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왕중왕(게임) (문단 편집) === 의의 === [[아랑전설 2]]와 [[용호의 권]]과 대부분의 시스템이 유사한데, 이는 빅콤에서 대전 격투 게임의 노하우를 얻기 위해서 연수생을 [[SNK]] 본사에 보내 교육에 참여시켰고, 그 두 작품의 노하우를 얻어 만든 데 원인이 있다.[* 1991년 11월에 회사를 설립하고 1992년 2월까지 연수를 받았다고 한다. 빅콤의 연수생을 맡은 것이 아랑전설 개발을 담당했던 니시야마 타카시 산하의 개발1과였다고 하며 이 시기는 아랑2를 만들 던 중이었다.] [[SNK]] 측에서도 일단은 개발에 협력했고 네오지오 보급에 도움이 되어야 자신에게도 이익이 생길테니 그에 대한 보답으로 효과음을 사용하게 해주었고, 일본을 포함한 해외 배급 및 번역을 도와주었으며, [[가라데 켄지]]의 성우에 [[료 사카자키]] 역으로 친숙한 우스이 마사키를 기용해 주기도 했다. 즉, 왕중왕은 실제로 '''연습작'''에 가까운 성격을 지닌 작품이 맞으며 완성도가 낮은 이유도 이런 사연이 있는 것. 한편으로 '연습작이라서'라는 면피가 아니라도 당시의 여건상 어쩔 수 없다고, 옹호해줄 만한 요소가 없는 것은 아니다. 예로부터 대전격투게임은 제작에 필요한 노하우가 다른 장르에 비해 많이 필요한 장르였다. 사용되는 그래픽 리소스의 양부터가 다른 장르보다 압도적으로 많고, 매끄러운 조작감을 위해서도 여러 노하우가 필요하다. 다른 장르에 비해 캐릭터가 많은 만큼 [[생일 문제|경우의 수에 따른 밸런스 조절 역시 복잡해진다]]. 게임 제작 기술이 발달한 지금에 와서도 [[MMORPG]], [[AOS(장르)|AOS]]와 함께 제작 및 운영이 어려운 장르에 속하며, 이마저도 까다로운 조작 난이도와 장르의 인기 하락 등을 이유로 선뜻 제작에 나서는 업체가 많지 않다. 이 때문에 90년대 초 대전 격투 게임이 붐이라 만드는 회사는 많았지만 본고장 일본에서 조차 해당 장르를 창시한 [[캡콤]]과 대전 격투 게임 전문 제작사로 부상한 [[SNK]]를 제외하고는 딱히 수작이라 할 만한 게임은 많지 않았다. [[CP 시스템]]의 테스트 모드를 통해 [[스트리트 파이터 2]]의 데이터를 쉽게 볼 수 있어서 비슷하게 따라하는 식으로 나온 대다수 작품은 양대 회사의 명성을 따라잡기는 약간 모자란 수준이었고,[* 어디까지나 상대적 기준이지, 평작 이상의 작품은 의외로 있다. [[호혈사일족]] 시리즈나 [[ADK]]의 작품, [[데이터이스트]]의 작품 등. 이와는 별개로 테스트 모드 덕에 많은 개발자들이 대전격투게임 개발의 원리를 체득할 수 있었고, 여러모로 캡콤에 신세를 졌다고 한다. 캡콤에서 영업 비밀을 그대로 도둑맞은 수준.] 이마저도 90년대 후반에 아케이드 자체의 인기가 약해지거나 장르 자체가 시들해졌다. 90년대 중반 [[대전 격투 게임]]의 대세가 3D게임으로 넘어가자 신경써야 할 점이 많아져 [[세가]]와 [[남코]]가 겨우 살아남았었고, SNK는 오히려 [[SNK 3D 징크스|3D에 적응하지 못하고]] 나가떨어졌었다. 2000년대에 들어서야 [[아크 시스템 웍스]]가 겨우 신규로 두각을 나타낼 수 있게 되는 정도로, 대전 격투 게임은 저예산으로 게임기용을 만들어서 제작비를 회수하는 정도의 수준을 넘기가 힘들었다. 이러한 사정은 같은 시기의 한국 아케이드 게임계도 마찬가지라 대부분의 제작사는 개발 난이도가 낮은 퀴즈나 퍼즐, 잘해봐야 슈팅 정도나 만들고 있었다. 요즘 와서도 대전격투는 MMORPG의 부속 컨텐츠 취급을 받고 있는 것이 현실. 이런 현실을 감안하면 빅콤의 도전은 충분히 가치가 있는 것이었고, 이를 증명하듯 왕중왕 이후 심기일전한 빅콤은 명실공히 국산 대전 격투 게임 최고의 역작이라 할 수 있는 '''[[극초호권]]'''을 내놓으며 왕중왕의 불명예를 만회할 정도는 되었다. 결국 왕중왕은 낮은 완성도 때문에 대전 격투 게임의 황금기에 나온 순수 국산 대전격투게임임에도 불구하고 흥행에 참패하였고, 이 참패는 후속작인 극초호권에도 악영향을 끼쳤다. 여러가지 사정으로 극초호권의 아케이드 기판 가동은 좌절되었고, 대신 [[3DO]]판과 PC판만이 출시되었다. 국산 게임이 드물었던 시대가 아니라서 왕중왕 때보다 임팩트가 약해 주목받지 못했다. 게다가 기본도 안 된 게임을 만든 회사가 바로 다음 편을 물건너급 웰메이드로 내놓을 거라고 예상한 사람이 있을 리가 없었고, 이러한 선입견 역시 극초호권의 흥행 실패에 영향을 주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