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왕페이 (문단 편집) === 일본진출, [[2046(영화)|2046]], 활동중지 === ||[[파일:faye_wong_2000.jpg|width=100%]]|| || 全面體演唱會 일본무도관 공연 (2001) || 「Eyes on Me」의 대성공 후 도시바EMI는 왕페이에게 적극적으로 '''일본진출'''을 권했고, 그 결과 2001년 7월부터 9월까지 일본 [[후지 TV]] 3분기 드라마 《우소코이(ウソコイ)》 여주인공 林菲으로 출연했다. 남자 주인공은 나카이 키이치, 여자 조연은 [[나카마 유키에]]이였으며 [[간토]] 평균 시청률 7.9%을 기록했고 왕페이가 부른 주제곡 「Separate Ways」는 오리콘 주간순위 14위에 올랐다. 10월 EMI에서의 마지막 앨범 '''『王菲』'''를 발매한다. 1997년 EMI 이적 후 처음 발매한 앨범과 동일한 셀프 타이틀 앨범이다. 연도를 붙여 王菲(1997), 王菲(2001)로 구분한다. 1994년 이후 처음으로 왕페이가 작사/작곡에 참여하지 않고, 쭉 함께해온 중국의 장아동이 아니라 홍콩의 양교백과 공동 프로듀서를 맡았다. 크게 달라진 제작 환경처럼 앨범도 기존 왕페이 스타일에서 벗어나 각각의 곡들이 참여 뮤지션들의 색이 드러난 곡들이었지만 왕페이의 보컬과 개성이 앨범의 통일성을 만들었다는 평을 들었다. 중화권에서는 여전히 식지않은 인기를 보여주며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고, 일본에서도 __단 한개의 일본어곡이 수록되지 않은 중국어 앨범임에도 오리콘 앨범차트 14위를 기록했다.__ 앨범 발매에 맞추어 콘서트 '全面體演唱會'를 열었고 일본에서는 [[무도관]]에서 2일, 오사카죠홀에서 1일 콘서트를 열었고 EMI에서 DVD로 발매되었다. 2002년은 활동중지했던 91년 이후 처음으로 앨범을 발매하지 않은 한 해였다. EMI와 계약종료 후 SONY와 계약을 했지만 매년 앨범을 발매하는데 지친 상태였고 영화촬영 중이라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1999년 [[왕가위]] 감독의 《[[2046(영화)|2046]]》에 캐스팅되고 2001년부터 촬영에 들어갔지만 왕가위 특유의 즉흥적이고 무계획적인 제작 방식 때문에 촬영은 끝없이 길어졌다. 늘어지는 촬영에 왕페이를 비롯한 배우들은 지쳐만 갔고 제작자 유진위는 배우들의 스트레스를 풀어주고자 2002년 코미디 영화 '''《천하무쌍》'''을 찍었다. 《[[동사서독]]》^^(감독 왕가위/제작 유진위)^^과 《[[동성서취]]》^^(감독 유진위/제작 왕가위)^^의 경우와 똑같다. 일본의 체계적인 촬영에 익숙한 [[기무라 타쿠야]]는 《[[2046]]》을 찍으면서 왕가위에게 학을 땠다. [[양조위]], [[조미]], 장첸과 함께 출연한 《천하무쌍》에서 왕페이는 '''홍콩 영화 평론가 협회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했고 두번째로 홍콩 금상장 여우주연상에 노미네이트 되었다. 2003년 11월 2년만의 앨범 '''『將愛』'''를 발매한다. 장아동이 프로듀서로 다시 합류했고 앨범 분위기는 훨씬 편안하고 부드러워졌다. 앨범 발매 인터뷰에서 연예계 생활에 지쳤고 휴식을 취하고 싶다고 밝혀 이때부터 은퇴설이 나오기 시작한다. 홍콩, 대만, 일본 등 판매량 집계가 되는 아시아 국가에서 총 100만장 이상 판매되었고 12월 콘서트 투어 '菲比尋常'를 시작했다. 2004년 9월 --드디어-- 《[[2046(영화)|2046]]》이 개봉했고, 2005년 1월 菲比尋常 투어가 종료되었다. 그리고 5월 '''무기한 활동중지를 발표한다.''' 이전부터 밝힌대로 지나친 --황색--언론의 사생활 침해, 쉴틈없이 짜여진 스케줄 등 연예계 활동에 지친것이 이유. 이후 자선활동 등 극소수의 행사를 제외하고는 일체의 공식적 활동을 하지 않고 철저히 언론을 피하며 생활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