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오스트리아인 (문단 편집) == 역사 == 본래 독일이란 별개의 국가가 아니라 지금의 [[아랍]]처럼 독일어를 사용하는 문화권을 뭉뚱그려 부르는 말이었다. 오스트리아 역시 이 문화권의 일부였고, 오스트리아인이란 그저 오스트리아 지역([[오스트리아 변경백국]], [[오스트리아 공국]], [[오스트리아 대공국]], [[오스트리아 제국]])에 거주하는 독일인이었다. 중세시대에는 이 문화권이 [[신성 로마 제국]]이라는 하나의 국가로 묶여 있었는데, 중세가 끝나고 근세가 도래하자 30년 전쟁의 여파로 이 독일 지역이 초토화되었다. 이후 [[베스트팔렌 조약]]으로 신성 로마 제국이 껍데기만 남아버리고, 제국을 구성하던 수많은 소국들은 각자 사실상의 독립국이 되어 할거했는데, 이때 [[합스부르크]] 가문이 통치하던 땅 중 보헤미아를 제외한 신성 로마 제국의 구성국들을 합친 것이 지금의 오스트리아 영토와 비슷하다. 독일은 수많은 나라로 쪼개졌고, 오스트리아 역시 이 많은 나라 중 하나였으나 '오스트리아인'이라는 정체성은 없었고 자신들 역시 독일인이라고 여겼다. 그래서 이 시기의 오스트리아를 설명할 때는 합스부르크 제국에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까지 '''소수의 독일인'''이 다수의 타민족을 지배하는 구조였다고 설명한다. 이후 독일 통일의 필요성이 대두되자, 오스트리아는 [[대독일주의]]를 주장했고, 북독일의 또 다른 독일 국가인 [[프로이센 왕국]]은 [[소독일주의]]를 주장했다. 간단하게 설명해서 대독일주의는 현재 독일인(오스트리아인)이 체코인, 헝가리인 등의 타민족을 지배하고 있는데, 이들까지 모두 통일 독일로 흡수하자는 것이고, 소독일주의는 그러면 통일 독일의 순수성이 저해되니[* 당시는 민족주의의 광풍이 불던 시기였고, 오스트리아가 지배하던 피지배 민족은 오스트리아 인구의 약 '''70%'''를 차지하고 있었다.] 오스트리아가 통일 독일에 합류하고자 한다면 독일인 거주 구성국만을, 그러니까 오스트리아 본토만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사상이었다. 방향은 달랐지만 이때만 해도 서로 통일 독일을 이루어야 한다고 같이 주장했던 것을 보면 여전히 오스트리아인은 곧 독일인이라고 인식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통일 문제에서 서로 의견을 좁히지 못한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는 결국 [[보오전쟁]]을 벌였고, 여기서 승리한 프로이센은 이어서 [[보불전쟁]]에서도 승리하며 마침내 아직 독립국이던 다른 독일 소국들을 오스트리아와 리히텐슈타인, 룩셈부르크를 제외하고 모두 합병해 [[독일 제국]]을 건국했다. 이는 오스트리아와 독일이 영구히 분리되는 계기를 제공한 것이었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그래도 오스트리아인은 여전히 독일인이라고 여겼다. 예컨데, 그저 같은 민족이 나라를 두 개 갖고 있는 것쯤이라고 생각한 것이었다. 오스트리아 출신으로 바이에른 왕국군에서 복무했다가 독일의 정치인이 된 [[아돌프 히틀러]]가 좋은 예시이다. 그러한 의식이 없었더라면 히틀러 같은 행보를 보일 수는 없으니. 그래서 1차 대전이 끝나자 패전한 오스트리아는 피지배 민족을 모두 독립시켜야 했고, 이제는 진짜로 독일인만의 국가가 되었다. 한때 유럽을 호령하던 제국이었던 조국이 한순간에 몰락해 콩알만한 내륙국이 됐다는 사실은 오스트리아인들에게 큰 상처가 되었고, 이는 독일과의 합병론을 대두시키는 계기가 됐다. 독일로 건너가 거물 정치인이 된 히틀러가 오스트리아 합병을 타진하자, 오스트리아의 의지와는 관계 없이 둘은 합병되었다. 그러나 오스트리아 합병 그 자체는 이제 오스트리아가 순수한 독일인의 나라가 되었으니 진정한 의미의 통일(=대독일주의)을 이룬다는 점에서 이를 긍정적으로 바라본 국민들도 많았고, 이 탓에 개요에서 설명했듯 2차 대전 시기 오스트리아는 나치에게 적극적으로 협력했다. 하지만 2차대전에서 나치가 패전하자 연합국은 오스트리아가 강제로 독일에 합병되었다는 점을 근거로[* 물론 이는 표면상의 이유고, 독일을 약화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북독일 연방이나 독일 제국 시절에 이미 합병된 다른 지역들과는 달리 오스트리아는 겨우 몇 년 전에, 그것도 강제로 합병된 곳이니 이런 명분을 대기 좋았다.] 다시 분리독립시켰고, 이후 다시는 독일과는 합병할 수 없는 조약을 체결했다. '독일인과는 다른' 오스트리아인이란 정체성이 생긴 건 바로 이 시기로, 과거사 청산을 위해 범게르만주의나 대독일주의 따위의 사상을 견제하면서, 독일과는 다르다는 정체성을 가져야 했기 때문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