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왕사례 (문단 편집) == 평가 == >윗사람의 뜻을 받들고 계책을 꾸미는 것에는 능했지만 군사를 다루는 데에는 부족함이 있었다. 하지만 법을 엄중히 하여 병사들이 함부로 이를 어기지 못하게 하였으니 사람들이 이를 칭찬하였다. >---- >구당서 구당서 왕사례 열전에서는 마지막에 왕사례에 '''"윗사람의 뜻을 받들고 계책을 꾸미는 것에는 능했으나 군사들 다루는 데에는 부족함이 있었다.'''라고 평하였다. 이는 왕사례의 원리원칙주의자 기믹 + 독한 성격도 어느 정도 영향을 주었을지도 모른다. 한 마디로 말해서 왕사례의 성격은 상관으로 치면 완전 빡빡하게 군기잡는 상관이니 맡은 일은 잘 할지언정 아랫사람들이 정 붙이긴 좀 힘든 타입일 듯. 뭔가 살짝 부정적인 평가다. 단독으로 싸울땐 잘만 싸우는데 연합해서 싸울땐 패전도 많다. 동관이라든가, 상주에서라든가...--솔플이 주특기인데 팀플은 잘 못하는 사람인가-- 그러나 또한 '''"법을 엄중히 하여 병사들이 함부로 이를 어기지 못하게 하였으니 사람들이 이를 칭찬하였다."'''라고도 하였는데, 이런 점이야 말로 왕사례의 진정한 장점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한마디로 엄중하고도 원칙을 잘 지키며 때로는 독하고 끈질긴 면모를 드러내는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가서한이 군법에 따라 자신의 목을 베려다가 말았을 때 왜 군법에 따르지 않고 말을 번복하면서 따졌던 일화나 말에서 떨어져 중상을 입었음에도 조서의 명을 따랐던 일화는 이러한 왕사례의 성격을 잘 보여준다. 애초에 당은 물량 면에서 세계 최고 수준이었고, 당 정부군은 그 물량을 착실하게만 운용해도 이길 수밖에 없었다. 그 물량으로 야매를 부리면 망하는 것이고. 그러나 왕사례의 후임으로 온 사람은 왕사례의 철저한 원칙주의자 + 규범준수 + 독하고 끈질긴 면모 중 어느 하나도 지니지 못했다. 외려 상당히 헐거운 성품의 사람이어서 왕사례가 다 잡아놨던 군사들의 군기가 이 사람 때문에 다 해이해진다. --야메로-- 게다가 왕사례가 살아생전 알뜰살뜰하게 모아두며 철저히 관리했었던 군량미도 왕사례 사후 후임이 온 뒤 군사들이 다 밑장빼기 해버렸고 후임 관리는 이를 봐줬기에 나중에 심각한 군량미 문제가 오게된다. 그에 대한 또다른 일화에 따르면 동관에서의 패전 당시 장광성이란 자가 말을 건네주어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었는데 왕사례는 고마워서 그에게 이름을 물었으나 알려주지 않았다. 후일에 태원윤으로 있을 때 왕사례에게 밉보인 신운경이 걱정하고 있는데 그때 이 장광성이 '자기가 가서 일을 해결하겠다' 고 말하고 찾아가 그를 만났다. 그런데 왕사례가 이름도 모르고, 동관 이전엔 안면도 없었던 장광성을 곧바로 알아보고는 '''어찌하여 서로 만나보는 것이 이렇게 늦었는가''' 하면서 환대했고, 장광성이 신운경을 용서해 줄 것을 청하자 기꺼히 용서해준 후 이전까지 일개 하사관급이였던 장광성을 '''병마사'''로 올리고 후대했다. 이를 보아 [[이순신|원리원칙주의자답게 은혜를 입거나 성과를 보여준 인물에게는 확실히 보답하는 인물]]이기도 했던 듯하다. [[고선지]]나 [[이정기]] 등과 마찬가지로 [[고구려]] 유민 출신으로 [[당나라]]에서 활약했다는 점이 돋보이는 인물. 특히 세 사람 모두 [[안사의 난]]과는 관련이 있는 인물이라는 점이 재미있다. 고선지는 안사의 난으로 인해 억울하게 목숨을 잃은 반면, 이정기는 혼란을 틈타 절도사가 되어 강력한 지방 세력가로 성장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