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왜나라 (문단 편집) == 용법 == 7세기 이후 공식 국호가 왜에서 일본으로 바뀌면서 공식 명칭은 일본(日本)으로 통일되었지만 그 이후로도 중국과 한국에서 부정적인 뉘앙스로의 왜(倭)라는 명칭은 이후로도 계속 사용되었다. "잘하면 일본국, 사고치면 왜국"이라는 표현은 그러한 인식을 대표한다. 가장 대표적인 게 [[임진왜란|'''임진'''년에 '''왜'''인들이 들어와서 '''난'''리를 피운 사건.]] >見請之'''倭''' 與之戰鬪 若不脫冑 國民焉救 >請으로 온 '''예'''와 싸호샤 투구 아니 밧기시면 나랏 小民을 사ᄅᆞ시리ᅌᅵᆺ가 >청을 받고 온 왜적과 싸우사 투구를 아니 벗기시면 나라의 백성을 살리시겠습니까? >---- >《[[용비어천가]](1447)》 52장 中 조선 초중기만 하더라도 왜인 이외에 '''[[예]]'''라는 [[순우리말]] 표현 역시 일본인을 지칭하는 말로 널리 쓰였다. 한글 문헌에서의 최초 문증 사례는 상술한 15세기 《[[용비어천가]]》의 본문이다. 이후 16세기에도 옥편인 《[[훈몽자회]](1527)》에서는 한자 [[倭]]를 두고 "'''예 와'''"라고 훈과 음을 달아두었고, 〈[[선조국문유서]](1593)〉에서도 '예나라'를 일본을 뜻하는 표현으로 쓰기도 했다. 임진왜란 이후에 편찬된 《동국신속삼강행실도(1617)》에서는 '예', '예왕', '예나라' 등의 단어가 빈번하게 등장하며, 1668년 집필된 《[[하멜 표류기]]》에서도 "조선인들은 일본을 '예나라(Ieenare)'라고 부른다"는 기록이 나타난다. 18세기 후반의 실학자 [[유득공]] 역시 그의 저서 《고운당필기》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은 왜(倭)를 '예'라고 부른다"는 사실을 수록했다.[* "우리나라 사람이 왜(倭)를 예(濊)라고 부르는 것은 무엇에 근거한 것인지 아직 모르겠다. 왜(倭) 또한 [[동이]]이기 때문에 섞어서 일컫는 것인가?(我人呼倭爲濊, 則未知何據. 倭亦東夷, 故混稱之歟?)"] 신라 시대의 [[향가]]인 〈[[혜성가]]〉에서는 倭理라는 표기로 등장하는데, 이 표기를 바탕으로 [[김완진]]과 [[알렉산더 보빈]] 등의 학자들은 해당 어휘가 신라 시대에는 '여리'라고 읽혔을 것으로 추정한다. [[https://www.academia.edu/44219866/International_Journal_of_Eurasian_Linguistics_2_2020_94_107_Old_Korean_and_Proto_Korean_r_and_l_Revisited|#]] 어중의 ㄹ 음소가 생략되면서 상성이 되는 경우는 '내(←나리)', '뉘(←누리)' 등의 사례가 존재한다. [[김세종|노리부]], 아리나례([[아리수]]) 등 삼국시대 인명·지명 표기와 [[동동]] 등의 고려가요에서 각각 '나리', '누리'라는 옛 어형이 확인되어 이 주장을 뒷받침한다. 이를 볼 때 어중의 ㄹ발음은 시간이 지나면서 탈락했던 것으로 보인다. 해당 어휘는 19세기 경에 이미 '왜'라는 한자 표현으로 대체되어 사어가 되었으나, [[제주어]]의 일부 지명에는 아직까지 흔적이 약간 남아있으며, [[오구라 신페이]]에 따르면 20세기 초까지 [[서남 방언]]에서도 속담에 포함된 형태로 한동안 살아남아 있었다고 한다. 조선 후기에는 해당 표기가 '더러울 예'(穢)에서 비롯되었다는 [[민간어원]]이 널리 퍼졌던 듯하나, 학술적으로 근거 없는 주장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