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왕경(삼국지) (문단 편집) === [[강유]]의 4차 북벌 === 255년 8월 2일에 [[옹주]] 자사를 지낼 때 [[진태]]에게 [[강유]]와 [[하후패]]가 세 갈래의 군사를 나눠 침공한다고 보고하는데, 진태는 그들의 군사가 합치기를 기다려 적도에서 싸우라고 하니 조서에서 그와 싸웠으나 크게 패해 수만명의 병사를 잃고[* 10여 년이란 텀이 있기에 어느 정도 교체가 됐겠지만 그래도 이때 왕경이 이끄는 옹주방위군은 과거 [[흥세 전투]]에서 조상 본대가 위험에 처하자 독자적으로 철군을 감행한 [[곽회]]의 현명한 판단으로 운 좋게 보존된 3만의 옹주군과 대략적으로 일치할 것이다. 즉 전임 옹주자사 곽회가 보존한 옹주군을 후임 왕경이 수만명의 전사자가 났다는 강유와의 조수전투를 통해 다 [[개발살]]났을 공산이 크다.(...)] 적도성에서 포위당한 것을 진태와 [[등애]]의 도움으로 겨우 벗어난다.([[적도 전투]]) 그리고 왕경은 "식량은 열흘분도 못 남았습니다. 만일 때에 이르러 구원병이 오지 않았다면 성을 들어 궤멸해 옹주를 잃게 되었을 것입니다."라고 감사의 말을 나타냈으며, 다른 [[위나라]] 장수들이 그들을 쫓아낸 뒤에 사람들이 이걸로 강유가 다시 올 수 없을 것이라고 하자 등애가 "왕경이 너무 크게 패해서 다시 올 것이다."라고 하니 과연 등애의 말대로 강유는 다시 공격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