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오스트리아/인구 (문단 편집) === [[오스트리아 대공국]]의 성립과 [[합스부르크 제국]]의 출범 === 1450년을 전후해서 합스부르크 가문이 신성 로마 제국의 제위를 다시 차지하였고, [[프리드리히 3세(신성 로마 제국)|프리드리히 3세]]가 오스트리아 공국, [[슈타이어마르크 공국]], [[케른텐 공국]], [[카르니올라 공국|크라인 공국]], [[티롤 후백국]], [[트리에스테 제국직할 도시|트리에스트]] 등으로 갈라져있던 합스부르크 가문의 세습 영토를 [[오스트리아 대공국]]으로 선포하면서 오스트리아는 독보적인 지위를 얻었다. 이 시기부터 합스부르크 가문은 신성 로마 제국의 맹주로 군림하였고 오스트리아의 위상은 신성 로마 제국을 대표하는 수준까지 올라섰다. 이 시기에 오스트리아의 인구는 2,000,000명 정도였는데 이 정도의 인구는 당시 유럽에서 적지 않은 기반이었고 [[신성 로마 제국]]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기에도 충분한 인구였다. 실제로 오스트리아는 유럽에서도 인구가 많은 편인 지역이었다. 그렇지만 이 정도로 만족하지 못한 합스부르크 가문의 결혼동맹을 통한 확장으로 동유럽에 [[합스부르크 제국]]이 설립된 이후 합스부르크 가문이 지배하는 영토의 인구는 훨씬 더 많아졌다. 다만 이 시기 합스부르크 제국과 오스트리아 대공국의 인구는 따로 분리해서 보아야하는데, 합스부르크 가문은 [[프랑스 왕국|프랑스]]처럼 단일한 중앙집권화를 이룩하지 못하고 느슨한 [[동군연합]] 체제에 기반해 문화와 주권을 최대한 존중하면서도 왕권을 강화하는 정책을 펼쳤다보니 [[보헤미아 왕국]]에서는 [[체코인]], [[헝가리 왕국]]에서는 [[헝가리인]][* 다만 당시 헝가리 왕국에는 [[슬로바키아인]], [[루마니아인]], [[우크라이나인]]([[루신인]]), [[세르비아인]], [[유대인]], [[독일인]] 등 다양한 인종이 있었다. 대부분 [[농노]] 신세에 불과했고 지배층 귀족이 헝가리인이었을 뿐.], 헝가리 왕국과 동군연합이었던 [[크로아티아 왕국]]에서는 [[크로아티아인]]이 주류를 이루었다. 안정적인 인구 변동을 겪던 오스트리아는 1750년을 넘어서면서 다른 유럽 지역과 마찬가지로 인구가 이전보다 빠르게 증가하기 시작했다. 합스부르크 제국의 인구는 합스부르크 가문이 [[폴란드 분할]]로 [[갈리치아-로도메리아 왕국]]을 병합하고, [[오스만 제국]]을 협박하여 [[몰다비아 공국]]의 [[부코비나 공국|부코비나]]를 병합하는 등 확장한 영토에 따라 수천만 명에 달했다. 한편 이 시기에 차지하고 있던 동유럽 지역의 인구 성장이 오스트리아의 인구 성장보다 빨라지면서 인구 구성에 상당한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