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왕십리 (문단 편집) === 현대 === 해방 이후인 [[1947년]] 6월에는 지금의 [[행정동]] 제도의 전신인 동회(洞會) 제도를 실시하였는데, 상왕십리동에는 상왕십리서부동회(上往十里西部洞會)와 상왕십리동부동회(上往十里東部洞會)의 2개 동회가, 하왕십리동에는 하왕십리서부동회(下往十里西部洞會), 하왕십리중부동회(下往十里中部洞會), 하왕십리동부동회(下往十里東部洞會), 3개 동회가 설치되었다. [[1955년]] [[4월 18일]]에는 동회 제도가 폐지되고 지금의 행정동 제도로 전환되며 상왕십리동부동은 상왕십리1동, 상왕십리서부동은 상왕십리2동, 하왕십리서부동은 하왕십리1동, 하왕십리중부동은 하왕십리2동, 하왕십리동부동은 하왕십리3동으로 개편되었으며, 정확한 기록은 불명이지만, 1958년에 작성된 지번입서울특별시가지도에 따르면 옛 무학리 일대에 무학봉동이라는 행정동이 이 무렵에 설치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필이면 무학봉동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현 [[신당역]] 사거리 일대에 무학동이라는 행정동이 또 존재해서 같은 지역이 아닌가 싶지만, 지번입서울특별시가지도에서는 무학봉 북쪽에 무학봉동(舞鶴峰洞)으로 기재되어 있다. 서울지명사전에서도 두 지역을 혼동해서 같은 지역으로 적어 두었기 때문에 자칫하면 하왕십리동의 [[월경지]]로 오해하게 되어 있지만, 무학동은 신당역 일대, 무학봉동은 성동고교 사거리 동남쪽으로 따로 떨어져 있는 별개의 행정구역이었다. [[1959년]] [[10월 31일]]에는 상왕십리1동이 인창동(仁昌洞)으로, 상왕십리2동이 현인동(賢仁洞)으로, 하왕십리1동이 도선동(道詵洞)으로, 하왕십리2동이 홍익동(弘益洞)으로, 하왕십리3동이 당현동(堂峴洞)으로 변경되었다. 인창동은 옛 인창방에서 따온 것이고, 현인동 또한 거기서 따온 지명이다. 도선동은 왕십리 전설에서 나오는 [[도선대사]]의 법명에서 따온 것이고, 홍익동은 [[대한민국]]의 건국이념인 [[홍익인간]]에서 따왔다고 한다. 유일하게 당현동만 자연지명을 따왔는데, 지금의 청계벽산아파트에 있던 고개에 무당집이 많이 있어서 예로부터 당고개라 부르던 것을 동명으로 사용하게 된 것이다. 옛날 도성에서 사람이 죽으면 시신을 [[광희문]]으로 빼냈는데, 이로 인해 광희문은 시구문(시체가 나오는 문)이라는 별칭으로도 불린다. 광희문 밖으로 나오면 금호동 공동묘지로 가게 되어 있는데, 그 전에 왕십리 일대에서 넋을 달래는 굿을 먼저 하고 망자를 떠나 보냈다고 한다. 이런 이유로 예로부터 이 일대이 무당집이나 신당이 많았고, 인근의 신당동[* 여긴 지명부터 神堂里였다. 귀신 신([[神]]) 자가 마을 이름으로는 쓰기가 영 좋지 않다고 해서 갑오개혁 당시에 발음이 같은 新堂里로 바꾸게 된 것이다.]이나, 행당동[* 집 당([[堂]]) 자가 행당동의 아기씨당이라는 신당으로부터 붙은 지명이다.]도 이런 이유로 지명이 생겼다. [[1964년]] [[9월 28일]]에는 법정동 도선동과 홍익동이 하왕십리동에서 분리되었다. 이로써 하왕십리동을 관할하는 법정동이 당현동 밖에 남지 않게 되어 당현동을 하왕십리1동으로 개칭하고, 법정동 도선동의 일부 지역을 행정동 도선동에서 분리시켜 하왕십리2동을 설치했다. 1959년 이전의 하왕십리1, 2동과는 명칭만 같을 뿐 전혀 다른 구역이다. [[1970년]] [[5월 5일]]에는 행정동 도선동과 홍익동이 도선동으로 통폐합되어 행정동 도선동이 법정동 도선동과 홍익동을 모두 관할하게 되었다. [[1975년]] [[10월 1일]] 자로 중구와 성동구가 [[난계로]]와 [[무학봉]]을 기준으로 행정구역 경계를 조정하면서 [[황학동]], [[흥인동]], [[무학동]], [[신당동(서울)|신당동]]으로 편입됨과 동시에, 무학봉동 일대는 신당동 동북쪽 일부를 관할하던 행정동 율원동(栗苑洞)에 편입되었고, 현인동은 전역이 황학동으로, 인창동은 난계로 이서 지역이 황학동에 편입되며 현인동사무소와 인창동사무소가 폐지되었다. 난계로 이동 지역의 인창동 잔여 지역은 하왕십리1동에 편입되었다. [[1977년]] [[9월 1일]]에는 법정동 도선동에서 [[왕십리로]] 이남 지역이 하왕십리동으로 편입되었고, [[1985년]] [[9월 1일]]에 하왕십리1동, 하왕십리2동이 각각 왕십리1동과 왕십리2동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2000년대 들어서는 이 지역도 [[도심공동화]]가 진행됨에 따라 인구가 많이 줄어서 행정동 통합의 필요성이 거론되어 [[2008년]] [[8월 11일]]에는 왕십리1동과 도선동이 통합되어 왕십리도선동이 되었다. 최종적으로 왕십리도선동은 [[왕십리로]] 이북 전역을, 왕십리2동은 왕십리로 이남 지역을 관할하는 형태가 되었다. [[이명박]] [[서울시장]] 재임 당시 [[길음동]], [[미아동]]과 함께 뉴타운 시범사업 지구로 선정되어 가장 먼저 삽을 뜬 뉴타운 지구의 한 곳이다. 특히 [[왕십리뉴타운]]은 시범사업이었기 때문에 다른 뉴타운들에 비해 규모가 그렇게 크지는 않은 편이다. [[2011년]]에 착공하여 [[2014년]]부터 입주를 시작했고, 현재는 왕십리 텐즈힐로 모두 완공되어 구역해제가 된 상태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