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온조왕 (문단 편집) == 기타 == * [[백제]]의 건국자로 [[구태]]라는 인물이 [[중국]] 사서에 등장하는데 이 사람과 온조왕의 관계에 대해 많은 궁금증이 남아 있다. 일설에는 "[[비류]]가 구태나 구태 아들 아니냐"라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한다. * ‘온’은 고유어로 숫자 ‘백(100)’을 뜻하므로, 온조라는 이름 자체가 백제를 의미하고 따라서 백제의 시조로 상상된 가공의 인물 아니겠느냐는 말도 있다. 백제를 포함한 삼국의 초기 왕계에 대한 불신론, 비류 혹은 구태 시조설, 백제 왕가 교체설, 왕가 계보 조작설, 마한 복속이 이 때냐 [[고이왕]]이냐 [[근초고왕]]이냐 등 초기 백제 역사에 관한 설왕설래에서 써먹기 좋은 [[떡밥]]. 이 말이 사실이라면 온조왕 대의 풍부한 기사들은 후대 기사의 삽입이 된다. 그러나, 고유어 '온'은 후기 중세국어에 '오온', 육진 방언으로 '오분' 등으로 나타나므로 본래 어중의 -p-를 가졌을 것으로 보이기에 옳지 않다. * [[조선시대]]에는 [[인조]]와 [[정조(조선)|정조]]에 의해 [[남한산성]]에 온조왕을 모신 숭렬전([[팔전]] 중 하나)이 건립되었다. * 도시로서 [[서울/강남|강남]]의 역사에서도 중요한 인물이다. 서울이 본격적으로 역사에 모습을 드러낸게 온조왕 시대이기 때문이다. [[한국]] 역사에 기록된 최초의 강남 [[신도시]] 개발 사업이 바로 온조왕의 하남 위례성이다. [[서울역사박물관]]에서도 온조왕의 백제 건국에 대해 꽤 자세하게 다루고 있다. 물론 현재의 서울 강남은 [[수도권(대한민국)|수도권]]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생긴 결과물이기 때문에 [[개로왕]] 이후 거의 잊혀진 위례성과의 연속성은 떨어진다. 하지만 그럼에도 땅이 좋은 것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으며 강북은 [[명동]] 일대를 제외하면 [[강남3구]]보다 땅값이 낮다. 백제의 강남 개발 역시 과거 역사상 중심지가 현재의 중심지가 된 사례이기도 하고 수도로서 [[서울특별시|서울]]의 정통성에 [[조선]] 왕조 말고도 또 하나의 큰 가점을 주는 요소이다. 그래서 서울특별시 향토 역사에서 [[한성백제]] 시대를 매우 강조하고 서울특별시 [[홈페이지]]에서도 백제의 500년, 조선의 500년 도합 1,000년 수도였다는 역사성을 강조하고 있다. 특히 1994년만 해도 서울의 수도 지정 기념 행사에서 600년 역사만 강조했을 정도로 조선 수도로서의 역사성만을 강조했었는데 이후 [[풍납토성]]을 비롯한 한성백제기 [[유물]]과 [[유적]]의 활발한 발굴 성과로 위례성이 현재의 강남 지방으로 거의 확정되면서 현재는 백제 수도로서의 역사 또한 향토사에서 강조되고 있다. * 삼국사기에서는 온조왕이 궁궐을 새로 지었을 때의 모습을 두고 [[검이불루 화이불치|'검소하나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나 사치스럽지 않다'(儉而不陋華而不侈)]]라고 표현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