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왕치산 (문단 편집) == 여담 == * [[덩샤오핑]]의 집권기인 [[1980년대]] 이래 중국은 '7상8하', 즉 중앙정치국 상임위원회에서 67세까지는 [[현역]]이지만 68세부터 물러나는 것을 [[관례]]로 하여 자연스러운 [[세대교체]]가 이루어지도록 해왔다. 이에 따르면 당초 왕치산 정도의 [[나이]]면 정치 일선에서 물러났어야 했겠지만, 시진핑의 지지로 인해 오히려 부주석으로 옮겨가면서 공직생활을 이어가게 되었다. 이 점에서 그의 부주석직 임명은 7상8하 원칙이 [[사문화]]되었음을 보여준다. *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상반된 평가를 받는 인물. 외국 물정에도 밝고 개혁개방 과정에 참여해 서구에서 당내 개혁파 인사로 평가받아왔으며, 그 중국에서 정치인의 비리에 대한 폭로성 보도(!)를 자주 하는 차이신의 편집장, '중국에서 가장 위험한 여인' 후수리를 후원하는 등 대담한 행보를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반부패운동은 장쩌민-후진타오 시절 득세했던 기술관료 세력에 대한 태자당의 견제일 뿐이며[* 후수리도 왕치산처럼 혁명유공자 2세대인 훙얼다이, 태자당 출신이다. 든든한 뒷배가 있는 셈.] 시진핑의 정적 숙청의 일환일 뿐이라는 평가도 있는데, 이후 중국에서 시진핑의 1인체제만 강화되고 유의미한 정치개혁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을 봤을 때 아무래도 부정적인 평가가 우세할 수밖에 없는 상황. * 최고지도부 출신 장인을 두고 태자당으로 분류되는 인사지만 정작 본인은 자녀가 없다. 기율위 서기 자리에서 사정정국을 주도할 수 있던 건 본인은 몰라도 이후 자녀의 앞길을 생각해서라도 적을 만들지 않으려 하는[* 예를 들어 [[보이보]]는 후야오방 숙청을 주도했기 때문에 후야오방의 공청단파와 철천지원수 사이였고, 이 원한관계는 결국 아들 보시라이의 앞길을 막게[* 하지만 사실 보시라이는 자신의 전성기에 중국 공산당 간부들의 금기사항인 [[문화대혁명]] 시절 이야기를 자꾸만 떠들고 다녀서 상하이방과 공청단 구별없이 찍혀 버린게 더 크다.(둘째로는 보시라이의 개인 사생활이 천박하고 더러웠던 거지만 사생활이 더러운 권력자는 워낙 많다. 사실 아버지 보이보의 사생활 자체도 더러웠다.) 입조심만 했어도 원래 공청단에서는 태자당 후계자로 시진핑보다 보시라이를 더 인정하는 분위기였기에 충분히 주석이 될 수 있었다.] 된다. [[후진타오]]가 시진핑과 각을 세우지 못하는 것도 지방 간부 생활을 하는 아들 후하이펑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니...] 다른 관료들과는 달리 재산과 지위를 물러줄 자녀가 없어 후환을 걱정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본인도 위험한 거 아니냐고 할 수 있겠지만, 중국에서는 4인방 숙청 이후 [[저우융캉]]을 빼면 최고지도부 출신 인사가 공식적으로 단죄된 사례가 없다.[* 제도화된 것은 아니어도 관습적 면책특권이 있는 셈이다. 여기에는 정치국 상무위원에게 누군가한테 종속되지 않고 소신껏 일할 수 있는 자유를 부여한다는 장점이 있지만, 한편으로는 누군가 당중앙의 방침조차 벗어나 막나가기 시작하면 제어할 방법이 없다는 문제가 있다. 결국 이 모순이 선을 넘어버린 [[저우융캉]]에 대해 당내 합의를 통해 관례를 깨고 처벌을 내리는 원인이 되었다.] [[자오쯔양]]은 공식적 처벌 없이 행동을 감시당하는 선에서 끝났고, [[저우융캉]]은 부패 등의 사소한(...) 죄가 아닌 정변시도 때문에 처벌당했다. 공산당 최고위 관료들은 그런 무리수만 안 두면 명절마다 후임 지도부의 문안인사를 받으며 편안한 말년을 보낸다. 다만 뒷방으로 밀려나지 않고 실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지는 물론 별개의 문제이다. * 중국의 [[부동산]] 재벌 궈원구이 전 정취안홀딩스 회장이 "[[판빙빙]]에 대한 탈세 조사는 판빙빙으로부터 성 상납을 받은 왕치산 부주석이 입막음용으로 취한 조치"였으며 "두 사람의 [[성관계]] 동영상을 내가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는 소식을 [[대만]]의 자유시보가 보도했다. 하지만 권력핵심부에 건재한 왕치산에게 [[성상납]]을 했는데도 판빙빙이 이렇게 갑작스레 거액의 벌금을 무는 사태가 벌어진 것은 더 설득력이 없다는 말도 나오기도 한다. 자유시보가 그 [[동영상]]을 보았다고 주장한 [[https://en.wikipedia.org/wiki/Guo_Wengui|궈원구이]]는 미국에 망명한 [[중국인]] 망명객 [[재벌]]인데 이에 대해서 [[뉴욕타임즈]][[https://www.nytimes.com/2018/01/10/magazine/the-mystery-of-the-exiled-billionaire-whistleblower.html|에서는]] 그의 주장에 신빙성이 없다는 투의 기사를 작성하였다. * 중국은 궈원구이를 [[인터폴]] 적색수배 명단에 올려놓고 부동산 사기 등의 혐의로 10조(...)에 달하는 [[벌금]]을 부과했다. * [[나루히토]] [[천황]] 즉위식에 [[특사]] 자격으로 참석하였다. * [[윤석열]] 대통령의 [[제20대 대통령 취임식|취임식]]에 참석했다. 이때까지 [[한국 대통령]]의 취임식에 참여한 중국 인사들 중 가장 최고위급이 되는 상황.[[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57/0001661355?sid=100|#]] [[분류:중화인민공화국 국가부주석]][[분류:중화인민공화국 국무원 부총리]][[분류:1948년 출생]][[분류:칭다오시 출신 인물]][[분류:중국공산당 15기 중앙위원회 후보위원]][[분류:중국공산당 16기 중앙위원회 위원]][[분류:중국공산당 17기 중앙정치국 위원]][[분류:중국공산당 18기 중앙정치국 상무위원]][[분류:중국공산당 18기 중앙서기처 서기]][[분류:중국의 무종교인]][[분류:칭다오시 출신 인물]] * [[2022년]]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장례식에 중국 특사로 파견되었다. 웨스트민스터 홀에 안치된 여왕을 조문을 하려고 했으나 웨스트민스터 홀 입장은 거부당했고, 하나의 중국으로 인해 특사를 파견하지 못한 대만은 켈리 셰 주 영국 타이베이 대표부장이 참여하여 웨스트민스터 홀의 입장이 허용되었다. [* [[2021년]] 영국 의원들이 중국의 위구르족 집단수용과 강제교화 등을 강하게 비난하자 중국 당국은 즉시 하원의원 5명, 상원의원 2명 등이 포함된 영국인 9명에 입국 금지와 자산 동결의 제재를 내렸다. 이에 [[린지 호일]] 하원의장은 대사 등 중국 공무원의 의사당 출입을 1년 간 금지시키며 맞섰다. 금지령이 아직 안 풀리기도 했었만 호일 의장이 조문이란 명분에도 중국 외교단의 의사당 출입을 거듭 거부한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