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왕준(당나라) (문단 편집) == 여담 == * 왕준은 웅장한 풍채로 인해 당시 사람들이 웅호(熊虎)의 상을 지녔다고 여겼지만, 한편으로 의리를 중시하고 격려하였으며 옛 사람의 풍채를 지녔기에 주변 사람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았다. * 712년 [[유유구]]가 봉주(封州)로 유배될 때 [[태평공주]]의 일파인 [[최식(당나라)|최식]]이 광주(廣州) 도독 [[주이정]]을 시켜 유유구를 죽이려고 했는데, 당시 계주 도독으로 있었던 왕준은 최식의 음모를 알고 유유구를 계주에 붙잡아두었다. 주이정이 왕준에게 유유구를 넘길 것을 요구했지만 왕준은 여러 차례 주이정의 요구를 거절했고 최식이 유유구를 넘길 것을 요구해도 이를 외면했다. 유유구는 "그대가 재상의 명령을 거역하고 귀양가는 사람을 보호한다면, 형세를 능히 보전할 수 없고 연루될 것이오."라며 자신을 광주로 보낼 것을 염려하자, 왕준은 "그대가 지은 죄는 절교할 정도가 아닙니다. 내가 공으로 인해 죄를 얻는다면 아쉬울 것이 없소!"라고 대답하며 유유구를 광주로 보내지 않고 계주에서 보호해주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