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왕필(삼국지) (문단 편집) == [[삼국지(정사)|정사]] == [[조조]]의 부하로 [[삼보의 난]] 때 조조가 연주목으로 임명되자 왕필이 사신으로 파견되어 [[헌제]]에게 글을 올렸다. 주부, 승상장사 등을 지냈으며, [[여포]]가 조조에게 붙잡혔을 때 포박을 느슨하게 해달라고 부탁하자 주부였던 왕필은 여포는 사나운 무리이고 그 무리들이 가까이 밖에 있어 '''느슨하게 해주면 안된다고 진언'''했다. 승상장사일 때 조조가 병사를 맡아 허도의 일을 감독하도록 남겼고 218년 봄 정월에 소부 [[경기(삼국지)|경기]], 사직 [[위황]], 태의령 [[길본]]과 그의 아들 [[길막#s-2]], [[길목#s-2]] 등이 공모해 반란을 일으켜 허도를 공격해 자신의 진영에 불을 질렀는데, 공격하는 자가 누군지 몰라 [[김의]]와 친했기 때문에 그의 집으로 달아나 의탁하려고 했다. 밤에 김의를 부르자 김의의 집안 사람들이 누구인지 알아보지 못해 얘기했는데, 그들이 길막 등으로 착각해 왕장사가 이미 죽었냐면서 그대의 무리들이 일을 이뤘다고 하는 것을 듣고 다른 길로 달아났다. 일설에는 그의 장하독이 오늘 일이 어느 집안인지 아시는데 거기로 들어가겠냐고 물으면서 부축을 받아 남성으로 달아났으며, 날이 밝아오자 길막 등이 왕필이 죽은 줄 알고 흩어졌다가 패배했다고 한다. 왕필은 전농중랑장 [[엄광]]과 함께 그들을 토벌했지만 10여일이 지나 상처 때문에 죽었다고 하며, 조조가 왕필이 죽은 것에 크게 분노해 한의 백관들을 업성에 불러 오게 했다가 불을 끄러 나온 자는 왼쪽, 끄러 나오지 않은 자는 우측에 섰다. 많은 사람들이 불을 끄는 것이 반드시 죄가 없을 것이라 여겨 모두가 왼편에 붙었는데, 조조가 불을 끄러 나오지 않은 자들은 반란을 도운게 아니라면서 끄러 나온 자들이 실제 적이라면서 모두 죽였다고 한다. 물론 이는 조조의 다분한 [[궁예질]]이었다. 조조는 왕필에 대해 자신이 어려운 고비를 겪을 때부터 따르던 사람으로 충성스럽고 유능하면서도 부지런하며, 마음이 쇠나 돌처럼 굳어 훌륭한 관리로 때를 놓쳐 오랫동안 왕필을 부르지 못했다는 얘기를 할 정도였다.[* [[조조]]의 수하 문관으로는 거의 최고참급인데 [[진궁]] [[허사#s-2]] [[왕해(삼국지)|왕해]] [[필심]] [[위충#s-3]]은 [[장막(삼국지)|장막]]이 난을 일으킬 때 나갔고 [[조지(삼국지)#s-1|조지]] [[임준]]은 일찍 사망해서 짬으로는 [[순욱]] [[정욱]]과도 안 밀린다. 일부 창작에서 미끼로 쓰이지만 오랫동안 조조 밑에서 있는듯 없는듯 일해온 걸로 봐서 위험인물로 찍히지도 않았을테니 그렇게 버려졌을리도 없다.] 반란의 상세 사항은 무제기에서 주석으로 나온 위무고사, 삼보결록, 헌제춘추, 산양공재기 등에서 인용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