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외규장각 (문단 편집) ==== [[프랑수아 미테랑|미테랑]] 정부 ==== 재임기간 1981~1995년 [[1993년]]에 최초로 외규장각 도서의 반환을 천명한 장본인이다. 반환 계획이 미리 알려질 경우 국립도서관 사서들을 비롯한 반대파가 격하게 반발할 것을 우려한 미테랑은 한국에서 단기간만 전시할 것이라면서 우선 2권 정도만 준비할 것을 요구했고, 사서들은 별다른 생각없이 이에 응했다. 하지만 [[9월 14일]] 방한 당일 [[김영삼]] 대통령과 첫 회담을 하는 자리에서 당장 외규장각 도서를 반환하겠다고 약속해버렸으며[* [[https://imnews.imbc.com/replay/1993/nwdesk/article/1759630_30684.html|당시 MBC 뉴스데스크 보도]]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3732617|당시 KBS NEWS 9 보도]]]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3732657|다음날 저녁 청와대에 가서]] [[https://imnews.imbc.com/replay/1993/nwdesk/article/1759666_30684.html|전격적으로 한 권을 반환한다.]] 반대파가 결집할 기회를 주지 않고 반환을 기정사실화해 버리는 전략을 구사한 것. 당시의 상황은 한국 측에서도 예상하지 못할 정도로 속전속결이었다. 미테랑의 건강 상태가 썩 좋지 않았던 데다 실제로 한국에 도착한 직후 구토 증세를 보이는 등의 피곤한 모습을 보여서 청와대 측에서는 일단 첫 날은 만찬 일정만 진행한 뒤 다음날 정상회담을 하자고 제의했으나, '''미테랑 본인이 괜찮다면서 바로 저녁에 정상회담부터 하자고 제의하여 김영삼을 만나 외규장각 반환을 약속한 것.''' 그것도 차후 진행하는게 아니라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03697171|바로 다음날인 9월 15일 오후에 서울로 도착하도록 조치했다는 확실한 통보였다.]]''' 그리고 그 날 저녁 미테랑이 또 청와대를 찾아가 김영삼에게 직접 [[수빈휘경원원소도감의궤]] 1권을 전달한건데, 이것도 미테랑의 일정에 전혀 없던 것이라 청와대에서도 당일 오후에 연락을 받고 부랴부랴 준비했을 정도. 미테랑이 독단적으로 도서 2권을 김영삼에게 전달하자 미테랑을 수행하여 한국에 왔던 프랑스 국립도서관 사서 2명(Jacqueline Samson, monique coen)은 사표를 내는 등의 반발이 거셌는데[* 2009년 당시 [[유종필]] 국회도서관장의 [[http://weekly1.chosun.com/site/data/html_dir/2009/09/30/2009093000382_2.html|기고문(주간조선)]]에 따르면 당시 행정국장이었던 자클린 상송은 국립도서관 사서부문 총국장으로 승진한 듯. 프랑스 국익과 보유 문화재를 관리하고 대변하는 공적인 자리의 입장에서인지 개인적인 신념과 입장에서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이 글에 따르면 한국에 그다지 호의적인 태도를 보인 것으로 묘사되지는 않는다. 자클린 상송은 귀국 후에 이 사건으로 인해 국립도서관 총파업까지 주동했었다.], 이들은 대통령의 명령을 거부하고 숙소인 롯데호텔 객실에 들어가서 농성했으며 프랑스 문화부 장관인 자크 투봉에게 전화해 지원을 호소하는 등 책을 껴안고 울며 항의했다. 프랑스 정부 측은 주한 프랑스 대사까지 동원하여 이들을 설득하였고 이들은 눈물 범벅이 되어 전달식을 고작 몇분 남기고 책을 내놓았다. 이게 와전되어 프랑스가 사서들의 반대를 핑계삼아 약속을 깼다는 헛소문이 현재까지도 떠돌고 있다. 성명서에서 두 사람은 "우리는 프랑스의 이익, 법과 직업윤리에 반하는 행동을 강요당했다" 라고 주장했다. 또한 이를 지지하는 사서 및 큐레이터들은 "국립도서관과 루브르 박물관의 소장품은 대통령의 선물을 제공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라는 의견을 밝혔다. 한국 언론에선 이 사서들을 책을 사랑한 여인들, 직업정신이 투철한 사서들 정도로 보도하였고, 프랑스의 반환이 옳다고 보는 측에서는 침략자들의 천박한 역사 의식이라고 비난하였다. 이후 자클린 상송은 프랑스로 돌아와 국립도서관 총파업을 주도하였으며, 반환 반대의 최선봉에 서게 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