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오와라이 (문단 편집) == 오와라이 BIG 3 == [include(틀:게닌 BIG 3)] 오와라이 빅3라고 하면 수 십년째 일본 오와라이계와 방송계에서 톱 위치에 있는 세 명의 오와라이 게닌을 칭하는 말이다. 세 명 모두 데뷔 시기는 1970년대이나 이들의 최전성기는 1980~1990년대였으며, 이름의 유래는 1980년대에 [[후지테레비]]가 자국의 높은 시청률 획득에 가장 기여한 당대 최고의 게닌 셋을 묶어서 "빅3"라고 칭했던 것이 일본 전역으로 퍼진 것이다. 한국의 방송계로 이해하기 쉽게 비유하자면 1990년대에 데뷔하여 2000~2010년대에 최전성기를 보내고 지금도 최정상에서 현역으로 왕성하게 활동하는 국민MC 3명인 [[유재석]], [[강호동]], [[신동엽]]을 묶은 "유강신"과 비슷한 칭호라고도 볼 수 있다. 또는 악극단 시절과 1960~70년대 한국 코미디계를 삼분지계했던 [[구봉서]], [[배삼룡]], [[서영춘]]의 한국 1세대 코미디 트로이카와도 비슷하다.[* 일본의 방송계가 2010년도 이전까지는 한국보다 10~15년 더 이른 패턴과 유행을 보였던 것으로 미루어보아 일본의 정통 코미디 시대와 버라이어티 예능 시대 사이의 과도기에서 데뷔하고 콩트에서도 활약했지만 오히려 예능 진행자로서 더 크게 족적을 남긴 이들 빅3는 유재석, 강호동, 신동엽의 행보와 더 흡사하다. 구봉서, 서영춘, 배삼룡으로 대표되는 한국 1세대 코미디언들은 코미디 스타일도 거의 일생 정통 코미디언이었고 심지어 연령대는 1920~30년대 초반생으로 게닌 빅3의 삼촌 내지는 아버지뻘 수준으로 연상이다. 한국 1세대 코미디언과 나이대가 비슷한 일본의 게닌은 1950~60년대를 대표하는 [[하나 하지메와 크레이지 캣츠]]이다.] 빅3와 비슷한 시기에 데뷔하여 [[후지테레비]]에서 전성기도 같이 보낸 [[쇼후쿠테 츠루베]], [[시마다 신스케]] 등도 상당히 높은 위상으로 여겨지나 여러모로 한 끗 못미친다는 것이 중론. 한국으로치면 유강신이 점령한 시대에 이들보다는 좀 못미치지만 역시나 비슷한 나이대의 거물급 MC로 활약한 [[김구라]]같은 대우라고 보면 편하다. 다만, 시마다 신스케는 활동 당시 빅3와 동급 수준으로 여겨졌으나 [[야쿠자]] 스캔들 이후 연예계에서 퇴출되어 그 위상이 다 깎여나갔다. [[코로나19]]로 사망한 일본 국민 코미디언인 [[시무라 켄]]은 연령대는 이들과 비슷하고 가지고 있던 위상도 빅3와 동급 수준이었지만 활약을 시작한 시기와 최전성기가 이들보다 확실히 더 이전인 1970년대([[더 드리프터즈]])여서 오히려 빅3보다 더 선배급 대우다.[* 비트 다케시는 빛을 본 시기가 늦을 뿐, 데뷔시기는 시무라 켄과 같고 나이는 더 많다. 그리고 시무라 켄 생전에 사적으로도 친하여 같이 방송을 한적이 꽤 있다. 타모리도 데뷔 시기는 비교적 늦었지만 나이가 시무라보다 더 많아서 나중에 가서는 편하게 토크를 주고 받는 모습이 보였다. 유독 아카시야 산마가 시무라 켄을 어려워했는데 그 어떤 게스트가 나와도 기가 안죽고 분위기를 주도하는 산마가 어려워하던 몇 안되는 선배가 시무라 켄이었다. 일단 개그 스타일과 고향(시무라는 칸토, 산마는 칸사이)이 다른 것도 이유 중 하나겠지만 데뷔 시기부터 전성기 기간, 심지어 나이까지 완전히 후배여서 그렇다. 딱히 시무라 켄이 군기를 잡거나 하지는 않았다.] 주요 개그 스타일도 정통 코미디와 콩트라서 버라이어티 예능, 만자이 위주로 대표되는 빅3와는 좀 이질적인 것과 서로 활약한 방송국이 다른 것(시무라 켄은 [[TBS 테레비]] 위주였다.)도 빅3가 아닌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톤네루즈]], [[다운타운]]도 방송계 위상이 이들보다 쳐지진 않지만 이미 빅3란 개념이 정립되고나서 그 후에 두각을 드러낸 한참 후배들이고 핀 게닌(솔로 코미디언)으로 전성기를 맞이한 빅3와는 다르게 커리어 내내 콤비였던지라 같이 묶이지는 않는 편.