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온천 (문단 편집) == 한국의 온천 == [include(틀:한국의 온천)] 예로부터 온천이 있는, 또는 있었던 동네는 [[온천동]](溫泉洞), [[온양]](溫陽), [[온수동]](溫水洞), 온정리(溫井里) 등 '온([[溫]])'이 들어간 지명이 붙은 경우가 있다.[* 이북 5도에 있지만 [[양덕군]]에 있는 읍면 중에는 온천면도 있다. 군청 소재지인 양덕읍도 온천으로 유명하다.] 상술하듯 법적으로 25°C가 넘는 용출수가 나온다면 전부 온천으로 인정되는데, 한국에 있는 온천 중 절반 정도는 25°C를 조금 넘기는 수준이다. 뽑아낸 온천수를 따뜻한 탕에는 재가열, 차가운 탕에는 냉각을 하여 사용한다. 예외적으로 [[부곡온천]](70°C), [[동래온천]](60°C), 수안보온천(50°C) 등이,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뜨거운 물이 나오는 대표적인 고온온천이다. 또한 대한민국의 온천 가운데 지하에서 인위적으로 끌어올리지 않는 자연용출 온천은 [[덕구온천]](42.4℃)이 유일하다. 한편 [[2000년대]] 이후 관광산업의 활성화와 시추 및 굴착기술의 발전에 따라 많은 온천들이 새로 생겨나고 있다. 500-1,000m 이상 땅을 파서 온수를 강제로 끌어올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서울 시내에 있는 온천들이 대부분 이렇게 최근 수십년 사이에 깊게 온천공을 파서 만든 곳들이다. 보통 현대식 대규모 리조트나 테마파크에 온천이 있다면 이런 경우이며, 전통적인 유명 온천에 비해 뒤떨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다만 특수한 물질이 섞인 특수천은 우리나라에는 정말로 드물다. 화산지대가 없으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한국온천협회에 등록된 온천탕 가운데는 실제 온천탕이나 스파 영업을 하지 않는 시설 역시 존재한다. 병원이나 주상복합아파트, 백화점 등이 온천으로 등록된 경우가 있는데 이들은 해당 부지에서 공사 중 온천이 발견되었거나, 온천 시설을 매입하여 다른 용도로 전환하여 온천으로서 영업은 하지 않지만 온천수를 해당 시설에 공급하는 용도로 사용하는 경우다. 이런 온천 가운데는 [[요양병원]]이 많은데, 이 경우 온천수를 입원 환자의 요양 목적으로 사용한다. 예로부터 개발된 온천도 몇몇 있는데, 유명한 곳으로는 부곡온천이 있다. 조선 이전부터 영산온정(靈山溫井)이라 불렸다. 1972년 신현택이 부곡에 왔다가 어느 지점에 눈이 쌓이지 않고 녹아내린 것을 발견하고 개발을 시작하여 지금에 이른다. 더욱 오래된 온천으로는 [[온양온천]]이 있다. 백제 시절부터 '탕정(湯井, '끓는 우물')'이라 불리며 온천으로 이름난 곳이었으며, 조선시대에는 [[세종(조선)|세종대왕]] 때는 세종대왕이 병 치료차 왔다가 온궁(溫宮)을 지은 이후 [[세조(조선)|세조]], [[현종(조선)|현종]], [[영조]], [[정조(조선)|정조]], [[순조]] 등 여러 임금들이 치료 및 휴양 목적으로 방문하여 온천을 즐기곤 하였는데, 이를 온행(溫行)이라 하였다.[* 국왕의 온행에 소요되는 인원은 5천여 명에 달했다. 궁인들, 군사들 뿐만 아니라 한양에 거주하는 왕족(종친)들, 심지어 온천에 따라 내려가 업무를 볼 조정의 관리들 다수까지 함께 가는 등 궁궐과 조정 전체가 이동했기 때문에 이렇듯 대규모 행렬이 된 것이다. 심지어 정조나 순조는 온행을 오고가는 길에 진법 등 군사훈련까지 시켰을 정도였다. 이렇게 큰 행사였다 보니 해당지역의 수령이나 관찰사 등은 온행길의 조정대신들에게 뇌물을 주는 게 관행으로 굳어진 수준이었다고. 자세한 사항은 [[온양온천]] 문서로.] [[수안보]]온천이나 [[유성온천]] 또한 온양온천처럼 오래전부터([[삼국시대]]로 추정) 유명한 온천지였지만, 수도 한양에서의 접근성이 가장 좋았던 탓에 조선 국왕들이 가장 많이 찾은 온천은 온양온천이었다. 말 그대로 '왕의 온천'이라 불리기에 손색이 없다. 온양온천 못지 않게 역사가 오래된 온천으로는 [[동래온천]]을 들 수 있다. 이곳은 신라 때부터 온천명소로 각광 받았다. 