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왕랑(삼국지) (문단 편집) == [[삼국지연의|연의]] == 15회에서 [[손책]]의 쾌진격에 희생양으로 등장한다. [[엄백호]]와 한데 묶여서 친구가 돼 버렸다. 거기다가 무력 보정까지 얻어서 왕랑이 직접 '''[[태사자]]와 칼춤을 추며 [[일기토]]를 벌이는''' [[삼국지연의/수혜자|장면까지 나온다.]][* 그래서인지 한중합작 [[특촬물]] [[레전드히어로 삼국전]]에서 [[레전드히어로]]로 등장한다. 그것도 '''[[문관]]'''임에도 불구하고 [[우길]]을 제외한 레전드히어로 전원이 '''[[무관]]'''인 것을 감안한다면 무력보정을 제대로 받은 셈이다.] 손책에게 패배한 뒤에는 한참 동안 등장하지 않다가[* 공백기가 30년이나 넘는 탓에, 독자들은 '손책에게 썰린 왕랑'과 '제갈량한테 말로 썰려 빡쳐서 죽어버린 왕랑'이 같은 사람인지 모르는 경우가 있다.[* --물론 게임한 사람들은 잘 안다--] [[위나라]]로 들어간 탓에 활약상은 없어지고, 그냥 중신 1로 전락했다.] 조예가 즉위한 뒤 제갈량의 [[사마의]] 모함 작전에 넘어가 화흠과 함께 사마의를 열심히 까서 파직당하게 만든다. 이로써 안심한 [[제갈량]]이 북벌을 단행하자 [[조진]]을 천거하며 그의 군사가 되어 같이 출병한다.[* 이 때 그의 나이가 75세라는 언급이 나와 연의에서는 153년에 태어난 것으로 설정되었지만, 실제로는 그의 나이를 알 수 있는 기록이 없다. 다만 아들 [[왕숙]] 관련 기록에서 그의 나이를 간접적으로 유추할수 있는 정보가 있는데 167년생이니 이때 61살이였다.] 제갈량을 회유하러 몸소 나섰으나 93회에서 제갈량이 준엄하게 반박하자 열받은 나머지 말에서 떨어져 죽는다. 덕분에 적은 비중인데도 불구하고 연의에서 그것도 '''[[제갈량]]과 [[태사자]]라는, 최상위권 실력자들을 상대로 [[일기토]] 및 [[설전]]을 둘 다 해본''' 극히 적은 인물들 중 하나가 되었다. [* 다만 연의에서 설전은 대부분 제갈량이 중심이기에 제갈량과 설전한 것은 특이한 것은 아니다.] 물론 다 졌지만(...). 정작 웃긴 건 실제로 목숨이 위험한 일기토에서는 생존했지만 그것보다 훨씬 안전한 설전에서 죽었다는 것.(...) 다음은 [[이문열 평역 삼국지]] 9권에 있는 제갈량과 왕랑의 설전 부분으로, 일부분을 약간 각색했다. ||왕랑이 말을 몰고 앞으로 나섰다. 공명이 수레 위에서 손을 맞잡아 예를 갖추자 왕랑도 말 위에서 몸을 굽혀 답례한 후 입을 열었다. "공의 크신 이름을 들은 지 오래로 만나뵙지 못하다가 이제야 뒤늦게나마 뵙게 되니 참으로 다행이외다. 공께서는 이미 하늘의 뜻을 알고 시무에 밝으신 몸이거늘, 어찌하여 명분 없이 군사를 일으키셨소?" 공명이 대답한다. "황제의 조서를 받들어 역적을 치려 함에 어찌하여 명분이 없다 하시오?" "[[천명|천수]]는 변하는 것이고 제위 또한 바뀌는 것이오. 덕 있는 사람에게 돌아감이 자연의 이치일지니 지난날 [[환제(후한)|환제]], [[영제(후한)|영제]] 이래로 [[황건적]]이 [[황건적의 난|난을 일으켜]] [[천하]]가 어지러워짐에, [[초평]], [[건안]] 때에 이르러서는 [[동탁]]이 [[반역]]을 일삼고 [[이각]]과 [[곽사]]가 포악하게 굴었으며, [[원술]]이 [[수춘]] 땅에서 황제를 참칭하기에 이르렀소. 또한 [[원소]]는 [[업성|업]] 땅에서 스스로를 [[영웅]]이라 하며, [[유표]]가 [[형주]]를 점령하고, [[여포]]가 [[서주]]를 집어 삼키는 등 그야말로 도적들이 벌떼처럼 일어나 [[간웅]]들이 활개치는 바람에 사직이 누란의 위기에 처하고 백성들이 도탄에 빠졌소이다. 그때 우리 [[조조|태조 무황제]] 폐하께서는 천하의 간사한 무리들을 소탕하시고 사해를 석권하시어, 만백성이 공경하고 천하 사람들이 그 덕을 우러러보니 이는 권세로써 취함이 아니라 그야말로 하늘의 뜻에 따르신 것이오. 