되었다. --그리고 [[아돌프 히틀러|오스트리아인]]이 [[프랑스 침공|6주만에 프랑스를 점령했다]]-- 하지만 지금은 어느 정도 떨어져 있기도 하고 서로 별다른 갈등이 없어서 교류가 활발한 편이다. 그리고 프랑스와 오스트리아는 [[유럽 연합]]에 가입되어 있다. 그리고 오스트리아는 [[프랑코포니]]의 참관국에 가입되어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