삼국유사에는 683년에 재상이 입욕했다는 기록이, 동국여지승람에는 신라왕이 온천욕을 위해 행차했던 곳이라는 기록이 있어 신라와 관계가 깊은 곳임을 알 수 있다. 일제강점기 때는 일본과 지리적으로 가까워 일본인들의 각광을 받은 곳이었다. 심지어 온천장과 부산 시내를 연결하는 전차노선을 깔았을 정도로 수요가 많았다. 그 외에 어느 온천이었다고 직접적으로 언급은 없으나 조선 2대 임금 [[정종(조선)|정종]]은 상왕이 된 후 전국에 있는 온천을 돌아다니며 한가로이 여생을 보내 [[태종(조선)|태종]]이 부러워할 정도였다. 원래 온천에 대한 표기는 현재 [[목욕탕]], [[찜질방]]에서 볼 수 있는 로고(♨, ♨️)를 사용하였으나, 이 로고가 온천이 아닌 일반 목욕탕에서도 남발되어 쓰이는 바람에 규정을 강화하여 2008년에 현재의 온천 로고([[파일:온천 마크.svg|width=20]])를 새로 만들고, 온천이 아닌 곳에서는 이 로고 사용을 하지 못하도록 단속 기준을 강화하면서 지금처럼 온천과 일반 목욕탕이 분리되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온천수냐 [[수돗물]]이냐의 차이일 뿐 시설에 대한 차이는 아니기에 온천이라고 해도 그냥 목욕탕 수준의 시설을 갖는 곳들도 많다. 오히려 대부분의 온천탕이 이렇다고 할 수 있다. 한국의 온천은 실용적인 면(효능, 비용, 접근성)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어, 자연과 경관, 전통 등을 내세우며 일대가 관광지화된 일부 해외의 온천과는 많이 다르다. 그래서, 이런 기대를 품고 방문한 외국인들은 다소 실망하기도 하는 편. 그들 관점에서는 지방의 작은 온천은 목욕탕&사우나 딸린 모텔이나 다름없고, 대기업에서 운영하는 호텔급의 시설은 대부분 스파 리조트라고 보면 된다. 드물지만, [[이천 테르메덴]]이나 파라다이스 스파 도고처럼 현대화된 온천 테마파크처럼 꾸며놓은 곳도 있긴 하다. 반대로 [[온양온천]]의 신정관처럼 1970년대 정취가 물씬 풍기는 시설을 유지하는 등 시설 수준은 극과 극을 달린다. [[안산시]]에는 '온천 없는 온천역'인 [[신길온천역]]이라는 지하철역이 있다. 우리나라 법률에서 온천의 수온 기준이 25도인데, 여기가 온천 발견 당시 '''25.8°C'''였다고 한다... 이뿐만 아니라 이런저런 복잡한 사정이 꼬이는 바람에 개발이 무산되어 '온천이 없는 온천역'이 된 것이다. 신길온천역이 '온천 없는 온천역' 이라면, 유사하지만 조금 다른 '온천과 역이 모두 망한 역' 또한 존재한다. [[전라북도]] [[완주군]] [[상관면]] 죽림리에 위치한 [[죽림온천]]과 [[죽림온천역]]의 사례이다. [[죽림온천]]은 알칼리성 유황 온천수를 가진 온천으로, 1993년 개장 당시는 전라북도의 대표 관광지로써 많은 사람이 이용하였다. [[죽림온천역]] 또한 당시 [[전라선]]의 일부 구간 이설과 [[복선(철도)|복선화]]에 따라서 새로 신설된 역으로, 여객열차를 취급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소유주의 법적 공방으로 인하여 2008년 폐장하였다. 온천이라고 하여 사용되는 모든 물을 온천수로 사용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온천공에서 뽑아낼 수 있는 온천수의 양은 제한이 있기 때문. 그래서 욕탕에서 사용되는 물의 일부는 온천수가 아닌 일반 [[수돗물]]을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 이는 온천의 특성마다 달라지는데, 대부분의 온천은 따뜻한 탕(온탕, 열탕, 이벤트탕, [[약초]]탕, [[족욕]]탕 등)과 샤워기에만 온천수를 공급하고 미지근하거나 차가운 탕(수압마사지탕, 냉탕, 급냉탕 등)은 일반 물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으며[* 따뜻한 탕보다 차가운 탕이 더 넓고 수심이 깊으므로 들어가는 물의 양이 훨씬 많기 때문이다.] 온도가 높으면 유효 성분이 날아가는 탄산천은 따뜻한 탕은 일반 물을 사용하고 미지근하거나 차가운 탕과 샤워기에만 온천수를 공급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