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왕첨 (문단 편집) == 생애 == [[동진]]의 재상인 [[왕도(동진)|왕도]]의 현손으로, [[송(남조)|유송]]의 태보 왕홍(王弘)의 종손이다. 조부인 왕류는 광록대부로 임명되었고 동정후(東亭侯)라는 작위를 받았다. 부친인 왕유는 정위경을 지냈다. 왕류는 부친상을 지낸 뒤 동정후를 습봉했고 처음에 저작좌랑으로 임명되었다. 뒤에 태자사인(太子舍人), 태위 주부, 태자세마(太子洗馬)를 역임하였으며, 파양군(鄱陽郡) 내사로 전출되었고 임기를 마친 뒤 태자중사인으로 임명되었다. 또한 남해왕(南海王) 소자간의 왕우(王友)가 되었고 경릉왕 소자량의 종사중랑으로 전임되었다. 소자간이 호군장군으로 전임된 뒤에 왕첨의 장사가 되었고 서주 별가종사사로 전출되었으며, 표기장군(驃騎將軍) 왕안(王晏)의 장사로 옮겼다. 그러나 왕안이 주벌된 뒤 진릉군(晉陵郡) 태수로 전출되었다. 왕경칙이 반란을 일으키면서 중간에 진릉군을 지날 때 진릉군의 많은 백성들이 왕첨을 의지했다. 왕경칙의 반란이 토벌된 뒤 왕첨은 [[명제(남제)|명제]]에게 관대한 처분을 내릴 것을 주청하였다. 이후 왕첨은 급사황문시랑(給事黃門侍郞), 무군장군(撫軍將軍) 건안왕(建安王)의 장사, 어사중승(御史中丞)을 역임하였다. 소연이 제나라의 대권을 장악한 뒤, 왕첨은 자의참군으로 임명되었고 녹사참군을 겸하였으며, 시중, 좌민상서를 역임하였고 이부상서로 전임되었다. 뒤에 좌위장군이 더해졌으나 병으로 인해 받지 못하고 시중 겸 효기장군이 되었으나 이때도 병으로 인해 받지 못하고 사망했다. 49세의 나이로 사망했다는 기술은 있으나 언제 죽었는지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 시호는 강(康).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