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오재필 (문단 편집) === [[한화 이글스]] 시절 === 입단 후 차세대 외야수로 주목받았으나 당시 감독이 항상 베테랑만 선호하는 [[김인식|그 분]]이셨던데다 전신마취 7회라는 [[유리몸|부상의 늪]]에 빠지는 바람에 거의 기회를 받지 못했다.[* 일단 2005년 한화에 입단 하자마자 팔꿈치 수술부터 받고 재활한 이후, 후반기에 2군 경기에 출전하다가 외야수비 도중 타구에 공을 맞아 얼굴 뼈가 함몰되는 부상을 입기도 했었다. 2006년에 잠깐 1군 무대에 데뷔도 했었지만 곧 부상의 악령으로 인해 다음 해까지도 수술과 재활이 반복되는 시간을 보냈었다.] 2006년 7월 14일 홈에서 열린 [[SK 와이번스|SK]]와의 경기에 5:0으로 이기고 있던 9회 초 좌익수로 대수비 출전하면서 1군 무대 데뷔를 했고, 다음 날에 9:8로 지고 있는 와중[* 7회 말까지 한화가 SK에게 4:8로 이기고 있다가 8회 초에 [[안영명]], [[권준헌]]이 불쇼를 거하게 지르는 바람에 대거 5점이나 주면서 대역전패를 당해버렸다.]에 9회 말 2사 주자 없는 상황에 [[제이 데이비스|데이비스]]의 대타로 1군 무대 첫 타석에 들어서 SK의 마무리 [[호세 카브레라]]를 상대했지만 2루수 뜬공으로 물러났었다. 이후 7월 19일 수원에서 열린 [[현대 유니콘스|현대]]와의 원정 경기에서는 파격적으로 선발 좌익수 1번 타자로 기용되었으나 1회 초에 2루수 땅볼, 3회 초에 3루수 땅볼, 5회 초에 2루수 뜬공으로 물러난 후 [[연경흠]]으로 교체되고 말았다. 이후 1군 엔트리에서 말소된 이후 2006시즌은 더 이상의 기회를 부여받지 못했다. 수술과 재활을 반복한 끝에 2008년에는 주로 백업 요원에 그쳤지만, '''50경기'''라는 기회를 받긴 했다. 개막 이후 한 달 동안 규정타석은 미달이었으나 3할 타율을 올리는 활약도 보였다가, 이후에는 다소 오락가락하면서 시즌 최종 0.228을 기록했다.[* 다만 sWAR 기준으로 -0.29인데 이는 사사구 3개 얻는 동안 삼진을 23개나 당한 것과 대타로 나오면서 득점권에서 유독 침묵한 것 때문으로 보인다.] 여하튼 기대만큼의 활약은 하지 못한 채 2008시즌을 마친 후 [[공익근무요원|공익근무]]로 병역을 마친후, 2011시즌에 복귀하였다. [[정현석]]이 병역을 위해 [[경찰 야구단]]으로 떠났고, [[강동우]]가 수비에서의 노쇠화가 심해지고 '''[[김경언|김]]/[[고동진(야구선수)|고]]/[[추승우|추]]''' 삼인방이 모두 좌타라 우타 외야가 심각히 부족했던 [[한화 이글스]]의 사정과 부합하여 [[한대화|야왕님]]에게 많은 기대를 받았다. 하지만 1군에서의 적응 실패(?)로 이렇다할 활약을 보여주지 못하며(?) 2군행[* 당시 군 복무 중이던 [[정현석]]의 빈자리를 채울 좌투용 스페셜리스트로는 적합하지 않아서 그럴지도 모른다. 좌투수 상대로 15타수 1안타. '''6푼 7리'''][* 경쟁자인 [[이양기]]의 성적도 그다지 좋은 편은 아니지만 52타수 12안타 '''.231'''로 나름(?) 괜찮은 셈.], 2군에서 '''4할''' 언저리를 오가며 대활약하면서 감독에게 시위하고 계신다?[* 사실 그 전부터 타격능력은 알아 줬다.] 코너뿐만 아니라 [[중견수]]도 가능하며 수비에서도 다른 [[한화 이글스]] 외야수들에 비하면 매우 준수한 편이고 타격 능력도 출중하기에 기회가 충분히 주어지고 본인이 1군에서 적응만 잘한다면 충분히 성공 가능성이 있는 선수로 보이긴 한다. 스윙 궤적도 좋고 자기 스윙 가져가는 것도 수준급이라고 하나, 역시나 [[선구안]]이 문제로서 BB/K가 극악의 수준이다. 팀 내 [[김회성]]이나 LG 시절의 [[박병호]] 등과 같이 [[2군 본즈|2군 리그는 평정하면서도 정작 1군에서는 죽쑤는]] 예라 하겠다. 2011년 5월 21일 KIA전에서 시즌 첫 홈런을 쳤다. 2011년 9월 확대 엔트리로 1군에 돌아와서 9월 10일 SK전에서는 3안타 3타점으로 혼자 야구하면서 수훈선수로 선정되었고, 9월 13일 KIA전에서는 윤석민에게서 3타점 3루타를 뽑아내기도 하며 ~~분노의~~ 대활약 중이다. 2011년 10월 1일 넥센전에서는 시즌 두 번째 홈런을 만루홈런으로 장식. 점수는 6:5에서 순식간에 10:5가 되었다. 비록 경기는 [[넥센 히어로즈/2011년/10월/1일|내용면에서 누가누가 못하나의 대결]]이었지만 승리하여 수훈 선수로 선정되었다. 2011시즌 최종 슬래시라인은 54경기에 출전하여 0.221/0.295/0.349를 기록하면서 2홈런 14타점 8도루를 해냈다. sWAR 기준 0.21으로 백업선수의 몫을 잘 해낸 편이었다. 팀도 무려 공동 6위를 해내면서 야왕 신드롬의 조연으로는 적절한 활약을 했었다. 2012시즌에도 백업 요원으로 46경기에 출전하여 슬래시라인 0.214/0.313/0.271을 기록하면서 1홈런 5타점 6도루를 해냈다. sWAR도 0.24로 작년에 이어 백업으로써는 무난한 활약을 했다. 2013년 6월 27일 부로 [[강철민]]과 함께 한화에서 방출되어,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잔부상이 결국 선수 생활의 발목을 잡았다. 하지만 알려진 것과 다르게 [[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baseball&ctg=news&mod=read&office_id=111&article_id=0000360759|한화 구단에서는 선수 생활을 지속할 것을 권했으나, 본인 스스로 현역 은퇴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비록 본인의 의사에 따라 은퇴를 선언하고 팀에서 나왔지만, 잦은 부상은 그에게서 선수 생활의 의지를 빼앗아 버렸다. 결국 충분한 포텐을 가지고 있었지만 늘 주저앉아야 했던 비운의 선수로 남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