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왕준(당나라) (문단 편집) === 만년 === 722년, 태자첨사로 복직한 뒤 중산군공(中山郡公)으로 진봉되었다. 723년, 현종이 북쪽을 순행할 때, 왕준은 이부상서 겸 태원부윤에 임명되었고 4월에는 [[장열]]의 뒤를 이어 병부상서, 동중서문하삼품이 되고 금자광록대부가 더해졌다. 5월에는 다시 삭방군 절도대사를 겸임해 하서·농우·하동·하북의 제군을 통솔했다. 그해 11월 당 현종은 남교에 나가 하늘에 제사를 지내었는데, 왕준을 이에 참석시켰다. 하지만 왕준은 계절이 꽁꽁 언 겨울이고 또한 이 틈을 타 돌궐이 침입할 것을 우려하여 사양한다. 이때 허주(許州) 자사 왕교(王喬)의 가노가 왕교와 은밀히 결탁하여 모반을 꾀하려 하자 현종은 [[원건요]]와 장열로 하여금 이를 조사하게 하였다. 왕준은 비록 이에 관계되지 않았으나, 지난번 조칙을 어긴 것을 구실로 기주(蘄州) 자사로 좌천당한다. 왕준은 726년 호부상서로 승진하고 다시 삭방절도사를 맡았으며, 732년에 70여 세를 일기로 사망하여 상서좌승상에 추증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