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옹진군 (문단 편집) == 역사 == [[8.15 광복]] 이전까지는 [[황해도]] 소속으로 옹진반도 일대를 관할하던 군이었다. [[삼팔선|38선]]을 기준으로 한 남북 분할 당시만 해도 옹진군은 38선 남쪽이라 남한에 속해 있었다. 황해도 옹진군의 역사는 [[옹진군(황해남도)]] 문서 참고. 해방 이후 [[38선]]이 설정되면서 옹진반도의 대부분이 남한령이 되어 [[경기도]]로 편입됨과 동시에, 마찬가지로 38선 이남이 된 [[장연군]] 백령면(백령도, 대청도, 소청도)과 [[벽성군]] 해남면, 동강면, 송림면(대연평도, 소연평도, 대수압도, 소수압도) 등을 편입하였다. 하지만 [[1953년]] 7월 27일 [[6.25 전쟁]] 휴전으로 본토인 옹진반도가 완전히 [[북한]]령이 되면서, 남한령 옹진군은 딱 '''2개 면'''([[백령면]], 송림면), 즉 [[서해 5도]]([[백령도]], [[대청도]], [[소청도]], [[연평도|대연평도]], [[연평도|소연평도]])[* [[서해 5도]]에 속하는 [[우도(서해 5도)|우도]]는 [[인천광역시]] [[강화군]] 소속이다.]만 남게 되었다.[* 그나마 남은 면들도 상술했듯이 백령면은 [[장연군]], 송림면은 [[벽성군]]으로부터 편입된 상황이라 일제 때 황해도 옹진군과 지금의 인천광역시 옹진군(북한 옹진군 제외)의 행정구역은 하나도 겹치지 않는다.] ||[[파일:경기도 옹진군 휘장(1995년 이전).jpg|width=200]]|| || [[파일:경기도 옹진군 휘장.svg]] || || 경기도 옹진군 시절의 휘장 || [[1973년]] [[부천시/역사|부천군]]이 폐지되면서 오갈 데 없게 된 도서 지역(영종면, [[북도면]], 용유면, 덕적면, 영흥면, 대부면)을 편입하여, 2개 면밖에 남아 있지 않았던 옹진군의 영역을 대폭 넓혔다. 1974년 백령면의 대청도, 소청도를 대청면으로, 1983년 영흥면과 덕적면의 일부 도서를 자월면으로 분리하였다. 1989년 [[영종도|영종면]], [[용유도|용유면]]이 [[인천광역시|인천직할시]] [[중구(인천광역시)|중구]]에 편입되었다. 1994년 [[대부도|대부면]]이 [[안산시]]에 편입됐다.[* 하지만 대부도 지역은 [[인천광역시|인천]] [[지역번호]] 032를 사용하며, 시화방조제 및 탄도방조제의 건설로 현재 관할인 안산시를 비롯해 [[시흥시]], [[화성시]] 등과 연륙되었음에도 여전히 인천 생활권이다. 그래서 대부도 주민들은 안산시에 편입되면서 각종 불이익이 생겼다며 [[인천광역시]] 옹진군으로 다시 편입하게 해달라고 정식으로 요청했으나, 현재 별다른 진전은 없다. 또한 2014년에서 2015년, 대부동에서 대부면으로 전환하자는 대부도 내 여론도 있었지만 아직 실현되지 못하고 있다.] 1995년 3월 1일 [[강화군]] 그리고 김포 소속이었던 검단면(현 인천광역시 서구 검단동)과 함께 [[인천광역시]]로 편입됐다. [[경기도]] 옹진군 시절부터 전화번호 032를 쓰고(시읍면 단위의 통화권이 시군 통화권으로 정리되는 과정에서 1980년대 초반 즈음에 인천 통화권으로 편입된 것으로 추정) 기타 광역행정과 생활권이 인천과 얽혀있는 부분이 많다는 점이 인천 편입의 근거가 되었다. 그리고 옹진, 강화, 김포 검단 중에서 옹진이 주민투표에서 인천 편입 찬성 비율이 가장 높게 나온 곳이기도 하다. 찬성 비율이 80%대였다. 1999년 7월 20일에 송림면을 연평면으로 개칭하였다. 