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왕(작위) (문단 편집) === 대한제국 === [[조선]] 때에는 [[세자]]가 아닌 [[왕자]]나 [[왕녀]]에게 '[[저하]]'나 '[[마마]]'를 절대 사용할 수 없는 것이 조선 왕실 예법이었다. 하지만 [[고종(대한제국)|고종]]이 왕의 칭호를 [[대군주]]로 선포한다. 당시 서구에서도 이미 동아시아에서는 왕이 황제에게 책봉된 [[제후]] 작위의 개념으로 쓰인다는 점이 널리 알려졌기에, 서구 세력과의 교류에서 조선의 자주성을 강조하고자 고안해낸 새로운 칭호였다. 당시 조선에서는 서양의 King을 대군주로 번역하는 한편, 대군주라는 칭호를 서양에서 통용되고 있는 King과 필적하는 권위를 부여하려고 애쓰기도 했다. 때문에 당시 서양에서는 왕과 대군주의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웃픈 상황도 발생했었다. 그리고 호칭도 [[폐하]]로 고치면서, 왕자를 포함한 다른 왕족들의 호칭도 [[전하]]로 바뀌었으며 [[흥선대원군]]도 마찬가지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독립신문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2326172&cid=51385&categoryId=51385|1897년 1월 9일 토요일]] 및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2326265&cid=51385&categoryId=51385|1897년 7월 31일 토요일]] 기사.] 이후 [[대한제국]]과 황제 칭호를 선포하면서 친왕 제도를 도입하였다. 종인학교 관제에 친왕 뿐만이 아니라 군왕(郡王) 역시 언급된 점을 살펴보면 군왕 책봉 또한 고려하여 제도를 설계했던 것으로 추정되지만, 대한제국이 13년 만에 끝났기에 군왕 책봉 사례는 없다. 또한 [[청나라]]처럼 세습친왕가의 개념이 있었는지도 확인되지 않는다. [[군주]]의 직계 4대손까지만 종친으로 인정한 [[조선]]의 사례나, 흥친왕 책봉 사례를 봤을 때 [[세습]]은 염두에 두고 있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대한제국에서 친왕들을 호칭할 때 '친'자를 생략해 '○왕'으로 부른 사례가 있기에, 일부에서는 '친'자를 생략하지 않는 일본의 사례와 대비하여 대한제국의 친왕들을 '○친왕'으로 표기하는 것이 일본식 표현이라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공식 문서인 책봉 금책에선 엄연히 '○친왕'으로 명기했고, 도장 또한 '○친왕인(○親王印)'으로 새겼다. 문헌에서 확인되는 사례도 '○친왕' 쪽으로 표기한 사례가 훨씬 많으며, 오히려 '○왕' 쪽이 사례가 적다. 특히 [[봉호]]를 지정하는 방식을 살펴보면 대한제국의 친왕 제도는 청나라의 친왕 제도를 참조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대한제국의 작위 제도가 끝내 완성되지 못했고, 군왕 책봉 사례가 없이 친왕 책봉제도 또한 유지된 기간이 오래되지 않았기에, 명확한 의전 기준이 마련되지 않아 약칭인 '○왕' 표현도 허용되고 있었던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 [[의친왕]]: [[https://sillok.history.go.kr/id/kza_13708017_001|1900년 8월 17일 책봉]]. 귀인 장씨의 소생이자 [[고종(대한제국)|고종]]의 5남. [[순종(대한제국)|순종]]의 이복동생이면서, [[영친왕]]의 이복형. * [[영친왕]]: 1900년 8월 17일 책봉, 1907년 8월 7일 [[황태자]]에 책봉되면서 친왕위 폐지. 최종적인 공식 칭호는 '영친왕'이 아닌 황태자였지만, 현재는 관용적으로 보통 영친왕으로 불린다. 의민황태자로도 불리는데, 이는 [[전주 이씨]] 대동종약원에서 사적으로 '''의민(懿愍)'''이라는 [[시호]]를 올렸기 때문이다. * [[완화군|완친왕]]: [[http://sillok.history.go.kr/id/kzb_10010001_002|1907년 10월 1일 추봉]]. 고종의 서장자. * [[흥선대원군|흥선헌의대원왕]]: [[http://sillok.history.go.kr/id/kzb_10010001_001|1907년 10월 1일 추봉]]. * [[흥친왕]]: [[http://sillok.history.go.kr/id/kzb_10308015_001|1910년 8월 15일 책봉]]([[경술국치]] 2주 전). 흥선대원왕의 장남이자 [[고종(대한제국)|고종]]의 친형.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