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옹정제 (문단 편집) === [[문자의 옥]] === 옹정제의 탄압은 측근과 형제들만 머물지 않았다. 이민족으로 중국을 통치한 만주족은 사상적인 면에서 많은 통제를 펴야 했기에 자주 [[문자의 옥]](文字之獄)이라는 필화 사건을 일으켜 많은 책을 검열하고 분서시켰는데, 강희제 - 옹정제 - 건륭제 시기를 걸치며 더욱 강화시켰고 [[가경제]] 때부터 줄어들었다. 강서성에서 과거를 책임지는 관리 사사정은 유민소지(維民所止)라는 시제를 냈는데, 유(維) 자와 지(止) 자가 옹정제의 연호인 옹정(雍正)에서 위의 변만 뺀 것이라 해서 옹정제의 목을 베어버리겠다는 뜻으로 해석해 구족을 베어버렸다. 문제는 이게 창작이 아니라 사서삼경의 하나인 <시경>에 나오는 말이다.[* 다만 사사정을 죽인 것은 정치적인 의도도 있었다.] 또 한림학사 서준이 '폐하'(陛下)의 '폐'(陛) 자를 들개를 뜻하는 '폐'(狴)자로 바꾸어 쓰자 그를 죽여 버리기도 했다.[* 심지어 서준은 이렇게 하고서도 뻔뻔스럽게 [[한자]]도 모르면서 문자를 마음대로 뜯어고친다며, 옹정제를 비꼬는 시를 짓기까지 했기 때문에 [[괘씸죄]]로 목이 베여서 효수되었다.] 이렇게 무자비한 탄압에 옹정제의 권력은 커지기만 했다. 설령 형제나 아들이라도 황제인 자신 앞에서는 무릎을 꿇고 절해야 하는 신하임을 강조하여 사적으로는 형제나 아들이나 공적으로는 엄연히 군신지간임을 강조하였다.[* 옹정제가 과한 측면이 있지만, 앞서 이야기한 강희제 말년의 황자들의 황위 계승 다툼과 이 과정 속에서 황8자이던 염친왕 윤사가 신하들의 중망을 받아서 옹정제에게 대항하였던 측면을 고려하면 전혀 이해 못 할 것은 아니기는 하다. 강희제의 그 많은 아들들 중에서 옹정제의 편에 있었던 사람은 아주 어린 황자들 몇을 빼고는 [[이현친왕 윤상|황13자 윤상]]과 황16자 윤록, [[애신각라 윤례|황17자 윤례]] 등이 전부였고, 나머지들은 여러 트집을 잡아서 박해하였으니 옹정제가 사람 불신에 빠진 것이 이해가 될 정도이다.] 전설의 무기인 [[혈적자]]가 이때 옹정제가 보낸 환관 무사들이 숙청 대상자를 암살할 때 썼던 무기라고 전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