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오이란 (문단 편집) == 여담 == * 오이란에 대해 잘못된 정보가 돌아다니기도 하는데, 대표적으로 '오이란은 상황에 따라 매춘을 안 했다', '오이란이 되면 매춘을 안 했다'는 주장들이다. 전자는 오이란에겐 손님을 선택할 권리가 있어서 마음에 안 드는 손님만 거절하거나, 다른 손님을 상대할 때 대기 손님들이 많았다면 하급 유녀인 휘하 신조를 대신 보내는 방식으로 신분이 낮은 귀족들을 상대로 매춘뿐만 아니라 접대 자체를 거절할 수 있었던 것은 사실이나 이 직업 자체가 매춘업인데 신분제 사회에서 권력자들을 상대로 절처한 매춘 금지는 관할 권력자의 인품이 따라주지 않는 한 사실상 불가능했다.[* 물론 오이란 정도 되면 매춘 없이도 큰 돈을 벌 수는 있었으므로 매춘 대상자를 한없이 좁힐 수는 있었다. 최고 권력자의 눈에 들었을 경우처럼.] 후자는 기생과 게이샤에 대한 정보가 혼란을 일으킨 것이다. 게이샤도 초창기 때 매춘을 했으나 막부에서 오이란과 구분하기 위해 금지했다. 하지만 오이란 문화가 쇠퇴하면서 오이란이나 유녀가 게이샤로 갈아타거나, 게이샤의 손님들이 후원을 핑계로 성 접대를 강요하거나, 요시와라마냥 가난하거나 빚이 많은 부모가 어린 딸을 업계(하나마치)로 팔아넘기는 문제 행위가 빈번히 발생하였다. 기생은 매춘 종사직이 아니지만 양반들이 몰래 성접대를 강요하거나, 매춘이 안 되면 첩으로 삼아 빼돌리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당대 여성 예능인들은 겉으로는 교양이니 풍류니 포장해도 결국 주 목적은 연회의 유흥과 상류층의 접대였기에 매춘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한 경우가 있었던 것이다. 즉 오이란은 상류층을 상대하기 위해 귀족 여성 못지 않게 교양과 가무를 빡세게 배웠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밀히 일본 막부가 공인한 '''고급 매춘부'''이다. 한국에서 이런 혼동이 생기는 이유는 [[조선]]시대 때부터 일찍이 공식적으로 기생들에게 매춘을 금지했기 때문에 '''고급 매춘부라는 개념이 따로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양민의 매춘도 조정은 금지하였기에 매춘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는데, 그렇다고 조선시대 때 매춘이 아예 없었냐 하면 그것 또한 아니므로 상류층을 위한 독점적 유흥으로서 양민이 매춘을 즐기지 못하게 했을 뿐이다. 그러므로 일패, 이패 기생만큼의 가무와 교양 실력을 갖추지 못한 삼패 기생이더라도 최소 중산층 이상의 재력이 있어야 만날 수 있었으며, [[영국]] [[빅토리아 시대]]의 거리 창부나 [[일본]]의 요타카 같은 양민을 상대로 하는 창녀가 조선엔 없었고 법으로도 금지되었다. 뿐만 아니라 조선은 양반들이 독점하던 매춘을, 더 나아가 성 자체를 철저하게 숨기는 사회였으므로 기생이 매춘을 한다는 것을 겉으론 숨기고 뒤로는 기생을 공공재로 등록해 필요하면 국가에서 동원하여 이용하는 상황이었다. 이런 복잡한 내용을 다시 기생과 오이란으로 단순 비교하니 오이란이 매춘을 하지 않았다는 오해가 생긴 것. 유녀업은 막부로부터 매춘을 공식으로 허락 받은 공인된 직업이었으며, 기록으로도 이들의 권리와 제한 문서가 남아 있다. * 미디어에서는 오이란의 인기 때문에 오이란 타이틀이 붙는 식으로 흔하게 묘사되었고, 요시와라가 한물 간 [[메이지 시대|메이지]]와 [[다이쇼 시대|다이쇼]] 시기부터는 아예 유녀 전체를 오이란이라고 부르게 되어서 오이란이 흔한 것으로 오해를 받기도 하는데, 실제 오이란은 양성하려면 비용이 많이 들었기에 오이란을 보유한 유곽은 소수의 고급 유곽밖에 없었다. 요시와라 중기 때도 유곽을 조사해 보니 고급 유녀를 보유한 가게 수는 한 자리 남짓했다. * 오이란 관련 매체에서는 타카오라는 이름이 많이 나오는데, 타카오는 실제 존재했던 오이란의 예명으로 세습명이었다고 한다. 이 중에서 2대째 타카오 타유는 또 다른 유녀의 나게코미데라인 사이호지(西方寺)에 유골함이 묻혀있다. * 미디어 매체에서는 미적인 문제 때문에 일부러 고증을 어기는 편이지만 에도 시대부터 메이지 시대 초기 오이란들은 전부 이를 검게 칠하는 [[오하구로]]를 했다. 오하구로 유행을 끝낸 것은 [[쇼켄 황후]]가 최초.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