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옥길동(광명) (문단 편집) == 역사 == ||<-7> '''옥길동(광명) 행정구역 변천사''' || || 인천부 황등천면[br]두길리 (斗吉里, 1896) || → || 부천군 소래면 옥길리[br](玉吉里, 1914) || → || 시흥군 소래면 옥길리[br](玉吉里, 1973) ||→ || '''광명시 옥길동[br](玉吉洞, 1983)''' || 원래 광명 옥길동의 남쪽(식곡)과 북쪽(두길리)은 역곡천을 경계로 서로 다른 동네였다. 식곡과 현 [[과림동]] 북부의 탄평이 황등천면 3리였고 두길리는 어연, 함박, 옥련과 함께 황등천면 4리였다. 때문에 북쪽 동네들(부평말, 두길리, 봉예골)은 건지산을, 남쪽 동네들(식곡, 해방촌)은 만수산을 주산으로 삼고 당제를 지내는 등 풍속도 달랐다.[* 하지만 두길리에서 당제를 지내던 산은 지금은 밭이 되었다. 물론 건지산을 깎아버린 건 아니고 거기에 달린 야산.] 하지만 오류동에서 안산 가는 길, 즉 지금의 397번 도로에 해당하는 길이 이미 조선 후기부터 있었던지라[* 두길리의 이름이 이 '''길 뒤'''에 있다 해서 생겼다. 두길리의 시조(?)는 조선 영조시대에 부평말에 내려와 살던 전 철산부사 하섭이었고 그의 후손들이 정착해 산 마을이 두길리다.] 아예 남남 수준까지는 아니었다. 그러다가 부군면 통폐합 때 3리 식곡만 뚝 떨어져나와 4리와 합쳐져 옥길리가 된 것이 옥길동의 시작.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옥련과 두길리가 이 동네 투톱이었고, 지금도 광명 옥길동에서 가장 크고 번화(?)한 마을이 두길리이다. 1964년 부천군 행정리 개편 때 역곡천 북쪽의 부평말, 두길리, 봉예골[* 부천 가는 삼거리 있는 동네]이 옥길1리가 되고 식곡과 해방촌[* 옛 경기화학 정문 앞 동네]이 옥길3리가 되었다가 1983년 소래읍 옥길 1, 3리가 광명시로 편입되었다. 사실 이 시기 소래읍에서는 과림, 무지내 쪽에서도 광명시 편입 운동이 있었는데 어찌 옥길리만 광명시 편입에 성공했다. 옥길리만 광명과 부천 사이로 비집고 들어간 형태라 정리가 필요했고, 천왕산-만수산을 경계로 나누어 1, 3리는 광명에, 2, 4리를 부천에 편입시켜 버린 것. 그리고 과거 한 동네였던 식곡과 탄평은 '''이 하나로 차원이 갈라져버렸다'''. 이 지역을 관통하는 [[금오로(경기도)|금오로]]는 서울과 광명시 구간에선 편도 2~3차로의 꽤 잘 닦인 길인데 시흥시계로 들어가는 순간 '''차원을 이동해버리기 때문이다'''(...)[* 궁금하다면 네이버 도로뷰 등으로 실태를 확인할 수 있다. 인터넷에 종종 돌아다니는 [[https://owned.com/p/poland-german-border-4578|독일-폴란드 국경 사진]] 수준의 수준차가 일품. 하지만 과림동과 노온사동을 잇는 금하로는 '''이보다 더하다'''. 이 외에도 버스교통부터 시작해 광명시청과 시흥시청의 행정서비스 수준은 [[화영운수|하늘]]과 [[시흥교통|땅]] 차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