[* 그 대신 톤네루즈와 다운타운은 3세대 게닌의 아이콘이자 현재 일본 방송계에서 보편화되어있는 콤비 열풍의 대표주자로서 동 시대에 활약한 웃쨩난쨩과 더불어 '3대 오와라이 콤비'로 자주 묶이는 편이다. 특히 그 중에서도 톤네루즈와 다운타운의 인기가 유별났었고 각자 지역(톤네루즈는 칸토, 다운타운은 칸사이)을 대표하는 마스코트격 콤비인지라 이 두 그룹이 특히나 라이벌 구도로 잘 엮이는 편.][* 다운타운의 [[마츠모토 히토시]]는 젊은 시절에 자기 자신만의 개그 스타일과 아이디어에 상당한 자부심이 넘쳤었고 다소 다가가기 어려운 까칠한 성격으로 유명했는데 다운타운이 전성기를 맞이한 1990년대에 낸 자서전에서 "오와라이 빅3는 나와 같은 세대의 후배 게닌들이 출세하기 어렵게 만든 장애물이자 적폐"라는 식으로 디스하는 글을 썼다가 한번 소동이 난 적 있다. 지금은 이를 본인도 흑역사 취급하며 가끔 언급이 될때마다 당황하면서 어쩔 줄 몰라하거나 "고스트라이터가 멋대로 쓴거라니까!!"라고 얼버무리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 세 명의 예풍[* 한국말로 치환하면 개그 스타일]도 확실히 다른 편인데, 타모리는 신인 시절에는 4차원적인 기행과 웃긴 성대모사, 괴짜같은 코미디[* 실제로 1970년대의 타모리를 보면 시력을 잃은 한쪽 눈에만 안대를 끼고 해적 분장이나 반라 노출에 도마뱀 흉내까지 해가며 괴기스런 개그를 하던 모습을 볼 수 있다. 타모리가 다른 방송에 게스트로 출연해서 과거 신인시절의 기행 썰을 풀거나 자료화면이 나갈때마다 이를 잘 모르던 젊은 출연진들이 진심으로 놀라곤 한다.]를 주로 선보였다가 80년대에 완전히 탈바꿈하여 지금 대중들에게 익숙한 단정한 머리와 정장 차림에 선글라스를 끼고 예능 프로그램의 메인 MC로 활약하기 시작하면서 전반적으로 분위기를 편안하게 리드하는 뛰어난 진행력이 돋보이는 게닌으로 자리잡았고 아카시야 산마는 템포가 빠르고 다양한 애드립과 섹드립이 섞인 익살스러운 토크 실력으로 유명했으며 메인 MC격으로 올라선 후에도 이러한 스타일을 잘 유지하고 있는 인물이다. 비트 다케시는 촌철살인의 독설과 냉소섞인 풍자성 유머, 특유의 과격한 캐릭터로 유명해지게 되었다.[* 고령에 접어든 요즘에는 덜하지만 한창 때 비트 다케시가 [[다케시 군단]]을 이끌며 호통치는 개그를 하고 과격하게 행동할때는 이경규의 버럭은 상냥하게 보일 정도로 정말 과격했다.] 한국의 예능인과 비교해봤을때 [[아카시야 산마]]는 [[신동엽]][* 산마의 탁월한 토크실력과 천재적인 애드립, 짖궂으면서도 선을 아슬아슬하게 잘 지키는 진행 센스는 한국에서 딱 신동엽의 포지션과 유사하다.]과 [[서세원]][* 지금보면 의아하겠지만 전성기 시절 서세원은 산마를 적극적으로 벤치마킹한 것으로 유명하다. 특히 1990년대 들어서 [[서세원쇼]]를 비롯하여 서세원이 초창기 예능과 토크쇼 진행자로 거듭날 무렵, 산마가 보여준 개그 패턴(특유의 돌출된 앞니를 이용한 자학개그)과 상대방이 웃기거나 분량을 따내면 자지러지면서 왁자지껄하게 웃는 리액션을 대놓고 카피했다. 물론 당시 한국과 일본의 토크 및 개그 수위 차이가 엄청났었기에 서세원은 산마가 가진 수준의 입담이나 진행력, 애드립까진 선보이지 못했다.]을 반반 섞은 것과 비슷하고, [[타모리]]는 [[심현섭]]과 [[주병진]], [[비트 다케시]]는 [[이경규]]와 [[김형곤]]을 적절히 섞은 듯한 예능 스타일에 가깝다. 물론 방송에서 다루는 수위는 한국보다 이들이 더 높은 편이라서 완전히 똑같지는 않다. 노년기에 접어든 이제는 셋이 함께 한 화면에 잡히면 레전드라 불릴 정도고 이 중 게닌으로써 지금까지 제일 활발한 활동을 보이는 건 상대적으로 나이가 가장 어린 [[아카시야 산마]]다. 모이는 경우가 매우 드물지만 어쩌다가 한 자리에 자리할 경우, 아카시야 산마가 과거 에피소드나 추억거리를 비롯한 여러 토크 주제를 쏟아내면 비트 다케시가 그에 맞춰서 더 독하게 받아치고 타모리가 적절하게 리액션하고 중재하면서 진행하는 패턴이 주로 보여진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