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왕삼구 (문단 편집) === 나약한 과거 === 천천촌이라 불리는 고향 마을에서 나름 행복하게 지내던 왕씨 칠형제가 있었다, 그중 첫째인 왕일의 친구인 양일과 그의 동생인 양이는 양씨가문의 대부인이 자식을 낳지 못해 들여온 첩실의 자식으로, 동생 양이는 친모를 따라 대부인을 괴롭히지만 형인 양일은 마음씨가 착하여 괴롭힘을 당하는 대부인을 성심성의껏 모신다. 그 모습을 본 주변인들이 양일을 칭찬하는 동시에 양이에게는 욕을 하자 그는 독심을 품고 형을 제거할 흉계를 꾸몄다. 지나가던 괴한과 짜고 친형과 왕씨 칠형제에게 도둑놈이란 누명을 씌워 두들겨 패 죽인다.[* 양일과 왕씨 칠형제는 괴한의 점혈법(點穴法)에 당해서 전혀 말을 할 수 없는 상태였다, 심문중이라도 말을 할수 없으니 몹시 두들겨 맞다가 결국 양일과 왕일,왕이가 죽는다.]간신히 숨통만 남은 왕씨 오형제는 다행히 지나가던 [[화산파(풍종호)|화산파]](華山派) 열화문(烈火門)의 함허자(涵虛子)가 구해준다.[* 오류가 있다. 처음에는 이 사태에서 왕일과 왕이가 살아남아 녹림도로 2~3년 지내다가 죽었다고 한다······.] 함허자는 한동안 왕씨 오형제를 이끌고 여러 곳을 다니다 하늘에서 내려온 한 줄기 동아줄과 같은 건곤일월경(乾坤日月經)을 전수하곤 떠나간다.[* 여기도 오류가 있다. 초기 설정은 함허자가 그들을 구해주고 건곤일월경을 대충 전수한 다음, 다른 볼일을 보러 급히 떠난 것이었다. 그렇기에 왕삼구는 자신이 익힌 무공의 이름조차 몰라서 화산행을 결심한다. 이것이 소설 후반에서는 본문처럼 함허자가 왕씨 오형제와 한동안 같이 있었던 것으로 바뀐다.] 남은 오형제는 고향에서 쫓겨난 신세로 자연스레 녹림도의 길에 발을 디디게 된다. 이즈음에 그들은 부모가 남겨준 성씨와 숫자뿐인 이름 뒤에 각자 한 마디씩을 덧붙이기로 한다. 그래서 왕삼은 녹림도가 되어 애꿎게 죽는 자가 아니라 차라리 죽이는 자가 될지언정 오래 길게 살자고 간절히 염원해서 '구(久)'를, 왕사는 그냥 그런 놈은 싫다며 영웅을 꿈꿔 '영(英)'이란 글자를 고른다. 왕오는 살고 싶다고··· 그저 그뿐이라며 그럭저럭 많이 익힌 티를 낸답시고 '생(生)'자를 선택하면서 여섯째와 일곱째에게도 '산하(山河)'처럼 든든하고 오래 살자며 한 글자씩 따서 붙여준다. 하지만 힘이 없는 자들에게는 산적질도 쉽지 않았다. 오히려 다른 산적들에게 당하기 일쑤에, 잘 숨은 듯해도 이리저리 치이며 도망치기 바빴다. 그리 10여 년을 버텨온 왕씨 오형제에게도 피할 수 없는 비극이 찾아온다. 다른 녹림도의 싸움에 휘말려 얼굴에 곰보 자국이 있는 놈에게 막내 칠하가 잡히는 바람에 그놈이 지명한 칼잡이에게 여섯째 육산이 덤빌 수밖에 없었다. 제법 칼질이 좋아진 육산이었지만, 칼잡이 얼굴에 칼자국을 남기며 목이 잘리고, 인질이 됐던 칠하도 곰보 놈에게 심장이 찔려 죽고 만다. 몇 년이 지나지 않아 아픔을 치유할 때쯤 이번에는 새로 자리 잡은 산채를 노리고 노호채에서 쳐들어온다. 호조수(虎爪手)에 살이 찢겨 내장이 흘러내린 식구들의 참혹한 모습, 실력이 일취월장(日就月將)하여 앞으로는 핍박받고 살지 않아도 되겠다는 희망을 품게 한 넷째 사영도 죽어 남은 이들에게 절망을 안긴다. 결국, 강한 두목을 찾아간 녀석들과 어디도 못 가고 죽은 녀석들, 그래도 왕씨 형제와 함께하겠다고 남은 녀석들로 패거리가 토막 난다.[* 노호채 사건은 왕가채의 중요한 과거인데도 설정에 구멍이 있다. 초기에는 노호채가 규모가 커서 팔두령이니 구두령이라고 하는 놈이 대표로 쳐들어와 대두령의 명령으로 아무도 죽이지 않은 채 주먹만으로 왕가채를 쫓아냈다고 한다. 나중에는 본문에 기술한 것처럼 호조수에 죽은 형제들이 있는 것으로 설정이 바뀌어 왕삼구가 화산 가는 길에 백호채에 들러 피의 복수를 한다. 그리고 왕사영이 죽은 사유는 본 편에서 정확히 드러나지 않는다. 다만 그의 죽음 이후 패거리가 나뉘었다는데, 작 중에 그런 상황이 나온 것은 노호채와의 일이 유일하다. 왕씨 형제와 남은 녀석들이 지금 왕가채의 기반이 되었다고 한 만큼 시기상 노호채의 침탈에서 왕사영이 죽은 것이 맞는 것 같아 본문에 기술한다.] 본거지를 잃은 왕가채는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닌다. 해량산 산채에 얼마간 빌붙다가 누명으로 망하자 삼룡채로 옮겨 신세를 진다. 계속 발길 닿는 대로 돌아다닌 끝에 훌륭한 풍경에 산속 깊이 있으면서도 강까지 끼고 있어 목이 좋은 골짜기를 발견해 은룡곡(隱龍谷)이라 이름 지으며 새로운 근거지로 삼는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