정리하면, 현재의 옹진군은 해방 직후의 옹진군(옹진반도+[[서해 5도]]) 중 현재 남한에 속하는 섬들과, 과거 경기도 부천군에 속했던 나머지 섬들(덕적면, 북도면, 영흥면, 자월면)[* 조선시대로 거슬러 올라가자면 이 섬들은 인천도호부와 지금의 화성시 서부에 위치하던 남양도호부 소속이었는데, 일제강점기에 [[부군면 통폐합]]으로 인해 폐지된 [[남양군]]의 도서 지역과 인천부가 분리되고 남은 농촌 잔여 지역인 부천군에 합쳐지게 되었던 것. 즉 현재 인천 옹진군에는 일제 때에도 옹진에 속한 곳은 전혀 없다.]의 2개의 별개의 지역이었던 것이 해방 이후 남북 분단과 [[6.25 전쟁]]을 거치면서 하나의 군으로 편제된 셈이다. 즉 현재의 옹진군은 정신이나 조직적인 면을 제외하고는 원래의 [[옹진군(황해도)|옹진군]]과는 연관이 별로 없다.[* [[서해 5도]]는 [[옹진군(황해도)|옹진군]]과 가깝기는 했지만, [[장연군|장연]]과 [[해주시|해주]]가 옹진보다 더 큰 고을이었기 때문에 조선 시대부터 [[연평도]]는 해주부에, [[백령도]]와 [[대청도]]는 장연군에 편제되었다. 사실 [[6.25 전쟁]]이 끝날 무렵에는 원래부터 옹진군이었고 옹진반도 바로 앞에 있는 기린도, 창린도, 옹도 등도 관할하고 있었지만, 휴전 협정 과정에서 북한 본토(옹진반도)와 가깝다는 이유로 북한에 내주었다. 일제 때 황해도 옹진군을 기준으로 하자면 하나도 없다.] 그래서인지 [[2010년]] [[법제처]]는 인천 옹진군과 [[황해도]] [[옹진군(황해남도)|옹진군]]을 별개의 행정구역으로 보고 황해도 옹진군을 미수복 지역으로 간주해 명예 군수를 임명할 수 있다고 해석했다. [[https://www.moleg.go.kr/lawinfo/nwLwAnInfo.mo?mid=null&cs_seq=41927¤tPage=521&keyField=&keyWord=&sort=date|#]] 현재의 옹진군은 원래 옹진군과 전혀 상관없는 곳이 되었다는 점에서 [[시흥시]]의 [[시흥시/역사|역사]]와 공통점이 있다. 또한 현재의 옹진군 중에서도 그나마 해방 직후부터 옹진군이었던 [[서해 5도]]보다 옛 부천군에 해당되는 나머지 도서 지역의 비중이 더 높다. 다만 [[시흥시]]와 다른 점이 있다면, 옹진군은 수복지구임시행정조치법에 의거, '''관할 지역 상실이라는 특수한 사유로 인해 임시로 편성된 군'''이라는 것이다. 현재 옹진군에 거주하는 주민도 대다수가 [[옹진|옹진반도]]에서 살다가 이쪽으로 피난온 주민들과 그 후손들이다. 하지만 지방자치제가 실현된 현재는 엄연히 인천광역시 산하로서 정식 기초자치단체로 자리잡았으며 어느 누구도 임시 행정구역이라고 여기는 사람은 없다. 해방 직후의 옹진군에서 대한민국 실효지배 지역에 남은 [[서해 5도]]는 [[북한]] [[황해남도]]와 매우 가까이 위치하고 있다. 그래서 [[연평해전]], [[대청해전]], [[천안함 피격사건]], [[연평도 포격전]] 등 [[조선인민군]]에 의한 피해를 많이 입었다. 21세기 현재에도 북한군이 군사 훈련을 빙자한 해상 포격 등 [[북한/대남 도발|대남 도발]]을 벌일 경우 백령도, 연평도 주민들은 섬의 대피소로 긴급 대피하거나 어업 활동을 중단하기도 한다. 적어도 [[한반도]] 본토에서는 휴전 이후 [[간첩]], [[무장공비]] 침투 등의 도발은 많았지만 직접적인 육상 포격이 없어 전쟁 분위기를 크게 실감할 수 없지만, [[서해 5도]]에서는 여전히 우렁찬 북한군 해안포의 포성과 함께 '''아직도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는 분위기를 생생하게 실감할 수 있다. 그리고 이후 옹진군 관할이 된 옛 부천군 관할 지역도 유사 시 [[서해 5도]]가 함락될 경우 인천항 사수 직전 제2저지선으로 중요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