우리 [[조비|세조 문황제]]께서는 문무에 통달하시어 대통을 이어받으셨으니 이는 하늘의 뜻에 따르고 사람의 마음에 합당한지라, [[요(삼황오제)|요]]가 [[순(삼황오제)|순]]에게 제위를 물려준 옛법을 본받아 [[중원]]에 자리잡고 만방을 다스리니, 이야말로 천심에 응함이며 인의에 따름이 아니고 무엇이겠소? 지금 귀공은 큰 재주와 큰 뜻을 품고 스스로를 [[관이오|관중]]과 [[악의(전국시대)|악의]]에 비하면서 어찌하여 천리를 거역하고 인정을 배반하는 일을 행하신단 말씀이오? 공께서는 '하늘에 순종하는 자는 창성하고 하늘을 거역하는 자는 망한다'는 옛말을 들어보지 못하셨소? 지금 우리 대위는 갑옷 입은 병사가 1백만에 훌륭한 용장이 1천명에 달하외다. 그런데 어찌 썩은 풀더미 속의 한낱 반딧불로 감히 하늘의 밝은 달빛과 견주려 하시오? 귀공이 지금이라도 창을 거꾸로 잡고 갑옷을 벗어 항복한다면 제후의 지위를 잃지 않을 것이며 더구나 나라와 백성이 안락하리니 이보다 아름다운 일이 어디 있겠소이까?" 다 듣고 나서 공명이 한바탕 크게 웃고는 입을 연다. "네놈이 [[한나라]]의 원로 [[대신]]이라 하여 무슨 고견이라도 있을 줄 알았더니, 그 말이 참으로 비루하기 짝이 없구나. 이제 내가 말할 게 있으니, 모든 군사들은 조용히 들으라. 지난날 [[환제(후한)|환제]], [[영제(후한)|영제]] 때에 한실의 법통이 흐려지니 [[십상시|환관의 무리]]가 [[십상시의 난|재앙을 일으켜]] 나라가 어지럽고 해마다 흉년이 들어 천하가 소란하였다. 또한 [[황건적의 난|황건적이 난]]을 일으켜 [[동탁]]과 [[이각]], [[곽사]] 등이 연이어 일어나 [[헌제|황제]]를 핍박하고 백성들에게 잔악하게 굴었도다. 이는 조정에 [[탐관오리|썩은 나무토막 같은 관리들]]만 있고 조정에서는 [[간신|금수만도 못한 것들]]이 녹을 받아먹으며, [[인면수심|이리 같은 심사와 개 같은 행실을 하는 무리들]]이 뒤를 이어 정사를 좌지우지하고 아첨하는 무리들이 정권을 잡은 탓에 사직은 폐허가 되고 억조창생이 도탄에 빠지게 된 것이다. 내 너의 소행을 진작부터 알고 있었느니라. 너는 대대로 동해 가까이 살다가 효렴으로 벼슬길에 들었으니 마땅히 [[천자]]를 받들고 국사를 도와 한나라를 평안케 하여 유씨를 일으켜야 마땅하거늘, 너는 오히려 [[조조|역]][[조비|적]]을 도와 [[찬탈]]을 도모했을 뿐이로다. 그 죄가 깊고 무거워 [[천인공노|천지가 용납지 않으며 천하 사람들이 네 고기를 씹어먹기를 원한다.]] 신하가 되었으면 그저 몸을 숨기고 머리를 숙여 구차히 목숨이나 이어갈 일이지 어찌 감히 황제의 군사 앞에 나타나 망령되이 천수를 논하는 것이냐? 다행히 하늘의 밝은 뜻으로 한실이 끊기지 않았으니 이는 [[유비|소열황제]]께옵서 [[익주|서천에서]] [[촉한|한나라의 대통을 이었기 때문이다.]] 내 이제 [[유선(삼국지)|새로운 황제폐하]]의 뜻을 받들어 군사를 일으켜 [[위(삼국시대)|도적]][[제갈량의 북벌|을 치려하거늘]], 이 머리 흰 아첨꾼 필부, 수염 푸른 늙은 도적놈아! 네놈도 머지않아 그 수명이 다할 것이거늘 무슨 낯짝으로 구천에 계신 스물네 분 천자를 뵙겠느냐? 늙은 도적놈은 속히 물러가고, 즉시 역적의 무리를 내보내 나와 승부를 겨루게 하라!" 공명의 말을 듣고 있던 왕랑은 그만 기가 치솟고 숨이 턱 막혀 외마디 비명을 지르고는 말에서 떨어져 죽고 말았다.|| 말 그대로 '''[[삼국지연의/피해자|연의의 피해자.]]''' 왕랑에게 이런 굴욕적인 대우와 비참한 죽음을 안겨준 것은 아무래도 왕랑 본인이 조위의 중신이었으며 그의 후예들 역시 [[진(사마씨)|사마씨의 진나라]] 측근에서 여전히 현달하며 부귀영화를 누렸고 결정적으로실제로 서신을 제갈량에게 보내 얌전히 위나라에 투항하라고 권한 것을 [[괘씸죄|작가가 괘씸하다고 여긴 것일 수도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